[김태우] 실향민의 아들 문재인 대통령

김태우·동국대 석좌교수
2017.05.31

1950년 12월 함경남도 흥남의 부두는 군인들과 피난민으로 북적대고 있었습니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미군 10군단, 미 해병 1사단, 한국군 1군단 등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불리해지면서 흥남을 통해 철수하기 위해 인원과 장비를 흥남 부두로 집결시키고 있었습니다. 같은 시기 동안 공산치하를 피해 남쪽으로 가려는 수 십만 명의 피난민들도 보따리를 메고 가족들을 데리고 부두에 나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12월 15일부터 24일까지 열흘동안 역사적인 흥남 철수작전이 전개된 것입니다.

미 10군단장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은 가급적 많은 피난민을 태워달라는 한국군의 요청을 받아들여 배에 실었던 군사장비들을 다시 내리고 피난민들을 태웠습니다. 흥남 부두를 마지막으로 떠난 상선이 메러디스 빅토리호였습니다. 이 배는 정원이 60명에 지나지 않는 화물선이었지만 레너드 라루 선장은 실려있던 무기들을 모두 내리고 1만 4천 명의 피난민을 태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태운 화물선으로 후일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 연합군은 이 흥남 철수작전을 통해 장병 약 10만 명, 피난민 약 10만 명 그리고 35만 톤의 군수품을 무사히 철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남쪽으로 내려온 피난민 중에는 함경남도 흥남이 고향인 문용형 씨의 가족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문 씨는 아내 강한옥과 딸을 데리고 아비규환 속에서 필사적으로 배에 올랐습니다. 거제도에 도착한 문 씨는 거제포로수용소 노무자로 또는 장사로 가정을 꾸려나갔고 아내는 거제도와 부산을 오가면서 계란 행상을 하면서 가계를 도왔습니다. 1953년 이 가정에서 태어난 아들 문재인이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실향민의 아들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문재인 후보는 5월 9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2,3위 후보들을 상당한 격차로 따돌리고 당당히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이 선거는 전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하여 실시된 보궐선거였습니다. 국회는 2016년 12월 9일 권력남용과 국정농단 혐의를 받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하고 이어서 2017년 3월 9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선고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은 파면되었고, “대통령이 궐위된 경우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는 헌법 제68조 2항에 따라 5월 9일 보궐선거가 실시된 것입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인하여 급작스럽게 실시된 선거였지만, 문재인 후보는 법이 정한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취임 3주를 지내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청와대 직원 식당에서 하급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나누고 길에서 만난 행인들과 악수를 나누는 등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던 평소의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들도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각계에 의견을 구하고 탕평 인사를 통해 내각 및 주요 직책들을 채우기 위해 부심하고 있습니다.

새로이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적 기대도 상당히 높습니다. 문 대통령이 취임했던 5월 10일 당일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묻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83.8%가 “잘할 것 같다”고 응답했습니다. 또 다른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5월 10~12일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5%가 “잘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리얼미터가 5월 22~26일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4.1%가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한가지 사실은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이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정치 상황들에 대해 매우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작년 중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거론되면서부터 서울의 광화문 거리는 매 주말마다 탄핵을 지지하는 모임과 탄핵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모임이 열렸고, 정치인들도 미래 정치상황에 대한 불확실성을 염두에 두고 혼란스러운 움직임을 보였으며, 신문과 방송들도 많은 지면과 시간을 정치 기사에 할애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일이 임박하면서 찬반 시위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탈북민들의 일차적인 반응은 정치상황이 이토록 복잡하게 돌아가는 데도 나라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부도, 군도, 기업도 그리고 국민도 모두 제 각기 맡은 일은 하고 있고 경제도 수출도 평소대로 작동되는 모습에 무척 놀란 것입니다.

탈북민들의 두 번째 반응은 민주주의에 대한 부러움과 안타까움이었습니다. 북한에서 백두혈통에 의한 권력세습을 보면서 그리고 대를 이어 충성할 것을 강요받으면서 살았던 그들에게는 국민이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사실, 대통령도 잘못하면 탄핵도 되고 재판도 받는다는 사실, 국민이 탄핵에 대해 자유롭게 찬반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는 사실 등은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권자 40%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지만, 지금 국민의 80%가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하고 성공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찬성도 하고 반대도 하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탈북민들은 정치의 자유도 선거권도 언론도 자유도 없는 곳에 살고 있는 북한동포들에 대한 한없는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탈북민들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 것은 실향민의 아들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탈북민들에게 있어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은 엄청난 용기를 불어넣은 대사건입니다. 대한민국은 누구든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는 나라, 누구든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라는 점을 확실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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