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

11월 9일은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2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동서독 분단과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독일이 그렇게 빨리 통일될 것으로 예견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통일이란 어쩌면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하늘이 내리는 선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통일에 알맞은 나라 안팎의 조건이 형성되고, 통일을 도와주는 외부세력이 나타나는 등 통일에 우호적인 여건이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동서독의 경우 이러한 기회가 만들어졌고, 독일 사람들은 현명하게 단합해서 그 기회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단초를 제공한 것은 1989년 7월 헝가리에서 발생한 국경탈출 사건입니다. 헝가리에 여름휴가를 왔던 동독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 헝가리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로 밀려들기 시작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동유럽 각지에 머물던 동독 사람들이 망명을 신청함으로써, 정치적인 분위기가 급변했던 것입니다.

동독의 후견인을 자처했던 소련이 변화한 것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공산주의체제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판단하고, '개혁'과 '개방'을 부르짖으며 소련뿐 아니라 동유럽 공산권의 모든 나라들이 경제발전과 인민의 생활 향상을 위해 스스로 변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18년간 집권했던 동독의 호네커는 과거의 타성에 물들어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실각할 수밖에 없었고, 그의 실각은 동독의 변화에 새로운 기폭제를 제공했습니다.

서독의 우방이었던 미국이 마치 자기 일처럼 독일 통일을 적극 지지하고 주변 나라들을 설득했던 것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에 의해 분할된 나라였기 때문에 통일을 위해서는 이들 네 나라의 지지와 동의가 필수적이었습니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세 나라는 독일 통일에 부정적이었지만, 독일 통일이 유럽의 평화를 가져온다고 확신한 미국 정부는 물심양면의 노력을 기울여 세 나라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20년 전의 독일과 현재의 한반도를 비교하면 모든 면에서 통일의 조건이 좋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동독보다 더 폐쇄되고 억압받는 나라인 북한에서 인민들의 자유로운 여행이나 대량 탈북은 요원한 일입니다. 중국은 북한의 변화 보다는 김정일 체제의 유지에 골몰하면서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러시아, 일본, 미국도 말로는 한반도 통일을 지지한다지만 어떤 속내를 갖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아직 하늘이 우리 민족에게 선물을 주실 때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듯이, 통일은 우리 민족의 의지와 노력으로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사실 인민들의 생활고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핵을 갖고 큰소리를 치는 북한을 보면, 통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밤의 어두움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통일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기의 문제이며, 그 시기도 멀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 민족에게 큰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