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개방 몰고 온 '로큰롤의 왕' 40주년 기념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2017.08.29

지난 8월 16일 '로큰롤 음악의 왕'이라 불린 미국의 엘비스 프레슬리가 사망한지 40주년 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있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사망한지 4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열광적인 팬들이 많기 때문에, 미국, 유럽이나 아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추모행사가 열렸습니다. 가장 큰 행사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처음 가수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도시이자 그의 저택이 있던 미국 테네시주의 멤피스에서 열렸습니다.

1935년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은 1950년대 중반에 미국과 영국을 시작으로 세계적으로 많은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미국 남부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주로 백인들이 많이 듣는 '컨트리 웨스턴' 음악, 흑인 음악의 일종인 '리듬 앤 블루스,'를 결합시켜 새로운 '로큰롤 음악'의 개척자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미국에 '인종 분리'라는 제도가 있어서, 흑인들과 백인들은 같은 법적인 권리가 있어도 따로 생활하고, 학교도 따로 다니곤 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이전에 라디오 진행자들은 대부분 백인일 경우 백인이 작곡해서 부른 음악만 들려 주고, 흑인일 경우 흑인 음악만 들려주곤 했습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은 흑인과 백인의 음악을 결합시켜서 '인종 분리'와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한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시민 운동을 개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테네시주 멤피스에 위치한 엘비스 프레슬리의 저택은 그의 화려한 생활양식뿐만 아니라, 수 백개의 트로피가 가득 찬 통로를 지나면서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상상해 볼 수 있게 꾸며졌습니다. 그는 세계적으로 10억장 이상의 음반 판매 기록을 세웠습니다. 또한 그의 음악과 이미지는 아직까지도 인기가 식을 줄 몰라 엘비스의 저택을 방문하는 관광객수가 1년에 60만명이나 됩니다. 그들 중에 약 40퍼센트가 35세 이하 젊은 사람들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은 미국과 전 세계적으로 젊은이들이 개방되면서 젊음과 자유를 즐기고 인종차별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냉전시대에 자유세계가 아닌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그의 인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1950년대 중반부터 공산주의 독재국가이던 동유럽 나라 사람들은 외국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엘비스 프레슬리와 다른 로큰롤 가수들의 노래를 듣곤 했습니다. 로큰롤 음악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미국과 서유럽의 자유와 개방을 상징했기 때문에, 공산주의 당국은 그 음악을 금지시켰고 로큰롤 음악이 '섞은 자본주의 문화," 또는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문화 침투'라고 공격했습니다.

그래서 1950년대 극장에서는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서구 사회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보여주기 위해 짧은 기록영화를 보여주곤 했습니다. 그러한 기록영화는 바로 미국이나 서유럽에서 수 만명 젊은이들이 춤을 추면서 듣는 로큰롤 공연 장면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저의 부모 세대에게서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동유럽의 젊은이들은 공산주의 선전을 그대로 믿진 않고, 그 짧은 2-3분이라도 로큰롤 공연장면을 보기 위해 영화표를 사고, 그 선전 기록영화가 끝나면 이어서 상영될 영화는 보지도 않고 나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동유럽 젊은이들은 외국 라디오 방송을 듣거나 암시장에서 음반을 구입하면서 로큰롤 음악을 접하게 되고, 또 그 음악을 들으면서 해방의 꿈을 꾸곤 했습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동유럽 공산국가들은 로큰롤 음악의 강한 영향력을 더 이상 막을 수 없었기 때문에, 구소련, 체스꼬슬로벤스꼬 (체코슬로바키아), 뽈스까 (폴란드)나 마쟈르 (헝가리)에서도 결국 로큰롤 음반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967년에 유명한 록 그룹 ‘Rolling Stones’가 뽈스까의 수도인 와르샤와 (바르샤바)에서 공연을 할 때는 젊은이들의 대폭동이 일어날 뻔하기도 했고, 1973년에는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구소련의 첫번째 락 그룹 음반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로므니아 (루마니아)에서는 국내 락 음악이 주로 지하단체운동이었고 외국 락 가수들은 공연을 못하게 되어 있었으며 중앙 라디오나 TV에서는 락 음악을 절대로 들려주진 않았습니다.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1989년 이후에야 유명한 외국 락 그룹들이 루마니아에서도 공연을 하게 되었고 음반뿐만 아니라, 해방 후에 생긴 수백 라디오나 유선과 무선 TV방송을 통해서 이제는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기념하면서 '로큰롤의 왕'이라 불린 그의 역사적인 역할까지도 생각해 봅니다. 동유럽 젊은이들은 로큰롤 음악을 통해서 자유민주주의 세계인 미국과 서구의 자유를 느낄 수 있었고, 그 자유의 꿈을 꾸면서 개방의 날을 찾게 된 것이었습니다.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사람들도 특히 외국 라디오 방송이나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온 DVD, USB와 메모리 칩을 통해 한국을 포함한 바깥세계에 대해 예전보다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한국과 외국 음악이라 하면 냉전 시대에 동유럽에서 벌어진 ‘로큰롤 형상’과 같은 발전을 북한에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세계를 향하고 있는 K-pop으로 널리 알려진 한국의 팝음악도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간 DVD, CD-ROM, SD카드와 USB를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바깥세계로부터 들어오려는 정보를 계속 차단하려 하지만 앞으로 그러한 정보에 의해 현실을 왜곡시켜 김씨 일가의 우상숭배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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