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남한 영화에 열광하는 북 주민들

란코프 ∙ 한국 국민대 교수
2014.05.29

북한 사람들은 북한 영화나 소설을 별로 보지 않고 읽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일입니다. 물론 북한은 고립된 국가이기에 폐쇄정책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얼마 전까지도 외국영화나 예술작품을 보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약 10여 년 전부터 주민들에게 북한의 영화와 예술만을 강요하는 고립 정책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록화기(VCR)의 양산과 빠른 확산 때문에 수많은 북한주민들이 외국영화와 드라마를 수시로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불법적인 행동이긴 하지만 북한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빼앗겼던 선택의 기회를 다시 얻은 셈입니다. 그러니 북한 주민들의 선택은 명확합니다. 당국이 허락하는 북한영화보다는 외국영화, 특히 남한 영화에 빠져들게 된 것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북한영화를 외면하는 이유에 대해 지나치게 정치성과 사상성이 많고 천편일률적인 김씨 일가에 대한 우상화 내용이 많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아 대답합니다. 실제 북한 영화를 보면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노동당과 수령에 대한 불과 같은 충성을 강조하고 어떤 방침이나 명령에도 무조건 따라야 하는 혁명투사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랑이나 가족관계와 같은 인간문제에 대한 내용이 있다 할지라도 이와 같은 인간다운 이야기는 오로지 수령과 당에 대한 충성을 바탕으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북한영화를 본 외국사람들은 북한이 수령과 노동당 밖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기계적인 로봇들이 사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물론 사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도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 합니다. 그들은 개인관계, 가족 문제, 생계문제 등 일상생활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고 위대한 수령이든 최고 지도자이건 권력자에게 존경심을 표할 수는 있지만 내심으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억지로 짜 맞춘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참된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북한 극장이나 도서관에서 이와 같은 작품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결국 북한 주민들은 남한을 비롯한 외국영화나 문학작품을 즐겨봅니다.

물론 북한에서도 당과 수령 같은 정치적인 이야기보다 주민의 일상생활을 다루는 작품을 만들어낸다면 이들 작품은 주민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자들은 문화예술을 독립적인 창조활동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상교육의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성을 뺀 작품을 만드는 것을 용인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진짜 생활을 보여준다면 북한 당국자가 걱정하는 사회의 어두운 현실이 그대로 주민들에 알려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90년대 이후 북한의 일상생활을 다루게 되면 그 당시의 장마당 사정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에 장마당이 있다는 것 자체를 당국자들은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문화예술인들은 무조건 정치성이 높은 작품만을 만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북한주민들은 정치성이 짙은 북한의 창작품을 싫어하고 해외에서 만들어진 재미있는 작품들을 몰래 숨어서 즐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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