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앞 ‘납북자 이름부르기’ 행사, 자원봉사자들의 열성적 참여로 더욱 빛나

2007-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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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김나리 kimn@rfa.org

지난 1일부터 나흘간 밤낮으로 진행됐던 백악관 앞 ‘납북자 이름부르기’ 행사가 언론과 일반인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4일 막을 내렸습니다. 이번 행사엔 매일 5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쉬지 않고 봉사에 나섰는데 특히 올해 78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첫 날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참여한 한인 교포가 있어 더욱 관심을 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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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도 손전등을 들고 납북자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 - RFA PHOTO/노정민

미국의 백악관 앞 라파옛 공원에선 지난 1일부터 4일까지 한국전쟁중 또는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 납치된 사람들의 조속한 귀환을 촉구하는 ‘납북자 이름부르기’ 행사가 열렸습니다. 행사를 주관한 일본의 납북자구조희망센터(ReACH)와 피랍.탈북인권연대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북한에 의해 납치된 사람들의 숫자는 8만3천여 명에 달합니다. 때문에 5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밤낮으로 이들 납북자들의 이름을 알파벳 순서로 다 부르는데 꼬박 나흘이 걸렸습니다.

특히 이들 자원봉사자들 가운데는 올해 78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난 나흘간 납북자 이름을 부르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집회에 참석한 한인 교포도 포함돼 있어 더욱 주위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주인공은 강선우씨입니다. 워싱턴 근교 매릴랜드주에 거주하는 강씨는 한때 납북됐다 가까스로 탈출한 기억이 있어 이번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고 4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강: (I was once abducted and three days later I ran away...)

"제가 대학교에 다니고 있던 21살 때, 심부름을 다녀오던 길에 납치됐습니다. 납치된 이후 저는 막사에 감금이 됐습니다. 그 이후에도 여기 저기 이동을 하며 다녔는데요. 사흘 후에 가까스로 탈출을 했습니다. 그 때 저희 어머니께서 가슴 졸이며 밤잠을 설치며 애타게 기다리셨던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납니다."

강씨는 한국전이 끝난 직후인 1955년대 초 미국으로 이민화 살고 있지만, 당시 납치될 뻔 했던 사건만 떠올리면 벌써 5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마음이 저려온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백악관 앞 행사에서 납북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할 때마다 감정이 복받쳐 올라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습니다.

강: (I was reading the name one by one so early and dark in the morning...)

"라파옛 공원에서 아주 고요한 이른 새벽에 납북자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동이 트기 전이라 굉장히 깜깜한 새벽이었는데요.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올라 납북자들의 이름을 호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거의 울음을 터뜨릴 뻔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겨우 마음을 다잡고 심호흡을 한 뒤에 다시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강씨는 친분이 있는 한 가족의 가장이 납북됐다는 점도 이번 집회에 참가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15년 동안 알고 지낸 그들은 자신의 아버지 또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의도적으로 그 당시의 얘기를 꺼내지 않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다행히 자식들이 미국에서 배관일로 성공을 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당시의 얘길 하지 않으려 하며, 얼굴에선 슬픔이 배어나온다고 설명했습니다.

강씨는 남한과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의 납북자들의 이름이 불러진 이번 집회는 성공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강: (Yes. We're very happy. There are very good participation...)

"정말 큰 성공이었다고 생각하며, 저희도 대단히 기뻐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을 비롯한 시민들의 반응도 대단히 좋았습니다. 특히 미국인들의 경우 라파옛 공원에서 저희가 하는 시위를 보고 함께 사진도 찍자고 하고, 함께 이름도 불렀습니다. 언론에서 관심도 많이 보였습니다. 첫 날 자정에 언론사가 찾아왔고요. 같은 날 새벽 2시엔 AP와 워싱턴포스트 지에서 나와 회견을 요청했습니다. 저희는 상당히 고무됐습니다."

지난 3일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 신도 서너명과 함께 자원봉사자로 이번 행사에 참여했던 정일남 목사는 4일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회견에서 집회의 효과는 수치로 따지긴 어렵지만 목소리를 전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 일단 장소가 라파옛 공원이다 보니, 정치적으론 백악관 바로 앞에서 하기 때문에 상징적 의미도 있고. 큰 효과라기보다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리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물론, 정치적 효과가 더 잘 나오면 다행이겠지만, 효과 면에선 제가 장담하긴 어렵고요. 어제 이름을 부르면서 백악관 쪽을 바라봤는데, 어떤 한 사람이 망원경으로 백악관 안에서 저희를 관찰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백악관 안에서 누군가가 관심을 갖고 있구나. 그 정도로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정 목사는 이어 통일 이전에 납북자 문제와 탈북자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번 집회는 중요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한편 이번 행사는 남한의 피랍탈북인권연대측과 공동으로 진행됐는데, 한국에서는 지난 2일 하루 임진각에서 30여 납북, 인권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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