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통일 독일 현장 다녀온 탈북자 김영일 씨 “동독 주민들의 변화가 장벽 무너뜨려”

독일을 서쪽과 동쪽으로 갈랐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올해로 20년이 됩니다. 독일이 통일 이후 겪은 경제 문제, 사회 문제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은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남의 문제가 아니라 곧 우리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서울-이현주 xallsl@rfa.org
2009.01.19
‘만나고 싶었습니다.’ 오늘 시간엔 최근 독일 통일 현장을 다녀온 탈북자 김영일 씨를 만나봤습니다.

김영일 씨는 2001년 남한에 정착해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시민단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기자: 독일을 지난 12월 14일부터 21일까지 2주 동안 독일을 다녀오셨지요?

김영일: 네, 아주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기자: 독일은 처음 방문하신 거죠?

김영일: 네, 첫 방문이죠. 사실 제가 처음 독일을 갈 때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갔어요. 한국에서 독일 통일을 평가하면서 우리의 통일에 적용하려고 하잖아요, 그러나 부정적인 시각이 매우 컸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직접 만나본 독일 사람들, 서독 사람이든 동독 사람이든 그렇지 않았어요.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어요. 자기들이 그 당시 “통일한 것이 다행한 일이다” “잘 된 일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상에 남았습니다.

기자: 2주 일정이었는데요, 어디를 주로 다녔어요?

김영일: 우선, 뮌헨에서 3일 정도 있었고요. 문화부와 산하 정치교육원을 방문했습니다. 두 번째는 뫼들라로이트라고 동서독 접경 지역, 우리로 치면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인데 지금은 박물관을 만들었습니다. 동서독 분단 시기에 건물이나 장벽을 남겨놓았고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나를 보여주는 박물관이었습니다. 라이프치히에서 2일, 그리고 베를린에 들어갔습니다.

기자: 어떤 곳이 가장 인상에 남으세요?

김영일: 라이프치히의 슈타지 박물관이요. 슈타지 박물관은 주마다 거의 있다고 하는데요, 특히 이곳은 상징적인 장소라고 했습니다. 바로 통일의 시발점이 이곳이었다고 합니다. 89년 니콜라이 교회에서 평화 기도를 하다가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오게 되고, 시위 과정에서 광장 옆에 있는 슈타지 박물관을 시민들이 또 점거를 하게 됐다고 합니다.

슈타지 박물관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예전 동독에서 시민운동을 하던 분들이랍니다. 이분들이 과거 사회주의 사회였을 때 주민 통제나 인권 침해 사례를 설명해줬습니다. 이런 얘기 들으면서 북한 생각도 많이 났고요, 그런데 들으면서 이 사람들한테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이것 너무 약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이 났습니다.

기자: 이 박물관에서 일하는 분들이 동독 출신으로 통일 전 시민운동을 했던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탈북자라고 밝히고 인사하셨어요?

김영일: 탈북자라고 말씀했더니 굉장히 반가워했습니다. 제가 수저 선물을 드렸어요. 밥 먹을 때마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도 생각해 달라는 뜻이었습니다. 워낙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제대로 얘기 나눌 기회가 없었는데, 너무 아쉽습니다.

기자: 슈타지 박물관에서는 어떤 것들이 전시돼 있나요?

김영일: 슈타지도 동독 국민 전체가 서로서로 감시하게 했습니다. 부부가 감시하고 어린 소녀, 소년들을 슈타지 정보원으로 활용했습니다. 여러 가지 일반 주민들을 감시하는 데 동원했던 도구들도 전시돼 있고, 우편 통신 수단을 도청하고 관리하는 기계도 있었고요. 그리고 사람들을 어떻게 감시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도 전시돼 있었습니다.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어느 중학생의 글이었습니다. 당시 서독에 마이클 잭슨이 공연을 왔을 시절인가 봐요, 이 동독의 중학생이 그 얘기를 하면서 서독은 동독보다 잘 산다 이런 내용의 글이었는데, 이 글이 바로 슈타지에 올라간 모양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사회주의 독재 국가의 모습은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시민운동 하시던 분들이 얘기하는 것이 자기네들이 통일까지 갔던 궁극적인 계기는 동독 주민들이 변화했다는 겁니다. 외부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동독 주민들이 원했다는 겁니다. 이 사회는 이제는 안 된다, 이런 주민들의 마음이 움직이니까 정치인들이 움직인 것입니다.

기자: 베를린 장벽 다녀오셨나요?

김영일: 시민들이 부숴버린 흔적이 많았는데요, 그냥 거리에 있는 조금 남아 있는 벽 정도로 보일 뿐이고 이것이 동서독을 갈렸던 장벽으로 보이진 않았습니다.

기자: 베를린 장벽에 낙서가 참 많던데요. 혹시 문구 같은 것 좀 써보셨어요?

김영일 : 거기에서는 그런 생각을 못 봤어요. 박물관 방명록에 몰래 남겼는데요, ‘미래 한반도 통일을 위하여’ 뭐 이런 얘기 썼어요.

기자: 아무래도 그 현장에서 우리의 통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죠. 이번 방문단이 12명이고 그 중 영일 씨 혼자 탈북자였죠?

김영일: 그래서 그런지 탈북자라고 하면 좀 반가워하고 특별하게 봤습니다. 옛날 분단 시절을 생각하면서요. 저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북한 인권 문제를 얘기를 많이 했고, 통일을 대비해서 탈북 청년들에게 기회를 많이 달라고 얘기했습니다.

기자: 저는 동독 사람들도 서독 사람들도 모두 “통일은 잘했다”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남네요. 이런 통일 독일의 교훈들이 우리에게도 좋은 약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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