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 당신이 안 계신 동안] ③ “어른 돼서 만나자고 했던 말 기억나니?”

도쿄-노재완 nohjw@rfa.org
2017-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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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9일 도쿄 납치문제대책본부 회의실에서 만난 사사키 노리코 씨.
지난 3월 29일 도쿄 납치문제대책본부 회의실에서 만난 사사키 노리코 씨.
RFA PHOTO/ 노재완

앵커: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 사이 많은 일본인이 행방불명 되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로 알려졌습니다. 일본인 납치 피해 사건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일본 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는 납치 피해자들의 무사귀국을 기원하며 공동기획 프로그램 ‘당신이 안 계신 동안’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그 세 번째 시간으로 납치 피해자 요코타 메구미 씨의 동급생 사사키 노리코 씨의 얘깁니다. 노재완 기자가 사사키 노리코 씨를 만나봤습니다.

지난 1977년 13살의 나이에 일본 니가타현에서 납치됐던 요코타 메구미 씨. 4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요코타 씨를 기억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중 사사키 노리코 씨는 요코타 씨가 히로시마에 살 때 아주 절친했던 친구입니다. 그는 요코다를 줄여서 ‘요코’라고 불렀습니다.

사사키: 제가 요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소학교 4학년 때입니다. 4학년에 정식으로 올라가기 전에 일주일간 반 배정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임시로 같은 반이 되었습니다. 친구들과도 뿔뿔이 흩어지게 되어서 굉장히 외로워하고 있을 때 처음으로 말을 걸어준 친구가 바로 메구미였어요. 당시 책을 한 권씩 들고 교실 뒤에 가서 읽는 그런 활동이 있었는데요. 그때 제가 가져온 책을 보고 그녀가 “같은 시리즈 책을 갖고 있으니까 앞으로 서로 빌려 보자”면서 정말 활짝 웃어줬는데 저의 외로웠던 마음이 풀어졌던 기억이 납니다.

두 사람은 4학년 때 다른 반으로 배정돼 함께하지 못했지만 5학년과 6학년 때는 같은 반에서 지냈습니다. 사사키 씨 역시 요코타 씨에 대해 칭찬을 많이 했는데 특히 노래 잘하는 친구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사사키: 교실 대각선 쪽에 음악실이 있었는데요. 여기서 매일 아침 노래를 불렀습니다. 메구미는 6학년 때 음악 소조활동을 했고 그 전에는 체육 소조 활동을 했습니다. 저는 4학년 때부터 계속 음악 소조 활동을 했고요. ‘기구를 타고 그 어디든지’ 라는 노래가 있었는데요. 그 노래를 자주 불렀고요. 메구미는 무슨 노래라고 할 것 없이 끊이지 않고 불렀어요.

그는 요코타 씨를 그리는 마음에서 동요 ‘기구를 타고 그 어디든지’를 불러주었습니다.

(동요 부르기)

사사키 씨는 요코타 씨가 발레를 해서 몸매가 좋았다며 이 때문에 친구들이 요코다 씨의 몸매를 무척 부러워했다고 말합니다. 재주 많고 인기가 많았지만, 요코타 씨는 결코 친구들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요코타 씨도 친구 사사키 씨와 사소한 일로 다툰 적이 있습니다.

사사키: 요코는 굉장히 화기애애한 것을 좋아하고 다툼이 있으면 한발 물러서는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싸웠을 때도 먼저 다가가 화해를 청했습니다. 토요일로 기억됩니다. 사실 저하고도 한번 싸워서 제가 화를 크게 내고 집에 돌아간 적이 있는데요. 역시나 그는 월요일에 바로 화해를 청했습니다. 저희 학교에는 아주 긴 계단이 있었습니다. 그 긴 계단에 올라서니 요코가 서 있었는데 요코는 저를 보자마자 “토요일에는 미안했어. 내가 나빴어. 정말 미안해” 라며 사과했어요. 누가 나빴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고요. 단순히 의견 차이로 인한 거였는데도 요코는 먼저 사과했습니다.

친구 메구미가 니가타로 이사했지만 엄마들끼리는 서로 친했기 때문에 연락을 계속 주고받았습니다. 실종 사실을 알게 된 것도 학부형회를 다녀온 그의 엄마가 전해줘 알게 됐습니다. 사사키 씨는 친구의 실종 소식을 접했을 때 단순 가출 사건으로만 알았습니다.

사사키: 그때는 사실 가출의 가능성이 컸습니다. 왜냐하면 요코가 사라졌을 때 그동안 모았던 용돈도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나를 만나러 오려는 거구나 하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멀리 떠난 친구가 큰 모험까지 하며 나를 만나러 오는구나 생각했죠.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친구는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누군가에 의해 납치됐을 것이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합니다.

사사키: 당시 저는 그냥 시체라도 좋으니까 제발 나오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그런 안 좋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확실히 해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납치되어서 북한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살아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북한 정부가 납치를 인정했을 때는 바로 돌아올 줄 알았습니다.

친구가 북한에 납치됐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사사키 씨는 히로시마가 아닌 아마가사키에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구출 활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히로시마에 들러 특정 실종자 구출모임에 참여했습니다.

사사키: 아라키 선생님이 공부 모임을 만드셔서 저도 거기에 참가했습니다. 아마가사키에 살 때는 정말 한 집 한 집을 방문하면서 서명을 부탁드렸는데요. 그때 마음이 아팠던 것은 메구미가 이미 북한에서 세뇌당해 북한 사람으로 살고 있는데 저의 구출 활동이 오히려 풍파를 일으키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친구들에게 서명 용지를 보낸 것을 일괄정리해서 엄마에게 보내면 엄마가 그것을 다시 구출모임에 갖다 주고 이어 가족모임에도 보내주었습니다. 저는 초창기에는 이런 식으로 해서 활동을 했었습니다.

사사키 씨는 이혼한 뒤 다시 히로시마로 돌아왔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구출 활동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얼마 후 그는 난소암에 걸려 구출 활동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는 난소암 치료를 위해 두 번이나 수술했고, 2년 반을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회복하기까지 5년이 걸렸는데 난소를 떼어낸 후 노화가 빠르게 진행돼 힘든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사사키: 의사 선생님이 보통 사람보다 20년은 노화가 빠르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외박 허가를 받아서 택시를 타고 갔을 때가 기억이 납니다. 이 택시 기사가 “아이고 할머니 너무 기운이 없으시네요” 라고 말을 했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였습니다. 머리카락은 전부 빠져 얼마 있지 않았고 얼굴에는 기미가 너무 많이 피어 이 기사님은 제가 할머니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건강이 많이 회복된 상태입니다. 건강 관리를 위해 걷기를 자주 하고 있습니다. 아직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납치 피해자 구출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올해는 특별히 더 큰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고 사사키 씨는 말합니다.

사사키: 구출 모임에 참여하는 분들은 저 같은 지인 보다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그것은 메구미만을 위한 것은 아니고요. 다른 피해자를 위해 열심히 활동했다고 봅니다. 현재 모임인 간사회를 저희집에서 하고 있는데요. 정말 작은 모임이지만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몇 년에 한 번 집회를 열기도 하고 올해는 처음으로 납치문제대책본부 사람들과 함께 조금 큰 활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는 과거 추억을 떠올리며 송별회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송별회는 니가타로 이사 가는 요코타 씨를 위해 마련한 자리였는데 두 사람은 송별회에서 어른이 되면 꼭 만나자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40년이 흘렀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사키: 요코가 전학 가기 전 저희 집에서 송별회 파티를 했는데요. 마치고 헤어질 때 저희 집 약간 앞쪽에 급격한 내리막길이 있었는데 저는 그 위에서 그를 떠나 보냈습니다. “요코, 건강해~” 라고 소리를 치니까 다른 친구와 팔짱을 끼고 내려가던 요코가 휙 돌아보면서 “어 그래, 우리 어른 돼서 만나자”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당시 저도 “응, 그래 나도 약속할게“ 하면서 헤어졌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그 언덕길을 갈 때면 저는 혼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린 벌써 어른이 되었는데 왜 못 만나는 거지’…

기자: 이 방송을 북한에 계신 요코타 씨가 들으신다는 생각에서 친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나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얘기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사키: 요코의 북한 생활을 전해 준 소가 히토미 씨가 말해준 건데요. 요코는 꽃잎을 말려 만든 책갈피라든지 또 북한에서 부를 수 없는 금지된 노래를 부르고 아이스크림도 달라고 하는 등 언제나 적극적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소가 씨로부터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요코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요코가 건강히 잘 지냈으면 좋겠고요. 희망을 잃지 않길 바라고 있습니다. 요코를 돕고 싶어 하는 사람은 정말 많을 거로 생각해요. 그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저는 요코가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과 일본 납치문제대책본부의 공동기획 프로그램 ‘당신이 안 계신 동안’, 다음 주 이 시간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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