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 당신이 안 계신 동안] ⑥ 큐슈학원에서의 추억

구마모토-노재완 nohjw@rfa.org
2017-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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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7일 구마모토 큐슈학원에서 만난 코테가와 이사오 씨.
지난 3월 27일 구마모토 큐슈학원에서 만난 코테가와 이사오 씨.
RFA PHOTO/ 노재완

앵커: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 사이 많은 일본인이 행방불명 되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로 알려졌습니다. 일본인 납치 피해 사건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일본 정부 납치문제대책본부는 납치 피해자들의 무사 귀국을 기원하며 공동기획 프로그램 ‘당신이 안 계신 동안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그 여섯 번째 시간으로, 납치 피해자 마츠키 카오루 씨의 동급생 코테가와 이사오 씨의 얘깁니다. 노재완 기자가 코테가와 씨를 만나봤습니다.

취재진은 지난 3월 27일 구마모토에 있는 큐슈학원을 방문했습니다. 큐슈학원은 마츠키 씨가 졸업한 중고등학교로 현재 교원 가운데 마츠키 씨의 동급생이 있어 그를 만나러 갔습니다.

(노크 소리)

기자: 실례하겠습니다.

코테가와: 안녕하십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자: 오늘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코테가와: 감사합니다. 저는 코테가와 이사오라고 합니다.

큐슈학원은 구마모토 최고의 고등중학교입니다. 106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큐슈학원은 그동안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큐슈학원은 원래 남학교였는데 25년 전부터 남녀공학으로 바뀌었습니다.

코테가와: 마츠키가 있었던 시절에 비하면 면학 분위기가 더 좋아졌습니다. 옛날에는 행동이나 말들이 거칠었다고나 할까요. 남자들만 득실거리던 때는 좀 거친 부분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꽤 부드러워져서 저희가 다니던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입니다.

동급생 코테가와 씨는 소학교 때부터 병을 자주 앓아 학교를 오래 다녔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동급생들보다 무려 4살이나 많았다고 합니다.

코테가와: 마츠키와는 고등학교 3학년 1년밖에 같이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때도 반이 달라 대화를 한 적은 거의 없었는데요. 그러나 마츠키를 잘 아는 제 친구들이 있어 나중에 그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저와 마츠키는 같은 해에 큐슈학원을 졸업했습니다. 그래서 졸업 사진첩에도 우리가 같이 실려 있어요.

코테가와 씨는 대학 졸업 후 모교인 큐슈학원에서 교원으로 일했습니다. 이미 정년 퇴임했지만, 그는 지금도 비상근 교원으로 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참 교원으로 일하고 있을 때 그는 동급생의 실종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코테가와: 1980년 말에 언론에 납치되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당시에는 행방불명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름도 실명으로 나오지 않고 구마모토의 M 모 씨라고 주간지 등에서 보도됐습니다. 제가 동급생이고 이 학교에 있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가 마츠키 씨 납치 사건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마츠키 씨의 동생 마츠키 노부히로 씨가 이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입니다. 그때가 1990년대 초입니다.

코테가와: 제가 수업할 기회가 있어서 마츠키 동생과는 자주 대화를 했습니다. 그 친구 동생이 졸업하고 나서 특히 2002년 조일 정상회담이 있고 나서 북한 정부가 정식으로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하면서 실명이 밝혀지게 됐습니다. 그때를 계기로 마츠키 동생에게 자주 연락했고요. 마츠키의 누님인 사이토 후미요 씨도 만나고 그랬습니다.

코테가와 씨는 학창시절 마츠키 씨를 잘 알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친구들한테서 들은 마츠키 씨에 대해 얘기해주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마츠키 씨는 정말 모범생이었습니다. 성실한 데다 착하고 공부도 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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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테가와 씨가 교정을 둘러보며 마츠키 씨가 기억할 만한 곳을 안내하고 있다. RFA PHOTO/ 노재완

코테가와: 사실 오늘 고등학교 때 마츠키와 친했던 사람이 있어서 부르려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후루사토노 가제’(고향의 바람) 라는데 나와서 마츠키에게 육성으로 편지를 읽었던 동급생인데요. 지금 중병으로 몸이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해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매우 안타깝습니다.

큐슈학원은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미션스쿨입니다. 미션스쿨은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이기 때문에 모든 학생이 예배에 참석하고 찬송가를 부릅니다.

코테가와: 오늘 모시려 했던 사람은 마츠키와 함께 예배하고 찬송가를 불렀던 친구입니다. 그 친구는 고등학생 때 불렀던 찬송가를 같이 부르자며 라디오에서 직접 찬송가를 부르기도 했는데요. 저도 그 방송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취재진이 “그 곡을 기억하고 있느냐”고 묻자 코테가와 씨는 찬송가 445장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찬송가책을 가져와 445장을 펼쳐 보였습니다. 그러고는 찬송가 한 소절을 불렀습니다.

♬ 주님과 함께 나가자. 죽음도 고뇌도 두려워 말고.

다만 주님 행하심에 열중하고, 나가자 나가. 아멘. ♬

코테가와 씨는 마츠키 씨가 자신을 모를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동급생으로서 그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과거 마츠키 씨에게 쓴 편지를 낭독했습니다.

코테가와: 마츠키, 잘 지내나? 나는 자네와 같은 큐슈학원을 졸업한 코테가와 이사오야. 분명 내 목소리를 자네가 들을 수 있다고 믿는다. 큐슈학원은 꽤나 변했어. 1991년에 남자 고등학교에서 남녀공학으로 바뀌었는데 자네가 나의 이 말을 들으면 분명 놀랄 거야. 하지만 아무리 표면상 바뀌었다 할지라도 큐슈학원의 정신만큼은 변함없지.

큐슈학원 동창회는 물론 재학생들까지 마츠키 씨의 무사 귀국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츠키 씨를 돕기 위한 모금 활동도 학교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코테가와: 난 자네가 북한에서 꼭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에 대해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얘기해주고 있다네. 그리고 영상물도 보여주고 내가 오랫동안 편집해 온 학교 신문 ‘큐슈학원 통신’에도 무슨 일 있을 때마다 그것을 호소해 왔어. 또 수년 전부터 학교 매점에 포스터를 설치하고 모금함도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알리고 있다네.

매점에 있는 모금함은 학생들의 사랑으로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그래서 3년 전에는 마츠키 씨 동생을 학교로 불러 모금함에서 모은 돈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코테가와: 중학생들과 고등학생들 모두 너무 순수해서 매점에서 뭔가를 사고는 마츠키 선배님께 작은 정성을 드린다며 그 잔돈을 모금해 주기도 합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요. 금액을 떠나 그 마음이 너무 귀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는 구마모토의 변화상도 알려주었습니다. 특히 고속열차인 신칸센이 개통됐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코테가와: 구마모토에도 신칸센이 개통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도쿄 같은 곳에 갈 때 침대 열차를 타고 갔는데요.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은 구마모토와 오사카 간을 3시간에 갈 수 있게 되었고 그 밖에 항공 회사도 많이 들어와 교통편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코테가와 씨는 잠깐 건물 밖으로 나와 교정을 안내했습니다. 그는 작년 4월 지진으로 학교 건물이 많이 붕괴했지만 본관만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지진으로 구마모토 성 일부가 무너질 정도로 강력했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코테가와: 지금은 1호관이라고 하는데요. 당시엔 본관이라고 불렀어요. 본관은 재작년 9월부터 내진 공사에 들어가 작년 3월에 준공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내진 공사가 끝나고 한 달 후에 지진이 났습니다. 정말 다행이죠. 이게 늦었더라면 본관도 무너졌을 겁니다. 보시다시피 아무런 피해 없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본관 안으로 들어가니 코테가와 씨가 말했던 매점이 보였습니다. 방학 중이라 매점 문은 닫혀 있었습니다. 그래도 매점 유리창으로 모금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코테가와: 이게 모금함입니다. 잘 안 보이지만 포스터와 마츠키 사진도 있습니다. 모금함에 자연스럽게 넣는 아이들도 있고 매점에서 일하는 분이 “부탁해”하면 넣을 때도 있고 자율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마츠키 씨가 공부하던 교실도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교실은 내부 수리를 통해 현대적으로 재건했지만 위치는 당시 그대로였습니다.

코테가와: 이 교실입니다. 3학년 1반이 여기였어요. 이 3학년 1반 교실에서 마츠키가 공부했습니다.

본관을 나와 운동장 쪽으로 걸어 올라갔습니다. 운동장은 가운데 인조 잔디가 깔렸고 주변에 달리기 선이 그려져 있습니다. 운동장 한쪽에는 아주 오래된 녹나무(향장목)가 보였습니다. 코테가와 씨는 100년 정도 된 나무라며 마츠키 씨도 여름날 이곳에서 쉬면서 놀았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코테가와: 지금 학생들은 나무 밑에서 잘 쉬지 않지만 예전엔 뛰어놀다가 나무그늘 밑에서 쉬고 그랬죠.

운동장을 지나니 아주 오래된 건물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교회였습니다. 머릿돌에는 교회가 1925년에 준공됐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는 취재진을 교회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코테가와: 그때는 여기서 학년 별로 예배를 드렸어요. 마츠키도 일주일에 두 번이나 세 번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의자가 좁아서 빽빽하게 앉았습니다. 서로 너무 가까이 끼어 있으니까 친구들끼리 소곤소곤 이야기할 때가 많았는데요. 그러면 선생님께서 뒤로 오셔서 나무막대기 같은 것으로 이렇게 때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정말 많이 혼났죠. 지금 학생들은 착해서 그렇게 하진 않아요.

코테가와 씨는 학창시절 친구들이 예배당에서 목사님을 놀렸던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코테가와: 학교를 좋아하시는 목사님을 ‘챠프렌’이라고 부르는데요. 그때 챠프렌은 미국인이셨어요. 당연히 목사님은 일본어를 잘 못 하셨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목사님의 서툰 일본어를 흉내 내곤 했는데요. 그때 킥킥거리고 웃으면 노려보시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과 일본 납치문제대책본부의 공동기획 프로그램 ‘당신이 안 계신 동안’, 다음 주 이 시간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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