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의 꼬제비(꽃제비)들 <1>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14.11.19

북한 당국이 선전매체를 통해 소개하는 북한의 모습에는 웅장함과 화려함만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감추고 싶은 북한의 참모습이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2분 영상, 북한을 보다’시간에서 실제로 북한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통해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오늘날 북한의 실상을 꼬집어봅니다.

- 황해북도 사리원, 역 앞의 꼬제비

- 배고픔에 노출되고 무관심에 방치되고

- 꼬제비의 원인은 식량난 아닌 ‘빈곤’ 문제

- 김정은의 지시로 애육원 짓고 꼬제비 수용

- ‘여전히 꼬제비 있다’, 재생산하는 사회구조도 문제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가 2008년 황해북도 사리원에서 촬영한 영상입니다.



역전의 상점 앞에 수레를 세워놓은 북한 주민이 옹기종기 모여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는 10살도 안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우두커니 서서 음식을 먹는 북한 주민을 바라보고 있는데요, 지저분한 옷차림, 깡마른 체구 등을 볼 때 꼬제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옆에는 더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가 서서 음식을 먹는 북한 주민을 바라만 보고 있는데요, 한눈에 봐도 배가 고파 먹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눈치만 볼 뿐,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데요, 어른들에 둘러싸여 음식을 먹고 있는 여자아이와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조금 뒤 남자아이는 음식을 얻은 듯합니다. 등을 돌리고 쪼그려 앉아 봉지에 담긴 음식을 조심스레 꺼내는데요, 한 입, 한 입씩 먹기 시작합니다.

영상을 촬영한 ‘아시아프레스’는 이 꼬제비가 언제나 역전 광장을 배회하며 구걸하는 듯했다고 전했는데요, 눈치를 보며 음식을 먹는 꼬제비의 모습은 측은하기까지 합니다.

다른 날 다시 찾아간 사리원역 앞 대로,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 속에 그 남자아이가 길거리에 누워 자고 있습니다. 마치 죽은 것처럼 미동도 없이 축 늘어진 모습에 촬영자도 당황한 듯한데요,

- 이 아이 괜찮은가? 잠든 거지요?

마침 옆에 있던 북한 여성은 이 꼬제비를 처음 본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파트에 올라가 똥을 싸고, 엉망진창이었던 아이가 어느 날 깨끗하게 나타나더니 또 이 모양이라는 겁니다.

[북한 주민] 아파트에 올라가 똥을 싸고(굉장했어요), 어느 날 깨끗하게 하고 나타나더니 오늘 또...

황해도는 북한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로 농산물 생산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2012년에도 극심한 식량난과 빈곤 등으로 황해북도 사리원, 황해남도 해주 등 도시에 꼬제비가 많아졌는데요, 특히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어린 꼬제비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로 빈곤문제, 그리고 최소한의 삶도 보장하는 못하는 사회 제도를 지적합니다.

[Ishimaru Jiro] 북한의 꼬제비는 식량 부족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 빈곤 때문입니다. 어린 꼬제비를 보면서 이해해야 하는 것은 부모가 키우지 못하게 된 데 배경이 있다는 거죠. 부모들이 키우지 못하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건데요, 이는 식량 부족 때문이 아니라 현금 수입이 어려워서입니다. 현금 수입이 어려워지면 바로 생활에 위기가 닥치고, 이혼과 가출이 생기면서 아이를 버리는 상황이 생깁니다. 따라서 꼬제비의 모습을 보면 ‘북한의 빈곤해결이 가장 큰 문제다’. ‘이를 해결하는 사회적 구조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빈곤문제’와 ‘사회적인 보장 문제’를 가장 큰 원인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시마루 대표는 요즘 북한의 길거리에서 어린 꼬제비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고 전합니다. 민심잡기에 나선 김정은 제1비서의 지시로 ‘애육원’이란 고아보호시설을 세워 어린 꼬제비들을 수용하기 때문인데요,

[Ishimaru Jiro] 김정은 정권은 꼬제비가 외국에 공개되는 것을 매우 신경 쓰는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김정은의 지시로 애육원이란 고아보호시설을 많이 세우고 있거든요. 거기서 잘 먹이고 입히라는 지시가 올해 초부터 있었습니다. 실제로 ‘아시아프레스’가 파악한 몇 개의 도시 중에서 고아 보호를 시행하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양강도 어느 지방의 소규모 도시에도 애육원이 생기면서 꼬제비를 수용하고 있고, 양강도 혜산시장 부근에는 요즘 꼬제비 모습이 잘 안 보인다고 합니다. 일단은 애육원에 수용하라는 강력한 지시가 있었다고 하거든요. 특히 혜산은 국경 연선에 있기 때문에 꼬제비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휴대전화를 통해 계속 노출됐기 때문에 신경 쓰는 것 같습니다.

지난 5월 자유아시아방송(RFA)의 취재에 따르면 북한은 전국 곳곳에 고아원을 세우고 고아들을 집중적으로 부양하고 있습니다. 당시 남포시의 주민은 “당의 지시로 중등학원, 즉 고아원에 대한 공급이 우선으로 이뤄져 고아들이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는데요, 김정은 제1비서가 올해 초 육아원과 애육원 등을 방문한 뒤 장마당에 떠도는 꼬제비들을 전부 수용하도록 조치했다는 겁니다.

또 지난 6월에는 평안북도의 신의주와 동림군, 삭주군 등에 고아들을 수용할 3개의 애육원이 건설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북한에 떠도는 어린 꼬제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이 만난 남포시의 주민은 “꼬제비들이 공급을 잘 해주어도 습관상 자유를 원하기 때문에 조직생활을 해야 하는 고아원을 탈출해 역전과 장마당을 떠돌고 있다”고 답했는데요, 이시마루 대표도 대도시의 시장에 나가보면 여전히 꼬제비가 있다고 말합니다.

[Ishimaru Jiro] 다른 도시에도 애육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래도 대도시의 시장 부근에는 여전히 꼬제비가 있습니다. 꼬제비가 재생산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시설에 수용했다 해도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 한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동영상에서 더 충격적인 것은 어린 남자아이가 죽은 듯 쓰러져 있어도 주변의 북한 주민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건데요, 옆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그저 쳐다만 볼뿐입니다.

- 순찰대는 장사라는 것 통제하지 말고 이런 거나 통제하지. 이게 치안유지지

고난의 행군 시절 이후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꼬제비의 존재는 너무 일반화됐습니다. 사람들이 꼬제비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생활도 어렵기 때문에 꼬제비에게 신경 쓸 여유조차 없어진 겁니다.

[Ishimaru Jiro] 지금도 크게 변했다고는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일단 중앙에서 애육원을 만들고 꼬제비를 돌봐주라는 지시가 있으니까 하고 있지만, 대도시의 장마당 부근에는 여전히 꼬제비가 떠돌아다닙니다. 그런데 이들을 도와주면 자기 것이 없어지지 않습니까? 자기도 모자란데... 사람들에게 꼬제비를 돌봐줘야 한다는 마음이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김정은 정권은 꼬제비를 수용하는 '애육원'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은 북한이 고아정책을 추진한 이유에 대해 “외국에서 고아들을 돕는다고 해놓고 북한의 비밀을 빼간다”며 “고아정책은 외부 의존도를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고요, ‘아시아프레스’는 내부 취재협조자를 인용해 “김정은 제1비서가 한국이나 일본 방송에서 북한 꼬제비의 모습이 많이 노출된 것을 알고 대책을 세우라 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북한 당국이 꼬제비를 돌봐주며 교육하고 있다고 선전하지만, 이것이 실제 어린 꼬제비에게 어떤 효과가 있는지, 또 다른 꼬제비를 낳을 수 있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점은 없는지, 꼬제비의 원인이 되는 ‘빈곤’과 ‘사회보장 제도’의 문제에는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등을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편, 길가에 쓰려져 자고 있던 동영상 속 꼬제비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그렇게 방치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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