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청소년의 남한살이] ② 마음의 상처가 만드는 일탈 행위

서울-박성우 parks@rfa.org
2009.10.06
MC: 2009년 현재 한국에서 일반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탈북 청소년은 대략 1,200여 명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가을 개편을 맞이해 이들의 한국 생활을 집중 조명해 봤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순서로 탈북 청소년이 갖고 있는 ‘정신 심리적 문제’가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서울의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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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정착 지원시설인 하나원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전진용 씨. - RFA PHOTO/박성우
RFA PHOTO/박성우
지난 8월. 한국에 정착한 지 석 달이 조금 넘은 21살의 탈북 청년이 자신의 혈액형을 알아보는 과학수업 시간에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혈액검사를 하기 위해 자신의 손가락을 바늘로 찔렀고, 붉은 피가 조금 나오는 걸 보는 순간 이 청년은 몸이 경직되면서 넘어졌다는 겁니다. 당시 수업을 주관한 <북한인권시민연합>의 교육훈련팀장인 이영석 선생입니다.

이영석: 그때 당시엔 (그 청년이) 말을 안했는데, 한 2-3일 뒤에 저녁에 같이 앉아서 상담을 하는 시간에 이유를 물어보니까, 처음엔 ‘그냥 긴장을 좀 해서 그랬다’고 말하더니, 나중에 시간이 좀 더 지나서 이야기 하는 게, ‘어떤 한 장면이 떠올랐다’고 그러더라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이냐’고 물어보니까 ‘어릴 때 봤던 공개 처형 장면’이라고 말하더라고요. 특히 사람이 피를 쏟으면서 쓰러지는 장면이 자기 손가락에서 나는 피를 보는 순간 다시 떠오르면서, 자기도 그렇게 쓰러지는 장면이 같이 겹쳤나보더라고요. 그래서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아무런 생각이 안 났다고 합니다.

자신의 손가락에서 난 피를 보고 북에서 본 공개 처형을 떠올리며 경련을 일으켰다는 이 청년의 사례는 탈북자 개개인이 겪고 있는 심리적 고충을 잘 보여줍니다.

이밖에도 탈북 청소년의 정신 심리적 문제는 단체 활동에서도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만든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 사건’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공포 영화를 함께 본 탈북 청소년들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태도를 보이곤 한다고 이영석 선생은 설명합니다.

이영석: 그냥 너무 잔인하게 죽이는 모습을 보면 애들이 굉장히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 같아요. 자기가 이해를 못하는 죽음이니까. 처음엔 저도 몰랐었는데, 두세 번 공포영화를 보고나서 애들이 집단적으로 선생님한테 짜증을 많이 낸다든지, 학생들끼리 다툼도 굉장히 많아지고. 그걸 (영화를) 보고나서 자기들도 말해요.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라고요. 그런 걸 봤을 땐 아마 어릴 때 모습이나 살기 힘들었던, 고통스러웠던 모습이 약간 겹쳐져서 그런 생각이 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남한의 일반인들은 그냥 봐 넘길 수 있는 영화를 놓고서도 탈북 청소년들은 왜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할까. 그 해답은 이들이 겪은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탈북 청소년들은 같은 나이또래의 남한 아이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겪었습니다. 극한의 공포 속에서 국경선을 넘었고, 중국과 제3국을 떠돌며 여러 가지 이유로 정신적 충격도 받았습니다. 게다가 한국 땅에 와서도 이들은 문화적 이질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남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합니다.

남한 생활에 적응하는 게 힘들다고 말하는 탈북 청소년 중에는 심할 경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증상을 갖고 있습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탈북자 정착 지원시설인 <하나원>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전진용 선생입니다.

기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구체적으로 어떤 증상인가요?

전진용: 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의학적으로 살펴보면, 극심한 외상 사건에 노출되면서 나타나는 정신 심리학적 반응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요. 극심한 외상 사건이라는 건 전쟁이라든지, 폭행이라든지, 아주 극심한 재해라든지, 교통사고, 그리고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질병, 이런 것들에 해당하고요. 이로 인해서 경험들이 꿈에서 계속 떠오른다든지 하는 ‘재경험’ 현상, 그리고 비슷한 사건을 반복적으로 회피한다든지, 아니면 자극에 민감해서 조그만 소리라든지 사소한 자극에도 크게 반응하는 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할 수 있죠. 우리 주변에서도 홍수나 화재와 같은 재해, 건물 붕괴, 강도나 강간 사건의 피해자 같은 사람의 경우에도 이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자: 선생님, 그러면 탈북자의 경우엔 어떤 경험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유발할 수 있습니까?

전진용: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탈북 과정에서 경찰에게 잡힐 뻔한 경험이 있다든지, 아니면 직접 북송을 경험했다든지, 다른 사람의 처형을 목격한다든지, 아니면 가족이나 아주 친한 사람과의 이별을 경험하는 경우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유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겪은 탈북자들의 한국사회 적응도가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영국의 정신의학 전문 잡지인 ‘저널 오브 로스 앤 트라우마 (Journal of Loss and Trauma)’에 지난 2007년 ‘탈북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한국사회 적응’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쓴 한국의 이화여자대학교 연구진은 탈북자의 45.1%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갖고 있을 확률이 높은 고위험군(high-risk group)으로 분류했습니다.

이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위험도가 낮은 저위험군(low-risk group)에 속하는 나머지 54.9%의 탈북자들보다 한국 사회 적응도가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이 연구진은 밝혔습니다.

당시 연구에서 ‘고위험군’으로 분류한 45.1%의 탈북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지, 모두가 실제로 장애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전진용 선생은 자신의 <하나원> 진료경험에 비춰 볼 때 실제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갖고 있는 탈북자는 대략 5~10% 정도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탈북자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탈북 청소년들 역시 정신 심리적 장애로 인해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고 전진용 선생은 말합니다.

전진용: 물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많이 부족하지만, 탈북 청소년도 성인과 마찬가지로 탈북 과정에서 많은 힘든 일을 겪었고, 또 적응의 문제를 경험하기 때문에, 이들도 성인과 마찬가지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고위험군이 사회 적응도가 더 낮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탈북 청소년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뿐 아니라 다양한 정신 심리적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전진용: 탈북 청소년 같은 경우엔 성인들과 다른 문제를 경험할 수 있는데요. 우선 정체성이 아직 확립되지 않은 시기에 제3국을 떠돌면서 혼란스럽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북한인이냐, 아니면 제3국이냐, 아니면 대한민국에 맞춰야 되느냐’에 대해 굉장히 혼란스럽게 됩니다. 탈북 과정에서 가족과 이별하는 과정을 겪기도 하고요. 또 한국에 있는 아이들은 한창 공부할 나이잖아요. 한창 공부할 나이에 자기는 탈북 과정에서 1~2년 이상의 학업 공백 기간을 갖게 되고. 이런 학업 공백이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적응 스트레스의 문제를 갖게 하고요. 또 청소년들은 대게 또래집단에 민감하고, 또래집단의 인간관계를 통해서 여러 가지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는데요. 탈북 과정에서 친구 사귀기 등의 인간관계를 형성할 여건이 부족하게 되고, 대인관계에서 있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모든 증상들은 기억력과 집중력을 감퇴시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탈북 청소년의 학습을 방해하고 사회 적응을 힘들게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적응이 힘에 겨운 이들은 학업을 포기한 채 처지가 비슷한 이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웁니다. 외로움에 못 이겨 이성 친구와 동거를 하다가 돈을 벌기위해 범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이 같은 일탈 행위의 원인을 놓고 그간 한국 사회는 다양한 분석을 내놨습니다. 문화적 이질감과 의사소통의 문제, 따라가기 힘든 교과목 등이 원인으로 제시됐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표면적 이유 말고도 이젠 탈북 청소년들이 갖고 있는 심리 상태의 이면을 진중하게 살펴보고 그에 맞는 해법을 적극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전진용: 청소년도 성인과 마찬가지로 외상 사건을 경험하고 있고, 청소년기 자체가 정체성 혼란이라든지 여러 가지 사춘기 문제를 경험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들이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렇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탈북 청소년의 심리적 상흔은 이들의 일탈 행위와 상관관계에 있습니다. 탈북 청소년의 내면에 있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선 교육 제도를 개선하고, 정착 지원금을 주고, 직장을 구해 주는 것과는 별도로 이들의 정신 심리적 문제를 해결해 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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