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특별기획] ⑤ 탈북자 1박2일 북한올림픽 대표 단체응원

워싱턴-김진국 kimj@rfa.org
2012.08.24
us_supporters_305 미국-북한 축구 경기를 보러 온 미국인 가족.
RFA PHOTO/ 김진국

앵커: 자유아시아방송은 2012 런던올림픽을 돌아보는 특집기획을 전해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탈북자들의 1박 2일 북한올림픽대표 단체응원 여행’ 두 번째 이야기를 김진국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심판의 호각 소리와 함께 미국과 북한의 올림픽 여자축구 경기가 시작됩니다.

응원단의 목소리도 경기 흐름에 따라 커졌다 작아졌다 합니다.

(리연주) 코리아~~

(다 함께) 코리아

(조해성) 북한을 응원하니 다들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전세계에 항상 문제아니까

(탈북자) (북한이 위기를 넘기자) 잘한다, 잘한다

3만 관중들과 함께 파도타기 응원에도 동참합니다.

(다 함께) 와

(탈북자) 패스정확도가 떨어진다.

(김민성) 미국 선수는 우리 선수 둘씩 달고 달리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해

전반 25분 이날의 결승점이자 유일한 득점이 미국 공격수 발 끝에서 나옵니다.

환호하는 관중 앞에서 첫 득점에 성공한 미국 선수들이 한 줄로 서서 춤을 추며 기뻐합니다.

(탈북자) 이 아이들은 얼마나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니,

(탈북자 2) 북한에서 저러다가는 큰일 날려고요

런던올림픽 미국-북한 여자 축구 경기 직전 두 나라 국기 파는 상인. RFA PHOTO/ 김진국
런던올림픽 미국-북한 여자 축구 경기 직전 두 나라 국기 파는 상인. RFA PHOTO/ 김진국
미국과 북한의 공방이 오가지만, 체격이 작은 북한 선수들이 매번 공중 공 다툼에 밀리자 탈북자들도 한마디씩 거듭니다.

(탈북자) 키가 작으니까 높은 볼을 딸 수가 있나

(탈북자2) 김정일이 뭘 먹였겠어

(김민성) 국제경험이 없어서 그래 폭넓은 체육 발전해야 하는데, 212개 시군 중에 여자축구를 하는 곳은 40개 정도다.

(김민성) 외국팀 불러들일 돈도 없고 국제 경험이 없을 수 밖에 없다. 남자배구는 해외대회 나갈 때 국제 경기 한번 못해보고 나갔다. 성분을 엄청나게 따진다. 내 성분은 사회주의 국가만 갈 수 있었다.

(기자) 요즘도 그럴까요

(김민성) 여전하죠

(리연주) 코리아 코리아, 응원해야지. 한국 경기였으면 응원이 대단했을 거야. 남북이 통일되면 미국도 쉽게 이길 거야.

경기는 미국의 1대 0 승리, 미국은 조 1위를 확정했고 북한은 2패째를 당하며 이날 경기로 올림픽의 대장정을 끝냈습니다.

다시 김민성 씨 집에 모인 탈북자들이 늦은 저녁과 함께 오늘 경기의 소감을 나눕니다.

(정기남)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잘 먹지 못해서 그런지 잘 뛰지를 못하더라고요, 보기 안쓰러웠어요.

(이나) 이긴다는 생각은 안 했고 비기면 좋겠다고 했는데, (졌지만) 그래도 잘했어요, 너무 잘했어요. 생각 외로 용기도 많이 냈어요.

고향 생각난 김에 가장 나이 어린 해성 씨가 노래 한 곡하면 좋겠다는 기자의 제안에 해성 씨가 일어납니다.

올해 36살인 해성 씨는 군 복무 중이던 18살에 가족과 함께 북한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조해성) 저희 어머니께서 즐겨 부르던 노랜데, 영화 ‘은비녀’의 주제곡입니다. 일제시대 에 일본에 갔던 조선인들이 해방되어도 올 수 없던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른 노랩니다.

(노래) 나서 자란 내 고향을 저 멀리 남겨 두고, 현해탄에 흘린 피눈물 그 얼마더냐 꿈에도 그리운 아 내 고향 가슴 속에 가슴 속에 그 언제나 남아 있네

올림픽 경기에 출전한 북한 선수를 보며 북한이 미웠고, 북한이 그리웠다는 탈북자들.

살 수 없어서 그곳을 떠났지만 돌아갈 환경만 된다면 언제든 고향으로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리연주)재작년에 동생 구하러 중국 갔다가 하마터면 북한에 잡혀 갈 뻔 했어요. 동생한테 줬던 손전화를 (북한) 보위부에 뺏겼는데, 내가 머물 던 집을 (중국) 공안이 습격한 거예요. 잡힐 뻔하다 짐도 다 버리고 뒷 문으로 도망쳐서 라오스로 도망 나왔습니다. 여동생은 사형 직전까지 몰려서 무릎이 꺾기는 고문을 당했다고 들었고 (눈물) 지금은 노동교화소에 있다고 들었어요

(최중화) 경기를 보고 오니까 고향이 더 그립네요, 미국선수와 비교해서 우리 선수들 얼굴이 밝지 않으니까 사회환경이 모질구나, 안됐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은 인생 기회가 되면 꼭 고향으로 돌아가서, 고생한 형제들 안아주고, ‘내가 왜 거기를 떠날 수 밖에 없었는지’를 말해 주고 싶습니다. 돌을 막 지낸 딸을 두고 왔는데, 마음에 상처로 남았습니다.

(김민성) 나도 노래 하나 하지요. 우리가 도망친 곳이긴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많은가 보네요.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가족들과 헤어져 있다 보니까, 다시 만나고픈 마음이 다 담겨 있거든요

(노래 ‘꽃피는 봄날에’) 봄철에는 우리 함께 씨를 뿌리고, 가을에는 우리 함께 열매 거두리 아 눈물 속에 헤어지더니 꽃피는 이 봄날 다시 만났네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진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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