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보도-북한인권법 시행 8년 성과와 과제] ① 탈북자 146명 미국 정착 '새 삶'

워싱턴-변창섭 기자, 박주현 인턴기자 pyonc@rfa.org
2012-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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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100번째로 정착한 탈북자 조전명(가명) 씨.
사진제공-정베드로 대표

앵커: 북한의 열악한 인권 실태에 관한 경종을 울리고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미국에서 2004년 처음 제정된 북한인권법이 올해로 시행된 지 8년째를 맞이했습니다. 이 법은 2008년 한 차례 연장된 뒤 지난 8월 미국 연방의회의 초당적인 지지로 의회를 통과한 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오는 2017년까지 다시 연장됐습니다. 북한인권법 제정 이후 미국에선 북한인권특사직이 신설됐는가 하면 탈북자의 미국 정착과 중국 내 탈북자의 북송금지 등 다양한 노력이 펼쳐져 왔는데요. 올해로 시행 8주년을 맞이한 북한인권법의 성과와 과제를 두 차례에 걸쳐 살펴봅니다. 오늘 제1편에서는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경위와 성과에 관해 살펴봅니다. 변창섭 기자, 박주현 인턴 기잡니다.

2004년10월18일. 바로 이날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초당적으로 의회를 통과한 북한인권법을 서명, 발효시켰습니다.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이처럼 법으로 제도화돼 결실을 맺기는 미국이 처음입니다. 미국 백악관은 “미국은 북한 주민의 고통과 탄압을 완화하겠다는 결의를 오래 다져왔다”면서 “부시 대통령이 북한인권법에 서명한 것은 북한 주민의 복리에 대한 미국의 우려와 의지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올해로 시행 8주년을 맞이한 북한인권법이 맨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많은 사람의 땀과 노력이 있었습니다. 북한인권법의 전신은 2003년 11월 미 상원에서 샘 브라운백 의원이 발의한 북한자유법인데요. 짐 리치 하원의원을 비롯한 하원의원 16명도 2004년 봄 관련 법안을 발의해 본격 논의를 거쳐서 7월 하원본회의를 통과했고, 두 달 뒤엔 상원에서도 이 법을 통과시킴으로써 마침내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것입니다. 당시 북한인권법의 산파역을 맡았던 브라운백 상원의원은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 사태에 대응해” 이 북한인권법을 발의하게 됐다고 그 취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그간 북한의 열악한 인권실태가 국제사면위원회와 프리덤하우스 같은 각종 인권옹호단체와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를 통해 공개되면서 1990년대말부터 북한인권법 제정을 위한 공감대가 널리 퍼져왔었는데요. 이미 1999년엔 탈북자 3명이 미 의회에서 증언을 했고, 2000년 국제종교자유보고서는 북한을 종교탄압국가로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2001년 10월 미국북한인권위원회가 설립됐고 2003년6월엔 북한난민구호법이 통과됐습니다. 또한 2003년 7월엔 미국 내 20여개 단체가 중심이 돼 북한자유연합이 출범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2003년 10월 미국 북한인권위원회는 사상 처음으로 북한정치범수용소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해 큰 충격을 던졌습니다. 미 의회에서 마침내 2003년 11월 처음으로 북한자유법안이 상정된 것도 이런 여러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인권법을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던 당시 미국이나 한국이나 여건이 그다지 녹록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북한의 핵개발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던 때라 북한인권보다는 핵 문제에 모든 신경을 쓰고 있었고, 한국에선 북한에 유화적인 노선을 추구해온 김대중 정부가 이른바 ‘햇볕정책’을 펼치면서 북한인권문제를 가급적 건드리지 않으려는 분위기였습니다. ‘북한자유연합’ 수잔 숄티(Susan Scholte) 공동의장의 설명입니다.

수잔 숄티: “At the time there was Sunshine Policy, and there was this general feeling not in the US Congress, but in South Korea, we should suppress human rights issues…“당시 한국에선 햇볕 정책으로 인해 북한인권에 관해 거론하지 않으려는 일반적인 분위기가 있었는데요. 그런 분위기는 미국 의회가 아닌 한국 국회에서 분명했습니다. 불행히도 그건 큰 실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죠. 미국에서도 북한 핵문제에 대한 우려 때문에 클린턴, 부시 행정부도 북한 핵문제냐 인권문제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선 북한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인권옹호 단체들이 음으로 양으로 북한인권법 제정을 위한 노력을 계속했는데요. 특히 의회에선 짐 리치 하원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던 더그 앤더슨 씨의 숨은 노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북한인권법이 발효하기 6개월 전인 2004년 4월 28일 수도 워싱턴의 미 의사당 앞에서는 ‘북한자유일’이란 이름으로 첫 북한인권 규탄대회가 성황리에 열려 북한인권법 제정에 도움을 주기도 했는데요. 지난 2009년부터 ‘북한자유주간’이름으로 바뀌어 미국과 한국에서 번갈아 열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국에서 처음 발효된 북한인권법은 크게 북한인권향상, 곤궁에 처한 북한 주민의 지원, 북한 난민의 보호 등 세가지 테두리를 정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담고 있는데요. 주요 항목을 살펴보면 탈북자 망명과 정착 지원을 위해 2천만달러, 북한 민주화 지원에 4백만달러 등 매년 2천400만달러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북한에 대한 외부세계의 정보를 자유롭게 전달하기 위해 하루 12시간씩 라디오 방송을 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국무부 안에 북한인권을 전담하는 특사를 임명해서 북한인권 개선에 관한 업무를 전담, 조정하도록 맡겼습니다. 북한인권법은 또한 북한 안팎의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특히 북한인권법은 탈북자의 미국 정치망명과 관련한 조항도 마련해 합당한 법적 기준에 맞는 탈북자는 누구든 미국에 난민지위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실제로 이 조항 덕분에 2004년 이후 최근까지 모두 146명의 탈북자가 미국에 정착해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북한인권법은 2004년 4년 시한으로 발효한 뒤 2008년 10월 다시 연장됐습니다. 법이 다시 연장됐다는 건 북한의 인권 상황이 달라진 게 없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2008년 북한인권법 재승인안을 보면 주목할만한 요소가 눈에 띕니다. 바로 북한인권특사직을 종전의 임시직에서 정규직으로 격상했다는 점인데요. 초대 특사론 변호사 출신인 제이 레코위비츠 씨가 2005년 8월 임명됐지만 특사직이 임시직이어서 활동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북한인권특사인 로버트 킹 대사는 정규직답게 왕성한 활동을 벌여오고 있고, 지난해 5월 북한인권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해 주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북한인권위원회 그렉 스칼라튜 사무총장의 말입니다.

Greg Scalatoiu: 로버트 킹 대사는 경력이 상당히 많고, 북한을 아주 깊이 이해하고 있는 분입니다. 예전에 지금은 돌아가신 톰 란토스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기도 했죠. 톰 란토스 의원은 미국 고위 인사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했던 분입니다. 아무튼 북한인권법에 의해 그런 분이 북한인권특사를 하신다는 게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사람들, 미국 의회와 행정부가 그만큼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이처럼 탈북자에 대한 미국 내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부시 대통령은 2005년 6월 강제수용소에서 10년 이나 고생하다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강철환 씨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강철환 씨가 처참한 수용소 생활을 담은 책인 ‘평양의 수족관’을 읽고 감명을 받아 초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듬해 4월에도 탈북자 한미양 가족을 백악관에서 만나는 등 탈북자 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북한인권법이 일궈낸 성과는 또 있습니다. 2004년 북한인권법이 발효된 이후 해마다 봄이면 미국 의사당 앞에서 북한자유주간이 선포돼 북한인권의 참상을 알리고 개선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림으로써 북한인권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을 증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올해도 지난 7월 미 의사당 앞에서 북한인권집회가 열렸는데요. 당시 이 자리에 참석한 미 하원 외교위원회 로스-레티넌 위원장의 말입니다.

Ros-Lehtinen: 북한에서 독재자 김정일이 사망한 뒤 그의 아들 김정은이 들어섰습니다. 그것도 전투적인 마르크스주의와 중세적인 왕조정책을 방불케하는 이상한 후계과정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가 표면적으로 뭔가 보여주려 했지만 말짱 헛것입니다. 오늘과 북한과 중국에선 인간의 기본인권에 대한 심각한 위반행위가 계속 자행되고 있습니다. “One dictator died to be replaced by another, his son, and this was achieved by a strange succession process which makes it militant Marxism…”

또한 미 의회에서는 탈북자들이 증언으로 나와 자신들이 겪은 인권침해 경험과 강제수용소의 실태 등에 관해 증언하는 일이 빈번해졌습니다. 북한인권에 관한 각종 국제회의가 미국에서 열리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북한인권위원회 공동의장인 앤드루 나치오스 텍사스 대학 교수의 말입니다.

Andrew Natsios: Well, I think we’re noticing at our conferences a dramatic increase in the number of people attending and media coverage. .. “북한인권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숫자라든가 언론 보도가 아주 눈에 띠게 늘어났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관한 회의를 열었는데 <이코노미스트>를 비롯한 여러 영국 언론과 미국언론이 집중 보도했습니다. 또한 이 회의에 약 200명이 참석했는데 종전엔 고작해야 25명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끔찍한 인권상황에 대한 언론의 관심과 일반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게 하나의 성과라면 성과입니다. 특히 언론보도가 증가했다는 건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높아졌다는 걸 의미합니다. “

이처럼 북한인권 참상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은 미국뿐만이 아닙니다.  휴먼라이츠워치와 프리덤하우스, 앰네스티틴터내셔널 등 국제적인 인권옹호단체들도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을 알리는 데 주력해왔고, 특히 유엔총회는 2003년 이후 해마다 북한의 인권개선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해마다 채택해 국제사회에 북한인권의 실상을 널리 환시시켜왔습니다.

북한인권법은 이처럼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둬오다2008년 다시 4년간 연장됐고,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8월 재연장안을 서명, 발효시킴으로써 2017년까지 5년간 효력이 더 연장됐습니다. 북한인권개선에 대한 의지가 의회는 물론 행정부에서도 여전히 강하다는 방증이기도 한데요. 유명한 민간 정책연구기관인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의 연구원이자 북한인권위원회(NKHRC) 공동의장인 로베르타 코헨(Roberta Cohen)의 평가입니다.

Roberta Cohen: The adoption of this Act is a tremendous boon, this is a tremendous positive step for bringing to light the importance of looking at human rights in North Korea…“이번 북한인권법 재승인 안을 채택한 것은 북한의 인권을 살펴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 아주 긍정적인 조치입니다. 사실 2004년까지만해도 미국의 최우선 정책 순위는 북한의 핵 야욕을 저지하는 것이었지 인권문제는 뒷전이었습니다. 북한과의 협상에서 인권 문제는 의제로 간주되지도 않았지요. 또한 미국의 정치전략상 북한 인권문제는 뒤로 쳐질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재승인 안이 이런 기조를 바꾼 겁니다.”

이번 재승인안은 특히 중국 내 탈북자들에 대한 보호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합니다.  북한인권법이 이처럼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중국은 난민의 강제북송을 금지한 제난민협약과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한 국가입니다. 특히 이 같은 국제협약을 솔선해 실천해야 하는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국은 자국으로 넘어온 탈북자들을 ‘불법 경제이주민’으로 취급해 지난 20년 이상 북송시켜왔습니다. 바로 이런 현실을 감안해 이번 재승인안은 중국에 대해 탈북자의 강제북송을 즉각 중단할 것과 난민에 관한 여러 국제협약에 따른 의무를 준수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아무튼 북한인권법이 이처럼 성과를 거둔 것도 적지 않지만 아직 미흡한 부분도 많은데요. 기획 ‘북한인권법 시행 8년’ 다음 시간엔 북한인권법이 이룩하지 못한 미흡한 점은 무엇이고 앞으로 전망은 어떤지에 관해 살펴봅니다.  지금까지 RFA 박주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