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 살이] 신종플루와 광우병

2009-11-05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느 덧 천고마비의 계절-가을이 검붉은 단풍을 길거리에 우수수 쏟아내고, 찬바람을 쌩쌩 일구면서 총총걸음으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쯤 북에서는 한해 겨울 양식인 김장을 담그느라 모든 정신들이 거기에 가 있겠네요.

북에서 김장전투를 치르느라 분주하다면 요즘 남한에선 신종인플루엔자 일명 신종 플루 때문에 난리입니다. 남한 뿐 아니라 전 세계가 이것 때문에 들썩들썩 합니다.

신종플루란 쉽게 말하면 비루스가 변형된 독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1000명이 걸렸다 하면 1명 정도의 사망자가 나옵니다. 일반 독감의 사망률도 이와 비슷하니깐, 그냥 독감이 돌고 있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요즘 이 신종플루가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매일 감염자가 하루 1만 명씩 나옵니다. 상당히 많아보여도 남한의 인구가 5000만 명이니 결국 매일 5000명 중에 한 명이 걸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북조선 같으면 이런 것은 아무 문제도 아닐 겁니다. 거기서 만큼만 콜레라,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이런 것들이 여기서 돌았다고 하면 아마 국가가 마비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선 모두 혹시 내가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 산더미입니다. 남한에 와서 드는 느낌은 사람이 잘 살게 되면 생에 대한 애착이 참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제가 일하는 신문사는 인구 1000만 명이 사는 대도시 서울의 중심부인 광화문에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사무실에선 청와대가 코앞에 보입니다. 저는 북한에선 주석궁을 발밑에 내려다보면서 공부했는데, 여기와선 청와대를 내려다보면서 일합니다. 청와대가 가깝다는 것이 별로 좋은 일은 아닙니다.

온갖 시위가 쩍하면 회사 주변에서 벌어져서 참 시끄럽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밖에선 확성기를 요란하게 켜놓고 무슨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매일 같이 시위 구경하면서 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지난해 6월 벌어졌던 ‘광우병 소고기 반대 촛불집회’때는 정말 볼만했습니다. 두 달 동안 매일 같이 여긴 전쟁터가 됐습니다. 시위 원인은 이 방송을 애청하시는 분들도 어느 정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미국에서 들어오는 소고기가 광우병 병균에 감염돼 있을 수 있으니 들여오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인구가 3억 명인데, 지금까지 미국에서 생산된 소고기를 먹고 광우병 환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무튼 3억 명 중엔 발생하지 않았어도 혹시 남한 5000만 명 중에는 운이 나쁘면 내가 걸릴지 누가 아느냐 하는 것이 반대 시위대의 논점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것을 보면서 참 과민반응이 지나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북에서 어떤 분이 봐도 “참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저리도 난리네”하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2001년에 독일에서 광우병이 돌아 연령이 30개월이 넘은 소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나이가 두 살 반이면 북조선 같으면 한창 힘을 쓸 젊은 소 아닙니까. 이런 소들을 병이 걸렸다고 죽인 것도 아니고, 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다 죽여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소고기를 몽땅 땅에 파묻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북조선에서 너무 아까우니까, 어차피 땅에 묻을 거면 우리를 좀 달라고 했습니다. 독일 정부에서 공짜로 1만8000톤을 주었습니다. 이 소고기가 평양에 가서 햄버거, 다시 말해 고기겹빵 재료로 다 사용됐는데 이것도 아무나 못 먹습니다. 김일성 고급 당학교, 김대 등 잘 나가는 단위에만 특별 공급했습니다.

그런데 독일에서 땅에 묻을 소고기를 북조선에 준다고 하니 외국들에서 난리 났습니다. 심술부려서가 아니라, 아니 자기도 위험하다고 안 먹고 땅에 묻는 것을 북조선 사람들에게 먹으라고 주는 게 양심이 있나 이겁니다. 하도 비난을 받게 되니 독일 정부에서 소고기를 북조선에 공짜로 주던 것을 중단했습니다.

솔직히 북에서야 소고기 얼마나 먹어보기 힘든 것입니까. 2005년에 평양에서 조류독감이 돌아서 닭을 도살 처분했는데, 거기 동원된 군인들이 죽인 닭을 빼돌려 잘 먹었다고 하더군요. 저도 옛날 북에 있을 때 구제역에 걸린 돼지고기 잘 삶아먹었습니다. 아마 그런 일이 남한에서 일어났다면 난리도 보통 난리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신종플루 사태도 언제까지 야단법석일지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온갖 작은 위험에도 신경을 쓰면서 살다 보니 확실히 남한 사람들이 오래는 삽니다.

한국 남자의 평균 수명은 74.4세로 북조선 남자의 61.4세보다 13살 더 오래 산답니다. 여자는 남한 여자가 81.8세로 북조선 여자의 67.3세 보다 14살 더 오래 삽니다. 북조선의 평균수명이 정확한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있을 때보면 80세 넘기기 참 힘들었잖아요. 여기 서울엔 80세 넘은 노인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남한이 십 년 이상 오래 사는 것은 느낌상 사실인 것 같습니다.

북조선에선 먹고사는 것이 힘들다보니 건강에 너무 무덤덤하고 여기선 제가 보건대 너무 과잉반응인 것이 남과 북의 서로 다른 판이한 모습입니다. 하루 빨리 통일돼서 북조선 사람들도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많이 합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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