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통신] "한겨레계절학교에서 많은 것 배웠어요"
서울-변창섭 xallsl@rfa.org
2009-09-23
학습 능력의 차이 때문에 남한의 일반 정규학교에 다닐 수 없는 탈북 학생들을 돕기 위한 대안학교가 남한에는 여러 개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이용해 부족한 공부도 가르쳐주고 남을 배려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회적 덕목도 키워주는 한겨레계절학교가 특히 인기가 많습니다.
RFA PHOTO/변창섭
한겨레계절학교에서 올해 여름과정을 수료한 이주형 군(왼쪽)과 김호식 군(오른쪽).
학습 능력의 차이 때문에 남한의 일반 정규학교에 다닐 수 없는 탈북 학생들을 돕기 위한 대안학교가 남한에는 여러 개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이용해 부족한 공부도 가르쳐주고 남을 배려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회적 덕목도 키워주는 한겨레계절학교가 특히 인기가 많습니다. <서울통신>은 최근 한겨레계절학교를 수료한 뒤 주위 친구들로부터 ‘사람이 변했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칭찬을 듣고 있는 탈북 학생 2명으로부터 계절학교의 이점에 관해 들어봅니다.
10대 후반의 김호식(가명) 군은 같은 또래 남한 친구들은 대학생이지만 내년 봄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탈북 학생입니다. 지난 2004년 단신으로 남한에 입국한 김 군은 현재 학습 능력이 부족한 탈북 학생들을 위한 정규 대안학교 가운데 하나인 여명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 군은 이번 여름에 탈북 청소년을 위한 계절형 대안학교인 한겨레계절학교를 다닌 뒤 주변의 친구들로부터 ‘달라졌다’, ‘착해졌다’라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여름 방학을 이용한 한겨레계절학교의 특강은 3주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김 군은 그 기간에 보충 수업도 듣고 자원 봉사자로 온 남한학생들과 친해지면서 자신이 변한 모습에 스스로도 놀라워하는 반응입니다.
김호식: 이번엔 특별히 좀 남한 사람과 다른 경험을 했다. 여기 남한 학교에 다닐 땐 못된 애들만 만났다. 구석에 앉아 담배피우는 애들 만나고 중학생이 돼서 술 먹고 하는 애들 만났는데 이번엔 또 다른 모습으로, 착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니 나도 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대로 안 되지만 과거의 행동을 고치고 있는 중이다. 100%.
김호식 군과 함께 이번에 계절학교를 수료한 이주형(가명) 군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모범생’이 된 자신의 달라진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합니다. 지난 2005년 8월 탈북한 뒤 중국과 버마를 거쳐 2007년 12월 남한에 입국한 이 군은 남한에서 그런대로 일반 중학교를 잘 다녔지만, 고등과정은 도저히 같은 또래 남한 학생들을 따라갈 수 없어 현재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 이 군도 이번에 한겨레계절학교를 다니면서 공부와는 또 다른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갖고 있던 같은 또래 한국 학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꾼 겁니다.
이주형: 옛날에 게임을 많이 했다. 게임할 때보면 한국 애들이 욕을 너무 많이 하더라. 학교 다닐 때도 착한 애들도 있었지만, 시비나 싸움 거는 나쁜 애들도 있었다. 그런데 계절학교 가고 보니 한국 학생들이 예절도 바르고 친절하게 대해주더라. 나는 동갑이라 반말했는데 상대인 남한 학생은 존댓말 쓰고 예절바르게 나오더라. 그래서 내가 한편 부끄럽기도 하고 지금은 메시지 받을 때 존댓말 쓴다. 한국 애들도 착한 애들도 많고 우리와 같다고 느꼈다.
김호식 군은 원래 이번 여름방학 때는 북한에서 온 초등학교 동창들끼리 멋진 휴가를 떠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겨레계절학교의 특강 소식을 듣고 휴가를 모두 취소하고 곧바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여름 캠프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김 군은 이번을 포함해 벌써 5번째나 계절학교에 참여한 ‘단골 학생’입니다. 그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김호식: 계절학교에 한번 나가보니 배울 것도 많고, 선생님도 잘 가르쳐준다. 늘 계절학교 가면 자신감을 얻기 위해 간다.
이번에 두 번째인 이주형 군도 부족한 공부도 하고,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 계절학교를 다시 찾았다고 말합니다.
이주형: 남한 애들과 지내다보면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공부도 따라가기가 힘들어 계절학교에 와서 그걸 다 해소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다보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친구도 사귀게 돼서 이렇게 다시 왔다.
계절학교에선 탈북 청소년들이 어려워하는 영어와 수학을 포함해 국사와 과학 등 주요 과목에 대해 남한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들과 같은 또래의 학생들이 자원봉사로 참여합니다. 이 자원봉사자들은 각기 다른 학습 능력을 가진 탈북 청소년들을 위해 사실상 1 대 1 맞춤형 보충수업을 실시하기 때문에 수업 효과도 높습니다. 김호식 군은 이번 특강 기간에 영어 과목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며 싱글벙글입니다.
김호식: 제일 유익하게 든 과목은 영어다. 영어는 솔직히 2004년 남한에 와서부터 되게 어려웠다. 솔직히 영어는 제 인생에 저주받은 과목이었는데, 이번에 영어의 재미를 붙였다.
이주형 군은 수학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김 군이나 이 군이 공부 못지않게 계절학교를 통해 얻은 귀중한 경험은 또 있습니다. 계절학교가 마련한 ‘민주시민 교육’을 통해 토론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민주시민 교육은 특정 주제를 놓고 남한 학생들과 탈북 학생들이 서로 소단위로 모여서 자신의 생각과 남의 생각을 서로 비교 검토하며 토론을 벌이는 시간인데, 토론하다보면 자연스레 남북한 학생들이 한데 어울려 친해질 수 있습니다. 김호식 군입니다.
김호식: 공부 말고 얻은 것은 사람과의 관계, 내가 다른 사람하고 대화의 능력을 얻었다. 이번에 민주시민 교육을 받았는데, 거기서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할지 내가 말하기 전과 후에 10초 정도 생각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 전에는...
이주형 군도 이번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표현력을 키운 게 흐뭇합니다.
이주형: 원래 토론이나 발표 수업 때 생각은 있는데 그걸 잘 표현하질 못했다. 그런데 민주시민 교육하면서 제 생각을 알리고 주장해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김호식 군과 이주형 군이 이처럼 계절학교에서 좋은 효과를 얻은 데는 교사를 포함해 이들을 헌신적으로 도운 자원봉사자들 덕분입니다. 특히 이번 여름 계절학교 때는 경기여고의 다문화동아리에 소속한 여학생 20여 명이 자원봉사자로 나와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호식 군은 계절학교가 끝났어도 자신을 도와준 일부 남한 여학생과는 여전히 대화를 주고받는다고 밝혔습니다.
김호식: 특별히 제 눈에 딱 드는 예쁜 분하고 전화 번호주고 받아 지금도 가끔 ‘오빠, 공부 끝났어요.’하고 보낼 때가 많다.
김 군과 이 군 모두 현재 대학을 준비 중인 고등학생이지만, 미래의 꿈에 대한 의욕은 대단합니다. 이 군은 의대에 진학해 자신처럼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생각입니다. 요리사가 꿈인 김 군의 계획은 좀 더 구체적입니다.
김호식: 요리는 경력이라고 하지만 내 꿈은 요리사가 끝이 아니다. 거기서 더 나가 호텔 사장하고 싶다. 제가 앞에 나가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꿈도 마찬가지다. 첫 단계의 꿈은 요리사지만, 두 번째는 호텔 사장이 되는 것이다.
어느덧 계절학교 ‘단골 학생’이 돼버린 김 군과 이 군의 바람이 있다면 현재 약 3주로 돼 있는 특강 기일을 더 늘려달라는 겁니다. 이 군은 특히 평상시 학교 다닐 때는 3주가 길어보였지만, 계절학교에 가면 3주란 기간이 너무 짧게 느껴진다며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한편, 김 군과 이군이 수료한 한겨레계절학교는 남한의 대표적인 대북인권단체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지난 2001년부터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번갈아가며 남한에 정착한 탈북 청소년들에게 학습 능력과 사회성을 길러주기 위해 설립한 독특한 대안학교입니다. 최근 17회째를 맞이한 한겨레계절학교를 거쳐 간 탈북 청소년만 해도 3백 명이 훨씬 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