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인 농촌동원에 커져가는 불만

워싱턴-노정민 nohj@rfa.org
2015.06.25

형식화된 농촌동원...불편 겪는 북한 주민들

북한 당국이 선전매체를 통해 소개하는 북한의 모습에는 웅장함과 화려함만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감추고 싶은 북한의 참모습이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2분 영상, 북한을 보다’시간에서 실제로 북한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통해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오늘날 북한의 실상을 꼬집어봅니다.

- ‘다짐’과 ‘독려’에도 의욕 없는 북한 주민

- 척박한 땅, 부족한 농기계, 개인 활동 제한

- 성과나 대가 없는 농촌 동원에 불만만 가득

- 김정은 우상화 정치학습도 형식적

- 약속 어기고, 무리한 요구에 올해도 불만

- 농촌 동원에 대한 시각의 변화, 사회주의 약화의 단면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가 2013년 봄에 촬영한 농촌동원 회의의 모습입니다.

당시 이날은 북한 지방도시에서 농촌동원을 가는 날이었는데요, 동영상을 보면 북한 주민이 농촌동원 현장으로 가기 전 지시사항을 전달받고 ‘열심히 하자’는 다짐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앞에서 열심히 북한 주민을 독려하는데요, “그동안 열심히 했는데, 오늘 김매기 전투에서 자각적으로 하자” “오늘 과업에서 1등을 하자”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녹취] 여러 동무들 정말 땀 많이 흘렸는데, 오늘 김매기 전투에서 자각적으로 해야겠습니다. 오늘 과업에서 1등을 해야겠습니다.

회의를 마친 북한 주민은 현장으로 이동하는데요, 동원 현장에 도착하자 농장의 작업반장이 인원을 파악하고, 작업 구역과 양을 분배합니다.

[작업반장] 어디 김매겠습니까?

척박해 보이는 작업현장에서 뜨거운 햇살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쓴 북한 여성들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작업에 대한 의욕은 없어 보이는데요,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의 설명입니다.

[Ishimaru Jiro] 북한에서는 오래전부터 봄․가을 농번기에 온 국민이 농촌에 동원돼 작업을 도와주는 농촌동원을 전국적으로 해왔습니다. 원래는 ‘사회주의 북한에서 온 국민이 바쁠 때 도와주고 나눠주며, 농업 생산을 향상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는데, 오늘날 배급제가 무너지면서 성격이 달라졌어요. 이전에 농사가 잘되고 생산물이 많아지면 도시 주민도 살아가고 농민에게 돌아가는 분배도 생겼는데, 이제는 농사 자체가 잘 안 되는 것도 있지만, 도시 주민은 거의 현금으로 장마당에서 사 먹지 않습니까? 농촌 동원에 대한 개념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북한은 올해도 전국적으로 대규모 농촌동원을 시행했습니다. ‘밥숟가락을 들 힘만 있는 사람이면 모든 주민이 나서야 한다’는 말에 지난 4월부터 어른은 물론 어린 학생에 이르기까지 농촌 지원에 동원했는데요, 특히 올해는 극심한 가뭄 탓에 북한군도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농촌동원은 예년과 달리 의도와 성격이 형식화되면서 북한 주민이 큰 불편을 겪고 있는데요, 노동의 보상은 받지 못하고, 식량도 본인 스스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농촌 지원에 대한 열의가 없는 겁니다.

또 농촌 동원으로 장마당의 개장시간이 단축된 탓에 북한 주민의 생계가 막막해진 것도 불만의 이유가 되고 있는데요,

[Ishimaru Jiro] 오늘날 농촌 동원은 사회를 위하거나 자신의 생활과 관련된 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정부가 강요하는 여러 동원 노동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일반 도시 주민은 (농촌 동원을) 부담으로 느끼죠. 봄에는 김매기와 모내기 등으로 두 달 가까이 농촌 동원이 있고, 가을에는 수확 시기에 가야 하지 않습니까? 도시에서 여유가 있는 사람은 되도록 나가지 않으려 하고, 돈으로 해결하는 사례도 많아졌습니다. 그만큼 시간을 뺏기니까 장사도 못 하고요, 이처럼 농촌 동원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것은 북한 사회주의의 마비․약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다시 동영상을 보면 농촌 지원에 나선 주민이 손에 농기구를 들고 직접 밭을 갈고 있습니다.

메마르고 척박해 보이는 땅을 농기계 하나 없이 손으로 일구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한데요, 이 중 한 여성이 “자기 밭도 해야 하는데...”라며 푸념의 말을 내뱉습니다.

[녹취] 우리 조 빨리 나오. 빨리빨리...

작업반장이 일을 재촉하지만, 정작 일하는 주민은 형식적으로 움직일 뿐입니다. 어차피 국가 소유의 밭이라 동원된 주민에게는 이익이 없기 때문인데요, 특히 작업하는 밭의 사정은 더 심각합니다.

[북한 주민] 밭의 상태가 맥도 없고, 다 죽은 것 같다.

[Ishimaru Jiro] 아무래도 북한은 산악지대가 많아서 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많지 않습니까? 기계화가 잘 안 되고 농약 같은 것도 많이 부족하고, 이처럼 열악한 북한의 농업 현실 때문에 사람들이 손으로 작업할 노동이 많습니다. 또 자기가 만든 뙈기밭도 열심히 해야 자기도 먹고살기 때문에 거의 수입이 안 되는 농촌 동원을 정말 싫어하거든요. 당연히 불만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작업 도중 현장에서는 정치학습이 열리기도 하는데요, 동영상에는 농장 간부가 자리에 앉은 북한 주민 앞에서 김정은 정권의 우상화를 선전하는 연설을 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들어보니 “김정은 동지와 생사를 함께하는 진정한 동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심을 간직하여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당시 연설을 하는 간부도, 학습을 받는 주민도 형식화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시마루 대표는 올해 전국적으로 동원된 농촌 지원 가운데에서도 북한 주민의 불만이 컸다고 설명합니다.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도 돌아오지 않는 농촌 지원은 물론 약속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무리한 요구를 강행하는 북한 당국에 대해 불신과 불안감이 확산했다는 겁니다.

[Ishimaru Jiro] 작년에도 총동원 형식으로 봄 농촌동원에 주력했습니다. 특히 북한 당국이 분조 관리제를 내세우면서 일한 만큼 농민들도 수입도 많아지고, 생산량도 향상해야 하기 때문에 전국적인 온 국민의 과제로 많은 사람을 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 일반 사람에게 배급이 많아진 것은 거의 없었거든요. 먹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많은 사람을 동원했는데, 성과나 대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올해 4월 이후 농촌동원에 관한 불만을 많이 들었습니다. 작년에 고생이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불만이 더 커진 것을 느낍니다. 또 ‘산에 나무를 심어라’. ‘뙈기밭을 만들지 말라’는 지시까지 내려오지 않았습니까? 농민은 물론 도시 주민도 봄철에 고생도 많고, 불만과 불안감도 큽니다. 지금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 농사 전망이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올해 농촌 지원에 동원된 주민은 대부분 복귀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농촌 지원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고, 장마당 개장 시간에 관한 통제도 여전히 남아 있는데요, 북한 당국이 농촌 동원 자체를 주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2013년에 촬영한 농촌 동원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오늘날 북한에서 농촌 동원을 대하는 주민의 모습은 이전과 다릅니다. 북한 주민은 열악한 환경에서 무조건적인 농촌 동원을 강요하기에 앞서 개인의 경제생활을 인정해주고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지급해주길 바라고 있는데요,

이 또한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일반 주민의 의식이 변하고 있는 하나의 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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