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산 사슴목장

김주원∙ 탈북자
2017.07.25
deer_eating_treats-620.jpg 울산대공원 동물원의 꽃사슴.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나간 시간들을 통해 저는 김일성 일가와 북한의 특권층들을 위한 아미산총국의 규모와 운영방식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북한의 여러 지방들에 있는 아미산총국 산하 사슴목장에 대해 전해드리려 합니다. 북한에는 만주꽃사슴과 붉은사슴, 말사슴, 우수리사슴이 서식하고 있었는데 ‘고난의 행군’ 시기 먹을 것이 없었던 주민들의 무분별한 사냥으로 야생사슴은 거의 멸종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사슴은 물론 이젠 노루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입니다.

야생에서 번식하는 사슴들은 모두 멸종상태이지만 북한은 김일성 일가와 노동당 비서국, 정치국 간부들을 위해 아미산총국 산하에 수십 개의 사슴목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미산총국 산하 사슴목장들은 주로 꽃사슴과 말사슴을 사육했습니다. 북한 주민들 속에서 꽃사슴으로 불렸던 삼지연 사슴은 한국에서 우수리사슴입니다. 시베리아 우수리지방에 많이 서식하고 있어 우수리사슴으로 부르는데 북한에서는 삼지연사슴이란 이름으로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삼지연 사슴은 몸길이가 0.9m에서 1.6m 정도이며 몸에 하얀 반점이 꽃처럼 널려있다고 하여 북한의 주민들은 꽃사슴으로 불렀습니다. 삼지연사슴의 수컷은 암컷보다 몸집이 약간 큰데 몸무게는 보통 80㎏, 최고 130㎏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외 삼지연군 포태종합농장을 비롯해 아미산총국 산하 일부 목장들에서 사육하는 말사슴은 몸길이가 2m에 가깝고 몸무게는 최고 200kg까지 나가는 종류입니다. 한국에서 백두산사슴으로 부르는 말사슴은 북한의 천연기념물 제354호입니다.

사슴의 뿔은 녹용으로 불리는 귀한 약재이지만 고기 역시 다른 산짐승들에 비해 지방이 적고 누린내가 나지 않아 예로부터 보약재로 이용돼 왔습니다. 이씨 조선시대 한국의 전라남도 진도군과 완도군에서 임금에게 올릴 사슴들을 사육했다고 합니다. 생전에 만수무강을 꿈꿔 온 김일성도 일찍이 사슴 사육에 관심을 가지고 주민들에겐 일체 사슴을 사냥하지 못하도록 엄금했습니다. 개인은 죽은 사슴을 발견해도 절대로 손을 댈 수 없고 지역 당 조직에 보고를 해야 한다는 규정까지 만들었습니다.

북한에서 개인은 사슴을 사육할 수 없고 사냥할 수도 없으며 만약 덫에 걸리거나 사냥개에 물려서 잡힌 사슴이 있으면 중앙에 보고를 하고 지시에 따라 처리해야 합니다. 왜냐면 북한의 사슴은 모두 김일성 일가의 재산에 속하기 때문이었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산에서 발견한 녹용을 당에 보고하지 않고 몰래 팔아먹었다가 5년간의 징역형을 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북한은 사슴뿐 아니라 산삼도 개인들이 몰래 채취하면 불법으로 간주하고 법적인 제재를 가했습니다.

1988년 북부철길이 완공되던 시기 양강도 김형직군에서 선로작업을 진행하던 양강도 운흥군 대대의 한 돌격대원이 30년 묵은 산삼을 발견했는데 호기심에 가지 하나를 떼어 먹었습니다. 그 대가로 돌격대원은 3년간의 노동교화형을 살았습니다. 북한에서 사냥은 국가가 지정해준 사람들만 할 수 있었는데 이들은 해마다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이나 노동당 창건일과 같은 주요 명절이 있을 때에만 어떤 종류로 몇 마리를 잡으라는 지시를 받고 사냥총을 지급받았습니다. 물론 사냥이 끝나면 사냥총은 다시 지방 안전부(보안성) 병기과에 바쳐야 했습니다.

1980년대 초까지 주로 사향노루, 반달곰, 백두산호랑이와 사슴, 노루 등을 사냥했습니다. 또 주요 명절이 아니더라도 북한은 김일성 일가의 보약재로 사향노루와 야생곰, 새끼를 밴 사슴과 노루는 시도 때도 없이 잡도록 지시를 내리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냥총을 지급받은 사냥꾼들이 자신들의 몫으로 몰래 사슴이나 야생곰, 사향노루를 잡아들여 나중엔 양강도 백암군에 간신히 남아있던 사향노루마저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양강도는 1988년 여름 태풍으로 많은 나무들이 쓰러졌습니다.

이때 태풍에 쓰러진 통나무들을 중국에 수출했는데 통나무 1천입방을 주고 6톤적재 중국 동방호 자동차를 수입해들였습니다. 이후 ‘고난의 행군’이 닥쳐오자 북한은 통나무를 중국에 팔아 쌀을 사들였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산림은 황폐화되었습니다. ‘고난의 행군’은 인간에게만 닥친 불행이 아니었습니다. 산림이 초토화되면서 야생동물들은 삶의 보금자리를 빼앗겼습니다. 당장 생명을 유지하기에 바빴던 주민들이 당의 지시를 따를 리 없었습니다. 어린 아이들까지 옹노를 놓아 산토끼며 꿩을 잡아들였고 어른들은 그물을 가지고 참새와 박쥐까지 잡아 먹었습니다.

사슴과 노루, 곰은 사냥돼 밀수꾼들에 의해 중국으로 몰래 팔려나갔습니다. 백암일대는 사향노루와 수달을 잡기 위해 밀렵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북한에서 키우던 해리서(뉴트리아)는 주민들이 모두 훔쳐 중국에 팔아먹어 결국 목장이 폐쇄되기도 했습니다. 검은돈과 여우, 너구리의 가죽이 무더기로 중국에 팔려 나갔고 협동농장의 소, 양, 닭마저 개인들이 몰래 잡아먹거나 중국으로 팔아버렸습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협동농장의 소를 몰래 중국에 팔았다가 공개처형을 당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소도둑도 총살하던 시절에 아미산총국 산하에 양강도 삼지연군 녹수리 꽃사슴목장은 주민들의 필사적인 도둑질로 결국 폐쇄되고 말았습니다. ‘고난의 행군’의 참혹함은 무장경비를 서던 녹수리 꽃사슴목장이 폐쇄된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에는 김일성 일가와 특권층들을 위해 양강도 삼지연군 포태리와 녹수리, 풍서군 석우리, 삼수군 상거리와 함경북도 청진시 마전동, 함경남도 정평군 동천리, 장연군과 강원도 세포군 삼방리에 꽃사슴과 말사슴 목장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처음 생긴 사슴목장은 함경북도 청진시 청암구역에 있는 마전사슴목장입니다. 1955년에 김일성은 이곳 룡제가금목장에 사슴분조를 내오도록 했는데 이 사슴분조가 점차 확대되어 사슴작업반으로, 1967년에는 사슴목장으로 독립했습니다. 1960년대에는 양강도 삼지연군 보서노동자구에 속해있던 녹수평 등판에 녹수리꽃사슴목장을 건설했습니다. 빨치산 활동시기 김일성은 민간요법을 많이 익혔는데 추운 지방에서 자란 사슴의 고기가 맛도 좋고 약효도 높은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녹용이나 녹태도 춥고 물이 맑은 곳에서 살던 사슴의 약효가 더 좋다는 김일성의 확신 때문에 북한은 해발고가 높은 곳에 사슴목장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키운 사슴의 뿔과 녹태(사슴의 태반), 고기는 노동당 간부들과 빨치산 동료들에게 제공했습니다. 저는 1988년 겨울 3대혁명소조로 활동하던 기간에 휴가차 고향에 들렸다가 우연한 기회에 사슴의 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삼지연군에 사는 친구의 사냥개가 야생 사슴의 왼쪽 뒷다리를 물어뜯어 산채로 잡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크게 상처를 입은 사슴이 잡혔다는 보고를 받은 삼지연 군당은 양강도당을 거쳐 노동당 중앙위에까지 이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고의적인 사냥이 아닌데다 상처가 난 사슴이여서 중앙에서 삼지연 군당 간부들에게 처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당시 삼지연군 간부들이 살아있는 사슴의 피를 받아먹으려고 수십 명이나 몰렸습니다. 산 사슴의 멱을 따고 흐르는 피를 잔에 받아 마시던 그 모습들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물론 저도 사슴의 피가 약이라고 온기가 있는 것을 들이켰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그 상황이 비위생적이고 끔찍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아미산총국 산하 목장과 농장들의 실태는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 해 드릴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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