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태 누렁이 사육장 (3)

김주원∙ 탈북자
2017.10.03
py_dog_soup-620.jpg 여름 보양식인 평양 통일거리 평양단고기집의 단고기 요리.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까지 북한 양강도 삼지연군 포태노동자구에 있던 옛 김일성 별장 주변의 포태누렁이사육장에 대하여 이야기를 마감하려 합니다. 전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중이목장에서 키우던 토종견 황구를 아미산 총국이 책임지고 김일성의 피서지인 포태별장 주변에 옮겨서 기르게 된 이후 금수산의사당경리부장 신상균에 대한 의혹이 크게 번졌습니다.

평양에서 키우던 토종견 황구가 고산지대에서 아무리 변화를 겪었다고 해도 외형적으로 그렇게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포태별장 주변에서 사육되던 황구는 중이목장에서 키우던 토종견 황구가 아니라는 의미였습니다. 김일성의 건강장수와 직결된 의문임에도 불구하고 신상균 부장은 어떤 해명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굳이 신상균 부장이 아니더라도 아미산 총국이 몰래 김일성과 김정일의 승인을 얻어 외래종을 도입했을 수 있다는 추정이 거론됐습니다.

김일성이 개고기를 단고기로 이름 지어주고 개고기 식용문화를 많이 장려한 것처럼 김정일 역시 대단한 개고기 애호가였습니다. 1995년 1월 김정일은 북한에서 제일 규모가 큰 ‘평양단고기집’을 찾았습니다. ‘평양단고기집’은 좌석만 630석이었습니다. 당시 ‘평양단고기집’에서 만든 개고기 요리를 맛보며 김정일은 ‘맛이 독특하다’고 지배인 박성숙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김정일의 칭찬 한마디에 지배인 박성숙은 대번에 북한에서 가장 높은 노력영웅칭호를 수여받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북한의 조선요리협회가 출간하는 잡지 <조선요리> 2009년 2호에는 “우리 민족의 풍습에 삼복철에 단고기장을 먹게 되어 있는데 그것은 아주 좋은 풍습이다”라는 김정일의 말이 인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김정일도 개고기를 좋아했습니다. 인간이 개를 키우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식용으로 쓰기 위해서였습니다. 북한은 옛날 우리 조상들의 말 그대로 개고기로 끓인 국을 개장국이라 부르지만 한국에서는 몸을 보한다는 의미로 보신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인간과 더불어 사는 동물인 개고기를 먹지 않는 문화가 오래전부터 자리 잡아 왔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삼복철엔 개고기 국물은 발등에만 떨어져도 보약”이라는 옛 속담을 그대로 외우며 개를 도살해 식용으로 쓰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개고기 식문화는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해 왔습니다. 우리나라의 고서들 중에 개고기 요리에 대한 기록은 1670년에 서술한 ‘음식디미’, 1799년에 서술된 ‘해동농서’, 1815년에 서술한 ‘규합총서’를 비롯해 다양합니다.

이 책들에 소개된 요리는 개고기를 구운 구적(狗炙), 탕이나 국으로 만든 개장, 개찜, 굽거나 지져서 만든 개장누르미, 개고기를 삶았던 물로 담근 술인 무술주(戊戌酒), 개고기 삶은 물로 만든 엿인 무술당(戊戌餹)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합니다. 지금도 북한의 함경남도를 비롯해 북부지역의 주민들은 찰조에 개고기를 찢어 넣고 만든 찰떡을 먹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개고기와 좁쌀이 조화가 맞고 건강기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평양단고기집’에서도 개장국에 좁쌀밥을 내놓습니다.

이처럼 개고기를 섭취하는 방법이 다양하지만 김일성과 김정일의 단고기 먹는 방법은 좀 유별났습니다. 제가 직접 김일성과 김정일이 개장국을 먹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포태누렁이사육장에서 일하던 친구를 통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그 친구는 한때 옛 김일성의 포태별장 정원사 겸 보조요리사였고 아내는 주변 황구사육장에서 일했습니다. 보조요리사는 기본 요리사들의 지시에 따라 음식재료를 준비하고 준비한 재료들로 요리를 할 수 있게 깨끗이 씻는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저도 경험했지만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별장을 관리하는 노동당 조직지도부 5과 소속 노무자들과 연구사들을 불러놓고 내부 비밀을 누설한 사람들과 가족들이 어떤 끔찍한 벌을 받았는지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추어내며 자주 상기시켰습니다. 그런 공포감을 주어 내부비밀이 외부로 새지 않도록 입단속을 해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와 술을 마시며 김일성, 김정일이 개장국 어떻게 즐겼는지를 이야기 해주던 친구도 비밀을 엄수하겠다는 다짐을 받고서야 나에게 그 내막을 털어놓았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해마다 피서철만 되면 포태별장을 찾아와 개장국을 즐기던 방법은 아직까지 북한에서 철저한 비밀로 남아 있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호위성원들 말고는 북한의 어떤 고위간부도 자기들의 별장에 들여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동행하는 호위성원들 모두에게 자신들이 먹는 황구 보신탕을 한 끼 실컷 먹을 수 있게 대접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호위성원들조차 김일성과 김정일이 먹는 보신탕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절대로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호위성원들과 한 자리에 앉아서 단고기를 먹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지어 김일성과 김정일도 보신탕, 북한말로 개장국을 먹을 때에는 서로 마주 앉는 법이 없이 각자 다른 방에서 혼자 앉아 먹었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친구는 “보신탕을 드는 방법 때문일 것”이라고 그 원인을 추측했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먹었던 보신탕용 누렁이는 약 8개월가량 키워 새끼를 밴 암컷만 사용되었는데 개의 태반이 요리에 들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선정된 누렁이는 도살한 뒤 부위별로 한데 섞이지 않도록 일일이 나누어 놓는다고 합니다. 부위별로 나누는 선별작업이 끝나면 그 다음엔 머리끝부터 꼬리뼈까지 무려 30여 가지가 넘는 부위들을 잘게 토막을 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개 혓바닥, 발바닥, 귀와 밸까지 모두 들어간다고 하니 일반적으로 먹는 방법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이렇게 썬 고기와 내장, 뼈는 태반을 넣은 뚝배기에 고루 담고 여기에 평양에서 가지고 온 고추장을 섞는다고 합니다. 뚝배기는 먼저 참나무를 태우다가 남은 숯덩이 위에 올려놓고 푹 고아내는데 이렇게 끓이는데 4시간 정도가 걸린다는 것입니다.

특히 보신탕은 김치가 없이 도라지나 더덕, 고비와 취나물 등 산나물을 볶아 만든 반찬들을 곁들어 먹었다고 합니다. 또 먹고 나서도 입가심 물로 개고기를 끓여서 소금을 조금 넣어 식힌 국물을 마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뜨거운 보신탕을 먹으면 땀이 많이 흐르기 때문에 팬티바람에 땀을 닦을 수건만 가지고 먹게 되는데 이런 흉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김일성과 김정일은 각자 다른 방에서 먹었을 것이라고 친구는 이야기했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보신탕용 황구사육장에서 일했다는 친구의 아내는 이곳에서 개에게 먹이던 사료는 중앙에서 특별히 공급하는 통조림이었다고 했습니다. 사육장 수의사는 사료가 참지렁이와 흰쥐 라떼를 가공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개는 야생으로 길러야 서로 싸우면서 근육도 발달되어 고기 맛이 쫄깃해진다고 하여 격리된 공간이 아닌 쇠살창으로 둘러막은 넓은 공지에서 키운다고 합니다. 먹이도 살이 찌지 않도록 통조림을 하루 2번만 준다고 그의 아내는 설명했습니다.

포태 개사육장엔 김일성과 김정일의 보신탕용으로 키우는 황구의 새끼를 종자로 빼내려다 잡혀간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어디로 끌려가고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누렁이사육장과 종자, 보신탕을 만드는 방법 모두가 철저한 비밀이어서 조금만 이를 발설하면 목숨도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북한에서 인민의 수령, 인민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 삶을 지금은 김정은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쪽잠에 줴기밥’을 먹으며 혁명의 천만리를 헤쳐 왔다는 김씨 일가의 실체, 앞으로 세상에 낱낱이 밝혀지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지금까지 진행에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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