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전문가 박진선 씨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8-01-11
이메일
댓글
공유
인쇄
  • 인쇄
  • 공유
  • 댓글
  • 이메일
서울 신촌 연세로 차없는 거리에서 열린 제1회 신촌 뷰티페스티벌 '뷰티체어 101' 행사 참가자들이 머리 손질과 메이크업을 받고 있다.
서울 신촌 연세로 차없는 거리에서 열린 제1회 신촌 뷰티페스티벌 '뷰티체어 101' 행사 참가자들이 머리 손질과 메이크업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입니다’ 진행에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매주 목요일은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미용 전문가’ 박진선 씨 입니다.

김인선: 마순희의 성공시대!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먼저 오늘의 주인공 박진선 씨에 대해 대략적으로 살펴보니까요, 올해 32살. 비교적 어린 나이인데 미용전문가게 사장님이네요. 진선 씨가 미용 전문가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진선 씨는 태어나서 5개월 되었을 때 얼굴에 화상으로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북한에서 그 흉터 때문에 놀림을 받으며 콤플렉스, 열등감이 생겼다는데 한국에 와서도 그 열등감이 계속 됐다고 합니다. 흉터를 놀리며 특별히 상처를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진선 씨에게 화상 흉터는 마음의 상처였던 것 같습니다. 열 여섯 살에 북한을 떠나 열 일곱 살 나던 해에 한국에 도착했고 대안학교인 한꿈학교에서 고등학교과정을 공부하면서 서울대병원 사회사업부의 지원을 받아 성형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는데요. 흉터가 많이 사라졌지만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화장으로 살짝 가리고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화장 기술도 늘고 자신이 화장에 소질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답니다. 무엇보다도 진선 씨가 화장을 한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부러워했고 그 친구들의 부탁으로 화장을 해주면서 서먹하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사이도 좋아지고 진선씨의 자신감도 인기도 상승하게 되었다고 해요..

김인선: 화상 자국을 가리려고 시작한 화장이라면 제법 진하진 않았을까 싶은데요, 다른 사람들 시선이 어땠을지.. 걱정되는데요?

마순희: 워낙 눈썰미가 있고 손끝이 여물어서 화장도 신세대답게 잘 했다고 합니다. 대안학교의 교장선생도 그 실력을 높이 인정해 미용 분야의 공부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진선 씨에게 제안을 했을 정도니까요.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선 씨는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고 세계사이버대학 피부미용학과에도 입학하게 됐습니다. 사이버대학이라는 것이 컴퓨터로 영상을 보면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거라 북한의 야간대학처럼 일하면서도 배울 수 있는 대학이잖아요? 그래서 진선 씨는 대학공부도 하면서 같은 미용 분야의 기술을 익히면서 일할 수 있는 가게에 취직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미용실까지 한 시간 반이 넘는 거리였고 처음 해보는 일이라 서툰데다가 밤 늦게 퇴근해서도 그날의 대학 수업을 들어야 했기 때문에 하루에 서너(3~4) 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일과 배움을 동시에 병행하기가 쉽겠습니까?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 때마다 포기하지 않도록 힘을 준 사람이 진선 씨의 어머니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선 씨는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어머니의 지극정성이라며 항상 어머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김인선: 어머님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고는 하지만 탈북학생들이 어려워하는 영어로 된 용어가 많아서 힘들었을 것 같아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영어를 모르고서는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미용설비나 용품들이 다 영어로 되어 있거든요. 처음에 진선씨도 언어가 서툴고 배운 지식도 별로 없다 보니 직원들까지도 무시하기가 일쑤였고 그럴수록 자신감은 점점 떨어져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고통의 시간들이 오히려 자신을 더 다잡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합니다. 남들은 한창 멋 부리고 놀러 다니며 20대를 보내고 있었지만 진선 씨는 오직 대학공부와 현장에서 미용 기술 익히기에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고 합니다.

김인선: 자신이 하던 일에서 고비를 느끼는 것, 슬럼프라고 하죠? 진선 씨도 슬럼프를 겪은 후 더 열심히 미용공부를 한 것 같아요.

마순희: 네. 첫 직장 상사였던 미용업계 원장님이 대학의 미용학과 객원교수였는데 성실하고 꼼꼼하고 감각도 좋은 진선 씨의 장점을 보고 ‘장래를 위해 공부를 하는 건 어떻겠냐’하고 권했다고 해요. 실무를 익히다가 이론까지 겸비하게 되니 기술습득에 가속이 붙었고 미용산업 보건학 석사과정까지 마쳤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해외 취업이라는 또 한번의 도전을 하게 됩니다.

김인선: 어느 정도 자신의 위치가 만들어진 후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기술에 학위까지 갖췄다면 한국에서 지내기가 더 수월했을 텐데, 해외 취업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마순희: 네. 교수님의 추천으로 싱가포르에 가서 2년을 해외취업을 떠난 것인데요, 아시다시피 우리 탈북자들에게 있어서 영어는 정복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해외취업을 하면 취업과 영어 어학연수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선씨는 싱가포르 코리아 뷰티 센터에서 어르신 미용 관리자로 일하면서 한국에서 열심히 배워온 기술을 인정받았답니다. 덕분에 수입도 남들보다 두 배나 더 받았고 현지에서 영어를 익히면서 하루 하루를 뜻 깊고 보람 있게 보내면서 진선씨 스스로 더 발전될 수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싱가포르에서는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지만 진선 씨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미용 전문가게를 연지 2년 차가 됐습니다.

저도 작년에 박진선씨가 운영하는 가게에 가봤는데 정말 놀라웠어요. 31세의 젊은 모습이지만 원장으로서의 품위도 갖추고 있었고 가게의 한 쪽 벽면에는 7개의 자격증들이 주런히(가지런히) 걸려 있어서 그 동안의 박진선 씨의 노고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인선: 싱가포르에서의 힘든 시간 다 겪은 후에 실력도 인정 받고 그에 따르는 보수도 받을 수 있게 됐다면서 한국으로 돌아와 창업을 했습니다. 진선 씨는 왜 이렇게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요?

마순희: 진선씨에게는 남다른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선씨가 미용을 처음 배울 때에는 자신을 이끌어 주고 알려주는 탈북자출신 미용 전문가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먼 길을 돌아왔다고 하면서 후배들이 자신처럼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미용 분야에 관심을 가진 탈북민들을 키우는 교수가 되는 게 꿈이랍니다. 그래서 어렵지만 자신의 가게를 내 오고 이론과 실전이 겸비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지금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데요, 현재 대학원에서 배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틈틈이 지역의 복지관을 찾아 어르신들에게 두피마사지도 해주고 미용 관리도 해주며 자원봉사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김인선: 진선 씨가 미용학 교수가 된다면 탈북민 뷰티학 교수 1호가 되는 거네요. 박진선 씨에 대해서 쭉 이야기를 나눠보니까요, 스스로는 성공의 요인이 ‘어머니’라고 했지만 ‘끝없는 도전’이 그녀의 성공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순희: 네. 나중에 통일이 되면 북한에서 미용산업을 주도할 인재를 양성하려는 원대한 꿈을 안고 젊음의 거리 홍대에서 당당히 뷰티 전문가로 성장하고 있는 박진선씨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김인선: 성공은 누구나 이룰 수 있지만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청취자 여러분의 성공의 기준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 그 첫 시간으로 미용전문가 박진선 씨의 이야기로 꾸며봤는데요. 마순희 선생과는 이렇게 매주 이 시간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입니다.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 (0)
  • 인쇄
  • 공유
  • 이메일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