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과 임진강 철교 폭파

서울-문성휘, 김태산 xallsl@rfa.org
2017-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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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각전망대를 찾은 관광객들이 임진강철교들을 배경으로 옥상으로 올라가고 있다.
임진각전망대를 찾은 관광객들이 임진강철교들을 배경으로 옥상으로 올라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기자: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이 시간 진행을 맡은 문성휘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해외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책임지고 체류하던 중 2천년 초에 한국으로 망명한 김태산 선생과 함께 합니다. 오늘도 전 시간에 이어 ‘6.25 전쟁’ 당시 북한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다뤄보겠습니다.

기자: 김태산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김태산: 네, 안녕하십니까?

기자: 우리역사가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김태산: 아,그렇죠. 아직도 ‘6.25 전쟁’하면 북한의 2천만 주민들 중에서 거의나 모든 사람들이 남쪽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고 아직도 믿고 있지, 저도 대학을 졸업하고 밖(외부에)에 나가서 무역활동을 하면서 돌다나니까 러시아에 가서도, 중국에 가서도 “야, 너희들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 하는 말을 듣고도 너무나 세뇌시켜 놓았기 때문에 나는 “아니야 그건 그럴 수가 없다. 그런 게 아니야. 남쪽이 먼저 미국이 추종해서 들어온 거야”하고 거기서 막 우겼고 대한민국으로 오기 전까지 (한국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고) 그렇게 믿고 왔어요. 그만큼 세뇌가 깊은 겁니다.

기자: 네, 중국 사람들이 흔히 밀수를 할 때 이렇게 말했거든요. “야, 6.25도 다 김일성이 일으킨 거야”

김태산: 옳습니다. 저도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달고 국가무역대표단으로 가서 사업을 하고 저녁마다 파티를 열고 독한 술을 마시면서 중국 사람들이 1980년대 이후부터 자유가 크게 우선시되다 보니까 마구 말하는 거예요. “여보 그 김일성 배지는 좀 떼라고” “야, 술 몇 잔 먹여놓고 누구 목을 딸 일이 있어? 그딴 소린 우리 하지 말자” 그러면 “야, 좀 너무 그러지 마라. 솔직히 전쟁도 너희가 먼저 일으킨 거지”하면서 “무슨 그따위 소릴 해?”하게 되면 “야, 솔직히 너희 숨긴 게 한둘이야? 그거 공산당들이라는 게 다 그래”라면서 그렇게 말을 하는데도 나는 그때 당시 그 말을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걸 다 인정했고 그땐 소련이죠 90년대 초, 그때 소련에 들어갔는데도 나이 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면 “너 전쟁 때 그 작은 나라에서 살아남은 것도 다행이다. 그런데 그 작은 나라가 겁도 없이 전쟁은 왜 일으키는 거냐?” 그러는 거예요. 통역이 잘 못 번역 했나 해서 “야 그게 무슨 소리냐?”하면 “아까 이렇게 말한겁니다”라고해서 “야, 그따위 소린 통역도 하지 말라” 그렇게 했는데 한반도에 대해 관심이 있는 (외국) 사람들은 ‘6.25 전쟁’에 대해서 누구나 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게 사실이었죠. 그런데 너무나 북한에서 세뇌를 당하다 나니 우린 믿지 못했죠.

기자: 네, 저는 북한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 김일성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 이게 너무 믿기지 않아서 제가 아는 ‘38경비여단’ 사람을 직접 찾아가 본 적이 있어요. 왜냐면 이 사람들이 제일 먼저 전쟁에 참가했으니깐.

김태산: 그렇죠. 분계선을 ‘38경비여단’이 지키고 있었으니까 그때 제일 먼저 전쟁에 참전했죠.

기자: 네, 그래서 제가 “아니 지금 6.25 전쟁을 우리(북한)가 먼저 일으켰다고 하는데 그때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서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냐?” 북한은 늘 미국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물어 보았는데 그 분이 어데가 얘기하지 말라면서 “전쟁은 우리가 일으킨 게 맞다”며 한 달 전부터 병력이 계속 (휴전선으로) 들어왔다는 겁니다. 밤을 통해, 야간에 계속 병력이 들어와서 자기네도 깜짝 놀랐다고, 그러니까 이게 무슨 큰일을 치르자고 하는구나, 그런데 그때 당시 그게 전쟁으로 번진다고는 생각을 안 했대요. 휴전선에서 하도 그런 충돌이 많았으니까 한탕 크게 치르려고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서울까지 입성하라” 이렇게 명령이 내려오니까 자기네도 엄청 놀랐다고…

그런데 말입니다. 1990년대 중엽에 북한이 “위대한 영장을 모시여” 이런 책을 내놓았습니다. 그 책을 우리가 돌려가며 보다가 깜짝 놀랐죠. ‘오산전투’ 6.25 전쟁이 일어난 지 한 달 거의 돼서 ‘대전해방전투’가 있기 전에 오산전투가 있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처음으로 미국 스미스 특공대와 맞딱드려 싸웠다, 이렇게들 말했습니다. “아야, 이게 뭐냐? 잘 이해가 안 된다. 미국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했는데 전쟁이 일어난 지 한 달이 돼서 처음으로 미국 스미스 특공대와 마주 싸웠다는 게 말이 되냐?” 그때 우리 대학생들이 “야 이게 어떻게 된거냐?”하고 어리둥절 했는데 그때 또 북한이 ‘전선길’이라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김태산: 김책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기자: 네, 김책을 주인공으로 한 그 영화가 얼마나 웃기는 영화인가 하면 이런 대화가 있습니다. 미국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소리를 듣고 우리(북한 지휘부)가 모두 몸이 굳어져 김일성을 기다리고 있는데 김일성이 새벽에 호탕하게 웃으면서 들어오더라고, “미국놈들은 우리를 잘 못 보았소” 김일성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자기들은 “우린 이겼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다고…

그런데 우리 인민군대가 스미스 특공대하고 맞딱드리게 되었는데 그때 지휘관들이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김일성 동지께서 미국 놈들한테 본때를 보여주라” 이런 대사가 나왔습니다. 이게 얼마나 파문을 일으켰는지 모릅니다.

김태산: 작가도 그걸 양쪽으로 맞추지 못한거죠.

기자: 네, 그러니까 우리 지식인들은 “야 이게 도대체 뭐냐? 미국놈들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금방 말해놓고 7월 달에 처음으로 미국과 오산에서 맞붙어 싸웠다고 하는데 그럼 그 사이 미군은 어데가 있었냐? 사실 북한 스스로가 6.25 전쟁을 자신들이 일으켰다는 걸 너무 많이 노출시켰어요.

김태산: “거짓말을 하려니까 짜 맞추기가 참 어렵죠. 너무나 많은 거짓말을 하려니까 짜 맞추기가 어려운 겁니다.

기자: 네, 지금은 새로 한국에 온 탈북자들과 모여서 밥도 자주 먹고, 경찰청이나 남북하나재단 이런데서 탈북자들을 위한 모임을 자주 조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따라서 놀려 가보면 금방 왔다는 탈북자들이 많거든요. 그분들하고 (6.25 전쟁에 대해) 물어보면 “아이고 이젠 6.25 전쟁 미국이 일으켰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고, 웬만한 도시사람들은 다 안다고, 농촌에서 정말 바깥구경도 못하고 이런 사람들이나 6.25 전쟁을 미국이 일으켰다고 하지 웬만한 사람들은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 안다는 거죠.

김태산: 이젠 북한에도 정보유입이 굉장히 된다는 거군요. 중국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면서 정세를 말해주기 때문에 정보유입이 여기(한국)보다 하루 이틀 늦을 정도지 여기는 인터넷에 앉아서 한순간에 미국이요 뭐요 전 세계를 볼 수 있지만 북한은 순수 귀로 듣는 것이지만 옛날보다 몇 백배 빨라진 거죠.

기자: 그리고 제가 또 한분을 만나서 얘기를 들었는데 6.25 전쟁 때 이승만 정부가 인민군이 밀고 내려오니까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게 하고 한강교를 폭파시키지 않았습니까?

김태산: 그건 남한에서 한 거죠. 이승만 정부가 하지 않았습니까.

기자: 네, 그런데 임진강 철교 파괴는 북한이 한 것입니다. 그 시기가 ‘10.4 후퇴’가 있으면서라고 했습니다.

김태산: 아, 인민군대가 후퇴하고 남한 군이나 미군이 따라 들어오지 못하게 임진강 다리를 폭파시켰다는 거군요.

기자: 네, 한강다리 폭파와 임진강 철교 폭파는 완전히 차원이 달랐다는 거예요. 저는 임진강 철교를 폭파할 때 분대장이었다는 분을 만나서 들었는데 이 분이 그 얘기를 하면서 늘 눈물을 흘립니다. 이분은 6.25 전쟁 때 공병으로 참가한 분이었어요. 자기넨 5군단이었다고 했습니다. 이분이 얘기하는 게 후퇴하지 못한 인민군이 계속 북한으로 들어가고, 또 당시 인민군을 도왔다거나 이런 사람들 보복이 두려워 북한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김태산: 남쪽에서도 많이 들어갔죠.

기자: 네, 남노당원들이랑 굉장히 많이 들어갔는데 이 사람들이 그 철교위에 꽉 찼다는 거예요. 심지어 북진을 하는 한국군이 그 다리에 다 들어섰대요. 누구도 총을 못 쏘았다 그 장소에서. 왜냐면 거기에서 서로가 총을 쏘면 다 죽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리위에 올라선 사람들, 인민군도 한국군도 서로 마주 보면서 서로 다 손에 총을 이렇게 손에 높이 들고서 건너갔대요.

그렇게 사람들이 꽉 들어찬 다리를 폭파하라고 명령했다는 거예요. 너무 기가 막혀서 “저 사람들을 어떻게 하고 폭파를 하냐?” 하니까 뒤에서 최고사령부에서 왔다는 사람이 총을 겨누더래요. “네가 죽겠냐? 아니면 이 폭파단추 누르겠냐? 어차피 저 사람들 막지 못한다. 무슨 힘으로 막겠냐?” 사실 막을 형편이 못 됐다는 거죠. 그게 북진을 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으니까.

하는 수 없이 이 분이 대원을 시켜서 폭파단추를 누르라고 했대요. 이 사람이 이 얘기를 하면 늘 울어요. 정말 우리가 모르는 전쟁 이야기, 지금 임진강 철교 폭파사건 같은 거 이런 거…

김태산: 그러니깐 그런 역사는 우리가 다 해명해야 하는데 과제가 많습니다.

기자: 네,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정말 참혹했던 6.25를 다시 되돌아보자, 오늘 이야기 정말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태산: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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