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의 추억(1)

서울-문성휘, 김태산 xallsl@rfa.org
2017-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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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시 연양동 여주시립폰박물관에서 관람객이 1896년 고종황제 때 들여와 덕수궁과 인천에서 쓰였던 에릭손 전화기와 같은 모델로 추정되는 전화기를 살펴보고 있다.
경기도 여주시 연양동 여주시립폰박물관에서 관람객이 1896년 고종황제 때 들여와 덕수궁과 인천에서 쓰였던 에릭손 전화기와 같은 모델로 추정되는 전화기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이 시간 진행을 맡은 문성휘 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해외에서 북한 노동자들을 책임지고 체류하던 중 2천년 초에 한국으로 망명한 김태산 선생과 함께 합니다.

기자: 안녕하십니까?

김태산: 네, 오랜만입니다.

기자: 네, 김 선생님 요새 건강도 좋지 않다고 하던데?…

김태산: 아, 감사합니다.

기자: 네, ‘그때 그 시절 속으로’ 편지는 사실 이젠 북한에서 거의 사라졌습니다. 북한이 통신이 좋아지거나 아니면 다른 소식을 전할 수단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감시라는 그런 눈을 피하기 위해 편지가 자연히 점차 사라지게 됐다는 거죠.

김태산: 사라졌으면 서로가 어떻게 연락을 합니까?

기자: 전화로 다 연결을 하죠. 이젠 전화망이 발전해서 가정집들에 거의 전화가 들어갔습니다.

김태산: 아니 그건 군까지는 그럴 수 있겠는데 농촌, 리(이)들에는 아직 전화가 들어가지 않았겠는데?

기자: 아, 그러니까 군이면 군에 자기가 알 만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는 거죠. 이걸 좀 전달해 달라. 너의 가족 중에 누가 사망했다, 어떻게 됐다, 그러면 전화를 받은 사람이 그 소식을 전해주려 가는 겁니다.

김태산: 아, 그러니까 이젠 전화로 거의 다 연계를 한다는 거죠?

기자: 네, 옛날엔 한번 전화를 한다는 게 정말 놀라운 거죠. 제가 처음 전화를 받은 게 그날 내가 몸이 아팠는데 그냥 아픈 대로 학교에 갔어요. 그땐 아파도 학교에 나오는 걸 굉장히 칭찬하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버지가 걱정된 것 같았습니다. 사무실에서 학교에다 전화를 한 거예요. 부교장이 나를 데리러 왔어요. “야, 너 아버지 누구지…”, “예, 그렇습니다”하니깐 “저기 전화가 왔는데 받아라”하는거예요. 전화가 왔는데 받으라니깐 막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거예요. 저 전화기에서 무슨 소리가 나올까? 어떤 소리가 나올까? 그래서 전화를 받았는데 소리가 정말 작았어요. 잘 알아듣기 힘이 들더라고요. “야, 너 아프지 않냐?”해서 “아, 안 아픕니다” 그러니깐 “야, 아픈 건 어떻게 됐냐?”해서 “아, 이젠 다 나았습니다”라고 했는데 참 신기하더라고요. 이렇게 쪼매한 수화기를 들고 말하니까 거기에서 말이 나오고 또 말을 전달하고 이게 정말 신기했어요.

김태산: 그게 그때 전화기들이 선도 나쁜데다가 기계도 나쁜데다 교환대를 거쳐서 들어가다 나니까 교환대 두 번만 거치면 거의나 듣지 못하게 되어있지 않았습니까. 자기가 사는 군 안이나 거기서 전화를 하면 좀 나은데 거기서 다른 군이나 다른 도에다 전화를 하면 거의나 알아듣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시외 전화를 하려면 전화가 없으니깐 체신국에 가서 줄을 서서 “나 다른 도에, 다른 군에 찾아 달라”고 신청을 하고 한 시간, 두 시간 앉아 있다가 거기서 찾아 주면 전화를 하곤 했어요. 그런데 교환대가 있을 때니깐 교환대는 여자들만 교환수로 쓰지 않나요. 그러니까 이 교환수들은 예쁘게도 생겼지만 계급적 토대가 좋은 사람들로 데려다 앉혔거든요. 왜냐면 군당책임비서, 안전부장(경찰청장), 보위부장들이 하는 전화를 이 교환수들은 다 훔쳐 듣거든요. 그러니깐 교환수는 세상일을 다 알고 있는 여자였어요. 군에서 돌아가는 일을, 누구를 잡아갔다, 죽었다는 걸 말은 하면 안 되지만 다 알고 있었어요. 솔직히 제일 위험분자였죠. 선생의 아버진 그래도 전화를 할 정도였다니 좀 간부였던가 보네요.

기자: 아닙니다. 그때에도 웬만히 큰 공장은 하나씩 전화가 있었습니다.

김태산: 공장들엔 있었죠.

기자: 네, 공장전화를 받았는데 나는 전화를 처음 받아보다 나니 정말 너무 두근두근 거렸죠. 아 참, 선생님은 전화를 처음 받아본 게 언제였습니까?

김태산: 제가 어릴 때 잘 아시겠지만 자강도 산골에 용림이라는 산골 어느 리에 살았는데 제가 인민(초등)학교 4학년때죠. 그러니까 그게 1964년도 갰군요. 관리위원회 마당이 넓기 때문에 거기서 아이들하고 공을 차고 있었어요. 공을 차고 있는데 여름철이니까 관리위원회 사람들 다 밖으로 나가고 비어있었는데 전화소리가 자꾸 들려오는 거예요. 그래서 야, 저건 뭔데 어른들은 저걸 가지고 여보시오, 여보시오 하는데 저게 뭔가 하고 한번 당돌하게 들어가서 전화를 받았어요. 받았는데 거기서 “여보시오”하니깐 “예”하니깐 “여, 누구요?”하는데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전화를 놓았어요. 놓았더니 조금 있다가 또 울리는 거예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전화를 들고 “여보시오” 했더니 “누구요?”하는 거예요. “예, 저 학생인데요”하니깐 “야, 거기 관리위원회 사람 누가 없어?”해서 “지금 누구도 없는데요”하니 “야 그 옆에 리당위원회라든지 거기 있는 사람 누구 좀 바꾸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관리위원회하고 리당위원회 사무실이 다 쭉 붙어있지 않아요. 전화를 바꾸라는데 나가서 보니까 리당위원회에도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 옆에 적위대장 사무실을 보니까 적위대장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적위대장보고 “전화 좀 받아 달래요”, “어데서?” 그래서 “모르겠어요”라니까 “그따위 전화는 왜 받아”… 그때가 열두 살 때네요. 그때 처음 전화를 받아 보았는데 그게 기억에 생생하네요. 그 전화를 받는 게 왜 그리 떨리던지.

기자: 맞아요. 전화 받을 땐 많이 떨렸는데 학급에 돌아가선 엄청 자랑을 했거든요. “나 오늘 전화 받았어. 아버지가 나한테 전화를 해서 전화 소리를 들었다”고 하니깐 “무슨 소리가 나왔냐?”, “거, 아버지가 하는 말이 거기서 다 들리는거야”하니깐 “야, 정말 발전했다” 애들이 모두 그러면서 부러워하는 거예요.

김태산: 나도 전화를 받고 나오니깐 애들이 “야, 태산이 뭐라고 그래?”, “모르겠어”그러고 가니깐 우리 친구들이 그게 신기했던지 그 전화통을 내려놓은 걸 들고 “여보시오. 여보시오” 그러니까 적위대장이 와서 “야, 이놈들아 놔둬라”하면서 욕을 하던 생각이 나네요.

기자: 맞아요. 그땐 정말 신기했어요.

김태산: 그때 농장 관리위원회 전화기가 어떻게 생겼냐 하면 수화기를 본체에 걸어 놓았는데 손잡이를 군용전화처럼 위잉 돌리고 “여보시오. 교환, 어데 좀 대달라”라고 하던 때였어요.

기자: 저희 때는 그저 전화를 들고서 “교환, 여기 어디 임산사업소를 좀 찾아달라”하면 교환수들이 알아서 그 임산사업소를 찾아 주었습니다. 그땐 전화번호도 몰랐고 제가 참 놀라운 건 김선생님이 처음 전화를 받았다고 할 때와 제가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 거의 20년 차이입니다. 20년 차이인데 저도 어릴 때 기억이 나는데 그때에도 이렇게 왱왱 거리는 전화가 있었습니다.

김태산: 발전식.

기자: 네, 자가 발전식 전화라고 했죠. 그게 없어진 건 아마 80년대 초입니다. 그게 없어진 건 80년대 후반입니다. 제가 농촌동원에 갔는데 작업반은 작업반장네 집 혼자 전화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농촌동원에 왔으니까 좀 힘있는 부모들은 전화를 겁니다. 네가 어데 아픈데 없냐, 힘들지 않냐, 이런 전화를 거는데 작업반장이 전화가 왔다고 해서 가보면 도무지 들리지 않는 거예요. 군에서 하는 전화인데도 농촌 작업반에 가면 “뭐라고, 뭐라고?”, “안들립니다, 안들립니다” 막 있는 힘껏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거죠.

김태산: 맞죠, 그게 군 교환대를 거쳐 작업반장들에게 전화를 놓으면서 리에도 작은 교환대가 하나씩 들어왔어요. 그러니깐 교환대에서 교환대를 거쳐서 나가다 나니깐 북한에서 만든 교환대라는 게 접점이 얼마나 나빠요. 솔직히 그러다나니깐 거의나 들리지 않았죠.

기자: 네, 그러니까 20년 차이라고 하는데 제가 지금 놀라운 건 그 20년 동안에 전화의 발전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저 전화기의 형태만 바뀌었고 그땐 또 뭐냐면 이런 멋이 있었습니다. 북한은 숫자식을 평양에서는 썼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지방에선 교환수가 없어질 때까지 숫자식이 전혀 필요 없었거든요. 그냥 교환하고 연계를 하니깐. 그런데도 숫자식 전화를 놓은 기관들이 있었어요. 좀 힘이 있다는 거, 내가 간부라는 걸 표현하는 게 그 빙빙 돌리는 전화, 그 영화 “이름없는 영웅들”에서 많이 나오죠. 그 빙빙 돌리는 전화를 가져다 놓는 겁니다. 그러면 오, 이 전화는 돌리는 건 못써도 일반에서 쓰는 그 시커먼 전화보다, 그 시커먼 전화는 “베크라이트”라고 하던가? 무겁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전화였는데 그 빙빙 돌리는 건 외국산 전화였지 않습니까? “아, 수입제 전화를 쓰는 걸 보니 힘(권력)이 있다” 그런 표현이었죠. 진짜 선생님은 해외에도 나오고 평양에서도 많은 활동을 했다고 하는데 북한도 힘 있는 간부들은 80년대부터 전화를 놓지 않았습니까? 선생님은 전화가 집에 있었습니까?

김태산: 있었어요. 뭐 잘 살았다기보다 어쨌든 전화는 권력의 징표라고 할까? 그러다나니까 전 그저 80년대는 안되고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있었어요.

기자: 그때 그 시절 속으로, 정말 돌이켜 보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 정말 좋은 얘기 많이 나누었고요. 다음 시간에 계속 하기로 하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김태산: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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