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돈주, 성분제 구애 안 받아”

워싱턴-변창섭 pyonc@rfa.org
2015.11.24
go_market_305 북한의 농촌 여성들이 농산물을 팔기 위해 장마당으로 가고 있다.
AFP PHOTO

앵커: 북한이 직면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와 함께 살펴보는 ‘북한, 이게 문제지요’ 시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이 시간에도 북한 성분제에 관한 얘기를 계속 해봅니다. 지금 북한에선 주민의 70~80%가 장마당 경제에 종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대다수 주민들이 장마당 활동, 즉 시장화에 종사하면서 이제 출신성분보다는 개인의 경제능력에 따른 새로운 사회계층이 생기고 있다고 봐도 됩니까?

란코프: 지난 20년 북한의 역사를 살펴볼 때,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바로 ‘장마당 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중앙계획에 따라 움직였던 북한 경제는 현재 장마당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사실상 성분제에 심한 타격을 주었습니다. 오늘날 북한의 장마당 시대에는 출신 성분이 과거에 비해 의미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지금 북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점은 그들의 할아버지가 1940년대 한 일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경제 능력인 것입니다. 돈을 잘 벌 수 있는 사람은 장마당에서 장사를 잘 하고, 그로 인해 물질적으로 부유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원래 토대가 좋지 않아서 미래가 거의 없었던 북한 사람들도 사회적 성공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출신성분 때문에 이런 사람들이 노동당 일꾼은 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장마당에서 장사를 잘 하면 돈주까지는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북한은 장마장 시대라 돈주, 즉 신흥부자들은 노동자 간부들만큼 힘이 많습니다.

기자: 그런 점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제난과 시장화가 성분 구조를 무너뜨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봐도 됩니까?

란코프: 그렇습니다. 지금 이런 변화는 진보적인 변화로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아직은 북한에서 성분 구조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아직은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 출신 성분이 과거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출신 성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토대가 좋지 않은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심한 차별을 당하고 있습니다. 장마당 덕분에 북한 사회의 시장화로 인하여 출신 성분이 완전히 유명무실화 되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실상 토대가 좋은 사람은 지금도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기자: 왜 그럴까요?

란코프: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북한 개인경제의 구조입니다. 북한 사회에서는 노동당을 비롯한 국가 기관과 가까운 관계를 맺어야만 돈을 많이 벌 수 있습니다. 물론 장마당에서 신발이나 두부요리를 파는 중년 여성은 노동당과 아무 관계가 없어도 출신 성분이 좋지 못해도 매일 쌀밥을 먹을 수 있는 정도의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소규모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대규모 장사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노동당이나 보위부를 비롯한 국가 기관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않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기자: 이런 사람들은 대개 돈주라고 볼 수 있겠죠?

란코프: 네, 그렇습니다. 물론 노동당과 관계를 맺기 어렵지 않은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처음부터 간부들과 관계가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토대가 좋은 사람이면, 이와 같은 관계 맺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결국 지금 북한에서 장사를 이용하여 돈을 버는 사람들 가운데 출신 성분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만, 소득이 가장 높은 돈주들, 제일 부자들 가운데는 여전히 토대가 좋은 사람들이 절대 다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방금 말씀하신 대로 북한 장마당 시대에 '돈주' 즉 신흥 자본계급이 등장했는데요. 일부에선 이런 자본가가 20만명이 넘었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이들이 출신성분에 따른 계급구조를 허무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까?

란코프: 제가 이전에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북한 신흥 부자들은 압도적으로 과거 지배 계층과 가까운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가치관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간부들이 조롱하는 성분제를 통해서, 노동당에 충성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자신의 특권을 세습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돈주, 즉 신흥부자들을 비롯한 북한 신흥 자본가 계층은 출신 성분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가족 배경 보다는 경제 능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때문에, 돈주들이나 새로운 사회에서는 출신 성분제에 대한 의심과 거부감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자: 북한의 시장화과 관련해 지금 제일 힘 있는 사회계급이 노동당 권력자보다 바로 이런 돈주 계급이겠군요?

란코프: 어느 사회 계층이라도 그 영향력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도 제가 보기에, 북한에서 노동당 간부와 돈주들의 힘은 대체로 비슷한 것 같습니다. 물론 간부들은 북한 경제를 관리할 능력이 없습니다. 돈주들이 있어야 나라의 경제가 기울어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돈주들도 간부들과 협력하지 않는다면 장사를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간부들한테서 보호를 받고, 간부들을 통해서 필요한 경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지금 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감안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결혼은 간부 집 아들이 돈주 집 딸과 결혼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권력을 중심으로 하는 힘을 갖고 있고, 여자는 경제력을 중심으로 하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러한 결혼들이 꽤 많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향은 북한의 미래를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금 북한에서 순전히 출신성분 덕을 본 간부 계층은 장마당 덕분에 등장한 동주들과 협력해야만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기자: 앞으로 시장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북한의 성분구조도 완전히 허물어지는 날이 올까요? 란코프 제가 보니까 장기적으로 말하면 북한에서 성분제는 미래가 없습니다. 지나치게 시대착오적인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이러한 체제를 공식적으로 언제 해체할 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벌써 20여 년 전부터 시작한 성분제의 약화는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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