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품과 외제, 뒤바뀐 지위

워싱턴∙서울-이규상,이현주 leek@rfa.org
201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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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지난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유럽 최대 디스플레이 전시회 ISE 2013에 참가해 다양한 상업용 디스플레이를 선보였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규상>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생생경제>에 이규상입니다.

<이현주> 안녕하세요? 이현줍니다. <생생경제>는 워싱턴과 서울을 연결해 우리 생활 속 생생한 경제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이규상> 세계 최대 브랜드 컨설팅 그룹 - 그러니까 상표를 만들어주고 관리하는 전문 회사 인터브랜드가 21일 남한을 대표하는 30대 상표를 발표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이 잘 아는 상표도 있을 것 같은데요. 1위는 삼성전자, 2위는 현대 자동차, 3위는 기아 자동차 순입니다.

<이현주> 삼성전자의 상표 가치는 37조 2천 20억 원, 약 370억 달러 정도 되는 거죠? 남한 30대 상표의 자산 가치는 940억 달러(94조 3천 693억 원)에 달합니다. 이 금액은 인터브랜드의 일본 법인이 지난해 발표한 일본 30대 상표의 자산 가치에 73%에 해당합니다.

<이규상> 남한 상표... 진짜 많이 컸습니다. 옛날엔 남쪽 사람들도 외제, 외국산이라면 껌뻑 죽는 사람이 꽤 있었죠. 요즘은 전세가 역전됐습니다.

<이현주> 남쪽 시장에는 수입 상품만 파는 상점들이 있는데요. 코리끼 밥솥, 타파웨어, 코렐 그릇을 사러 주부들이 목돈 갖고 드나들 던 곳... 이곳에서도 이런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은 남대문 수입 상가에 다녀왔습니다. 평안남도 문덕 출신 김정순 선생과 동행했습니다.

INS - 시장 입구 현장 사운드

김정순 : 미안해요. 내가 늦었어요...(웃음)

기자 : 여기요. 선생님, 헤매지 않고 잘 찾으셨네요. 반대 입고 나가면 찾기 힘들거든요.

김정순 : 어, 나 여기 자주 들려요. 옷도 그렇고 뭐 필요한 게 있으면 자주 와요. 여기 오면 뭐 안파는 게 없잖아요? 근데 여긴 얼마나 복잡한지 들어간 구멍으로 나오기 힘들어요. (웃음)

기자 : 오늘 저희가 수입 상가를 한번 가볼까 해요. 남대문 시장이 수입 상가로도 유명하거든요.

김정순 : 나는 한 번도 못 가봤는데요. 오늘 구경 한번 하지요.

기자 : 사람들은 수입 상가를 도깨비 시장이라고도 불러요. 별의별 물건을 다 팔아서 도깨비 시장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혹시 북쪽에도 수입 상품만 파는 수입상가가 있나요?

김정순 : 북한에는 모든 게 다 수입이니까요. 무, 배추 빼고는 다 수입산이라고 봐야지요.

기자 : 딱히 수입상가가 필요 없는 상황이라는 말인가요?

김정순 : 고럼요. 평양 1백화점이 전부 중국 상품이니까 말 다 한 거죠.

INS - 상점 들어가는 소리

기자 : 어? 이거 뭐죠?

김정순 : 이거 얼마나 하나요?

상점 주인 : 한 냥에 사만원이요. 러시아산입니다.

기자 : 이게 뭔가요?

김정순 : 녹용이야요. 북한산보다 별로네요 이건...

상점주인 : 이건 만이천원인데 만원 줄게요...

이거 이렇게 쓰는 거예요. 실리콘... 이천원, 이천원. 이건 삼천원...

이건 밥주걱인데 이렇게 놓으면 바닥에 안 닿고 밥이 하나도 안 붙어...

기자 : 선생님, 주걱이 다람쥐 모양입니다. 너무 귀여운데요?

김정순 : 역시 젊은이는 젊은이다 (웃음)...

기자 : 선생님 이건 뭔지 아시겠어요?

김정순 : 비누 받침 아닌가요?

기자 : 맞아요. 여기 올려놓으면 비누가 안 무른답니다.

김정순 : 이게 한 조에 얼만가요?

상점주인 : 이건 1만8천원, 이건 1만원이요. 이건 스테인리스이고 이건 유기...

우리나라 거예요. 백화점가면 몇 만 원 씩 해요.

김정순 : 금 도금이죠?

기자 : 여기가 옛날부터 도깨비 시장으로 불리는 곳인가요?

상점주인 : 그래요. 여기가 원조에요. 나도 이 자리에서 한 20년 정도 했어요.

기자 : 옛날에 비해 장사는 좀 어떠세요? 잘 되세요?

상점주인 : 아니요...(웃음) 아무래도 덜 되죠. 수입품이 백화점에도 들어가고 여기도 있고 그러니까 손님이 아무래도 나뉘죠...

<이규상> 도깨비 시장... 저도 한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상점들이 통로에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그야말로 미로 같죠?

<이현주> 네, 선생님하고 나오는 길을 못 찾아서 엄청 헤맸습니다. (웃음) 상점이 크면 한 2-3 평 정도 되고 작은 곳은 한 평도 안 되는 상점에 물건을 천장까지 가득 쌓아놓고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가서 판매를 합니다. 통로가 너무 좁아서 물건도 빨리 빨리 사야지 흥정을 너무 오래하면 사람들이 오가질 못해요. 그래도 주인하고 얘기만 잘 하면 아주 싸게 살 수 있습니다. 다들 그 맛에 오는 것 같고요. 파는 제품도 진짜 다양한데요. 녹용 같은 약재부터 영양제, 진통제, 화장품, 그릇, 각종 주방용품, 옷, 술, 과자... 좁다란 골목에 300여개의 점포가 모여 있습니다.

<이규상> 남한에서도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서 80년대 초반까지 수입을 제한했죠?

<이현주> 네, 남한 경제가 어느 정도 괘도 올랐으니 이제 시장을 개방해라... 이런 국제적인 압력이 시작된 것이 80년 초였고요. 남한은 83년부터 서서히 각 분야의 수입을 허용하며 국내 시장의 문을 열었습니다.

<이규상> 수입 자유화가 되기 전까지 아주 호황을 누렸던 시장이죠. 그 전에는 수입 물건을 파는 것을 막 단속하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이현주> 맞습니다. 정기적으로 단속을 했죠. 도깨비 시장이라는 이름은 남대문 뿐 아니라 각 지의 수입 상가를 가리키는 별칭 같이 쓰였는데요. 미군 부대나 외국에서 배로 몰래 물건을 들여와 팔았기 때문에 아침, 점심, 저녁 물건 가격이 달랐답니다. 가격이 워낙 종잡을 수 없으니까 도깨비 같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이규상> 재밌네요. 아까 상점주인 얘기처럼 요즘은 뭐, 수입 물건을 파는 곳이 다양해지도 했고 인터넷으로 직접 외국에서 살 수도 있잖아요?

<이현주> 또 요즘은 남한 상품의 질이 좋지 않습니까? 굳이 외국 제품을 찾지 않아도 됩니다. 특히 몇 년 전만해도 수입 상가에서 크게 장사하는 상점들은 전자제품 상점이었습니다. 밥솥이나 물 끓이는 전자 주전자, 라디오, DVD 재생기... 이젠 거의 찾아볼 수 없더라고요.

<이규상> 70, 80년 대만해도 국산품을 애용하자, 국산품 애용이 애국이다... 이런 표어를 길에 붙여 놓고 했었지만 지금 국산품 사용을 애국과 연결시키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이현주 > 저도 기억납니다. 수입 자유화 시기에 남쪽에서도 상당히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논란이 많았는데요. 개방하면 준비가 덜 된 국내 산업이 완전히 죽는다, 반대로 수입 상품과 경쟁해서 제품의 질을 높여 국제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아직도 어느 쪽이 옳았다고 평가할 순 없지만 남한의 산업이 국산품 애용을 애국심으로 호소하는 수준에서 한참 성장한 건 분명합니다.

<이규상> 북쪽에서 오신 분들은 자기 나라에서 만들어진 물건을 쓸 수 있다는 자체를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자주 하던데요.

<이현주> 워낙 북한 시장이 중국 물건으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 선생 얘기, 좀 더 들어보죠.

김정순 : 우리 북한에서는 자국 내 생산이 투박하고 보기도 안 좋고 그래요. 수입제가 10배 차이가 나더라도 생활 있는 사람들은 그거 사 쓰거든요. 여기 오니까 오히려 수입제가 더 싸요. 중국산 같은 건 얼마나 쌉니까? 북한에도 다 중국산이죠. 지금은 다른 데서 오는 거 없습니다. 좋은 물건 사하자면 북한 같으면 수입제품을 신경을 많이 쓰는데 여기는 유행도 국내 상품이 더 빠르고 가격도 좋고 편하게 만드니까 수입상가에 잘 안 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기자 : 근데 요즘 보면 국내 상품이라도 뒤집어 보면 메이드인차이나, 중국에서 만들었다는 얘기죠? 순수한 국내산이라는 의미가 이제 거의 사라진 것 같고요. 게다가 한국 공장에서 만든 한국 제품은 굉장히 비싸요.

김정순 : 맞아요. 대단히 비싸요.

기자 : 전자 상품은 이제 거의 안파네요...

김정순 : 맞아요. 근데 북한은 전기 코드 하나 국내산이 없죠. 모두 중국산인데 그것도 무역일꾼들이 우정 중국에 가서 싼 흑백텔레비전을 북한 시장용으로 맞춰서 들여가죠.

기자 : 무역 일꾼들도 일하면서 안타깝겠어요.

김정순 : 그 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여기 와서 보니까 정말 안타깝고 내가 가슴을 칠 때가 많습니다. 그때는 남조선이나 미국이 우리를 치려고 하니까 우리나라가 살기 위해서는 군사력을 발전해야 하니까 당연히 고저 인민으로써는 고난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보니까 그게 아니네요. 오히려 도와주갔데요? 북한이 핵을 갖고 저러는 게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입니다.

기자 : 북한의 경제 제도도 사실 문제잖습니까?

김정순 : 고럼요. 북한은 계획경제니까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하니까 무능력해도 위의 말만 잘 들으면 노동자들은 어떻게 되던 간에 충실한 기업 관리인이 되죠. 그러니까 한계가 있고 특히 지금은 더 살기 힘들어요. 이건 완전히 계획 경제도 아니고 자본주의 경제도 아니고요. 그러니까 인민들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그러니까 전쟁이나 일어나라 그러는데요. 아마 세상에서 자기 나라 전쟁 나갈 바라는 인민은 북한밖에 없을 겁니다.

기자 : 오늘 마무리해야 할 시간인데요. 오늘 재미있으셨어요?

김정순 : 솔직히 희한한 물건들이 많네요. (웃음) 유용한 물건이 아니라 재밌고 희한한 물건들이 많았어요. 이거 오늘 못 사면 물건 없다고 생각하면 사죠. 그러나 여긴 시장이 가까우니까요 그냥 구경만 했네요. (웃음) 속으로는 북한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네요. 여긴 한 개 개인의 매장인데도 평양 제1백화점 상품보다 더 싸고 더 많아요.

기자 : 그래서 선생님 오늘 구경 좀 재미있게 하시나 했는데 너무 시큰둥하셔서 실망했어요. (웃음)

김정순 : 내가 여기 와서 북한에서 62년 살았던 것보다 여기서 2년 반 살은 경제생활이, 내 마음부터가, 내 마음의 경제부터가 풍부해진 것 같습니다. (웃음)

<이규상> 사실 북한 국내 산업 기반이 멈췄다는 건 반도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군사 부분 이외에 공장도, 산업도, 기술자도 거의 사라졌다는 얘긴데요. 다시 돌아기기 위해서는 가야할 길이 바쁘고 먼 듯 합니다.

<이현주> 오늘 <생생경제> 여기까집니다. 다음 주 수요일 이 시간, 인사드리겠습니다.

<이규상> 지금까지 진행에 서울에서 이현주, 워싱턴에서 이규상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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