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여는 세상] 겨울을 따뜻하게 하는 노래

2009-11-06

월요일, 올가을 들어서 처음으로 겨울 외투를 꺼내 입었습니다. 목도리까지 둘렀으니 이제 가을이라고 할 수 없네요. 본격적인 겨울입니다.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겨울 외투는 더 무거워 지는 것 같습니다. 겨울이 지나면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서 그런 걸까…, 외투를 걸친 어깨가 작년보다 묵직합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이 무게가 그렇게 싫지는 않다는 건데요, 20대엔 나이가 먹는 일이 무서웠지만 이제 서른도 중반을 넘기고 보니 한 해가 가고 나이를 먹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김장 전투, 시작하셨습니까? 남쪽은 아직 김장철이 아니지만, 북쪽 어머니들은 벌써 손이 분주하시겠습니다.

가을이 그렇게 풍요롭지 못해서 올 겨울도 한 시름일 텐데요, 오늘 <음악으로 여는 세상> 시간에는 겨울의 문턱에서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난로같은 노래들을 준비해봤습니다. 첫 곡, 이문세의 ‘나는 행복한 사람’으로 시작합니다.

이문세 - 나는 행복한 사람

오늘 신문에 산동네에 연탄 배달 봉사를 나온 어느 회사 직원들의 사진 실렸습니다. 겨울 초입이 되면 으레 이런 비슷한 사진이 실리는데, 이제 겨울이다... 뭐 이런 신호처럼 느껴집니다.

어쨌든 연탄을 실은 화물차에서 연탄을 배달할 집 앞까지 사람들이 일렬로 서서, 한 장씩 한 장씩 연탄을 나르는 이 사진 속, 사람들의 표정이 밝습니다.

아마 이 직원 중 20대 젊은 친구들은 연탄을 때는 집에 살아보지도 못했을 겁니다. 오늘 연탄을 처음 봤다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요즘 남쪽은 시골이라도 거의 도시 가스를 이용해 난방을 하기 때문에 연탄을 쓰는 곳은 가난한 소외 계층들이나 재래시장들입니다.

저희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가려면 오래된 상가 건물을 통과하면 좀 빠른데요, 물건도 안 사는 주제에 상가를 통과하기가 좀 눈치 보이지만 저는 주로 그 길로 다닙니다.

상가에 상점도 몇 개 없고 가게 주인들도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인 오래된 건물인데, 상가 입구에 꼭 여름이고 겨울이고 연탄난로를 펴놓습니다. 상가에 들어서마자 코로 훅 들어오는 매캐한 연탄가스 냄새, 겨울이 되면 이 냄새가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습니다.

매년 겨울이면 고향에선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람이 죽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그 무서웠던 연탄가스가 이제 고향 생각을 다 나게 합니다.

남쪽에는 연탄을 구공탄. 19개 구멍이 나 있는 십구공탄을 줄여서 구공탄이라고 부릅니다. 연탄 생김새나 구멍이 나있는 것이 남, 북쪽이 같은데, 겨울 나는 풍경은 세월에 따라 많이 달라져있습니다.

김건모-시장 풍경

그래도 사람 사는 어느 곳이나 풍경이 같은 곳은 바로 시장입니다. 여기저기 물건을 싸게 준다고 부르는 아줌마들. 큰 소리로 가격 흥정하다가 안 판다며, 안 산다며 얼굴을 붉히고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멱살을 잡는 모습까지... 물건이 북쪽에는 좀 적고 남쪽에는 좀 많은 뿐 시장 풍경은 정말 똑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동네에 사는 북에선 오신 노인네들은 가끔 한가할 때 시장 한 바퀴 돌면서 이런 저런 구경도 하고 고향 생각도 하고 하신답니다.

또 시장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장마당 식당입니다. 북쪽도 쪼그려 앉아 먹는 간이식당이 있듯이 남쪽의 시장통에도 식당이 있습니다. 주로 오뎅 꼬치, 떡볶이, 순대. 국수집, 순대국을 말아 파는, 맛이 특별히 없어도 시장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양념이 되는 그런 식당들입니다.

겨울이면 시장뿐 아니라 사람이 많이 자나다는 곳곳에 포장마차가 진을 칩니다. 포장마차는 바퀴달린 수레에 바람막이 비닐 포장을 둘러놓은 일종의 간이 상점인데, 겨울철 단골 음식은 일본식 생선 튀김, 오뎅입니다. 진짜 추운 날에도 오뎅 국물에 입이 데이도록 뜨거운 오뎅을 한두 개 먹고 나면 추위를 뚫고 집까지 갈 힘이 생깁니다. 김장훈의 노랩니다. 우리 기쁜 날.

김장훈 - 우리 기쁜 날

요즘 남쪽에서는 겨울이여도 그렇게 눈이 많이 오지 않습니다. 어르신들이 학교 다닐 때가 언젠지 그때는 그렇게 눈도 많이 왔다는데, 요즘 기다려도 눈이 오지 않습니다. 사실 없는 집 제사 돌아오는 것, 무섭다고 없는 살림에 겨울은 더 힘든 계절입니다.

북쪽에서 온 제 어머니 또래 아주머니들은 고난의 행군 시절 얘기를 많이 합니다. 장롱 부셔서 불을 때고 양말에 옷에 있는 대로 껴입고 자도 너무 추워서 가족이 다 함께 끌어안고 잤다는 얘기. 지긋 지긋했다고 말을 하지만, 웬일인지 그 얘기를 하는 얼굴은 한해가 갈수록 지긋 지긋한 표정이 아닙니다.

북쪽에 계시는 청취자 분들도 그 지긋지긋한 얘기가 반쯤은 옛 추억으로 넘어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쪽 텔레비전에서는 전문 서양 방송을 번역해서 나오는 통로가 있습니다. 재밌게도 이런 통로에는 사람들이 극한에 몰렸을 때 어떻게 살아남는지 알려주는 방송이 꽤 많습니다. 사막이나 정글, 도저히 살아 나오기 힘든 오지에 한 사람을 떨어뜨려 놓고 그 사람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나오는지 보여주면서 생존 기술을 알려주는데, 볼 때마다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니, 이걸 영국이나 미국 사람들이 과연 써먹을 일이 있을까...? 그럴 일이 전혀 없어서 이런 방송이 자주 나오는 것일 수도 있겠는데, 얼마 전 이 방송에서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가장 최고의 생존 방법은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김동률이 부릅니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김동률-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11월, 조금 이르지만 한해를 뒤돌아보게 됩니다. 일 년 동안 음악으로 여는 세상도 참 열심히 달려왔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제가 이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도 해가 넘으면 벌써 2해째가 됩니다.

이렇게 횟수로 2년 가까이 이 방송을 진행해오면서 항상 고민되는 것은 과연 청취자들에게 음악을 듣고 있을 시간이 있을까?

밥 없는 사람에게 밥을 줘야지 그 사람들에게 클래식이며 팝송이며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일까? 그렇지만 한 가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이 방송은 계속됩니다.

제가 힘들 때, 괴로울 때, 시름을 잊고 다시 일어나게 해준 것이 바로 음악이었다는 사실. 저를 다시 살게 해준 것도 살아남을 수 있게 긍정적인 힘을 준 것도 역시 음악이었다는 것.

오늘 들려드리는 음악도 여러분께 꼭 그런 힘이 됐으면 하는 것이 2년 동안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제가 유일하게 바라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번 겨울, 추워도 마음만은 얼지 않는 그런 겨울 되길 빌면서 저는 이만 인사드립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김철웅, 구성에 이현주, 제작에 서울 지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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