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음악정치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6.06.02
moranbong_band-620.jpg '북한판 걸그룹' 모란봉악단이 노동당 제7차 대회 경축공연에서 다양한 군무(群舞)를 추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의 음악정치는 형식면에서는 공자의 예악사상과 같을 수 있겠지만 내용면에서는 전혀 다른 것 같아요. 북한에서는 음악이 정치의 종속물로 주민의 노동력을 보다 많이 얻어내려는데 있기에. / 작년에도 양강도 혜산 시에서만 디브이디, 알판 밀수 건으로 두 명을 공개 처형시켰답니다.

한국에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노래 한 곡 때문에 파행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7차당대회를 경축하는 음악공연이 성대하게 열렸다고 합니다. 남북한에서 음악을 둔 광경이 다른 것은 물론 체제 차이 때문이겠지요.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남북한의 음악정치에 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5.`18광주민주화운동 행사 파행 소식 부터 알아볼까요.

임채욱 선생: 지난 5월 18일 광주에 있는 국립5.18민주묘지에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제36주년 기념식이 열렸는데, 정부 주무부처인 보훈처 처장이 식장에 들어가지 못했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 합창될 때 국회의장을 비롯한 여야정치지도자들, 희생자 유족들, 참석시민들이 모두 따라 불렀지만 정부대표인 국무총리, 청와대 정무수석비서는 부르지 않았지요. 보훈처장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형식으로 부르게 해달라는 정치권의 요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5.18 유족들의 저지로 들어가지 못한 거지요.

합창과 제창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그리고 당국은 왜 제창을 거부하는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합창은 정해진 합창단이 부르는 것으로 참석자 모두가 부를 필요가 없지만 제창은 참석자 전원이 함께 부르는 것을 말하죠. 그런데 이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서 정치권은 5.18을 상징하는 노래이기에 기념식에서 의무적으로 부르는 것이 맞다고 보지만 보수우파단체에서는 종북주의자들이 주로 부르는 것이며 또 1991년에 북한에서 제작된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것이어서 이 노래를 일제히 부를 필요가 없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지요. 그러니까 주무부서인 보훈처는 국론분열을 가져오는 제창을 허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구체적으로 어떤 노래이기에 종북주의자들이 부르는 것으로 규정을 합니까?

임채욱 선생: 이 노래 가사는 통일운동가인 백기완이 쓴 장편시에서 소설가 황석영이 빌려 쓴 구절로 됐고 곡은 당시 대학생인 김종률이 부친 것이지요. 이 노래는 당초 광주민주화운동 때 시민군 대표로 활약하다가 희생된 한 운동가와 여성운동가인 후배의 영혼결혼식에 사용하려고 만든 노래였지요. 이 영혼결혼식 후 민주화운동 집회 때나 학생들의 데모현장에서 부르는 노래가 됐지요. 그러니까 이 노래는 종북주의자들도 많이 부른다는 것이지 종북주의자들만이 부르는 노래는 아니지요. 하지만 보수단체에서는 종북주의자들이 즐겨 부르는 이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없다는 견해를 갖고 있지요.

이번에는 북한에서 벌인 경축음악행사를 한 번 살펴볼까요.

임채욱 선생: 7차당대회가 끝난 이틀 뒤인 5월 11일 모란봉악단, 청봉악단, 공훈국가합창단 합동공연으로 <영원히 우리 당 따라>라는 주제로 열렸지요. 관람자는 당중앙위원회 위원들과 당과 군의 책임자들, 당대회 참가자들, 70일전투에서 공훈을 세운 공로자들, 평양 시내 근로자들이며, 그밖에 외국에 사는 동포들 대표, 외국사절 들이 초청됐지요. 관현악과 남성합창단이 부르는 <남산의 푸른 소나무>를 시작으로 <위대한 조선노동당 만세>, <어머니 목소리>, <당의 기치따라> 등등의 노래와 김일성, 김정일 업적을 칭송하는 노래들이 울려 퍼졌지요. 또한 현재의 지도자 김정은을 높여 세우는 우상화 노래 역시 등장해서 음악정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음악정치라고 했는데 어떤 것이 음악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음악정치는 ‘음악을 통해 온갖 어려움을 이기고 극복한다’라는 김정일의 정치방식의 하나였습니다. 음악정치가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은 2000년 2월 평양에 있는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인민무력성 토론회였지요. 이 토론회에서 “지금 우리식의 특이한 음악정치가 펼쳐지고 있다”면서 그 음악정치가 펼치는 모습은 노래소리 높은 곳에 혁명의 승리가 있다는 신념으로 시련과 난관을 노래로 이겨내고 있다고 했죠. ‘고난의 행군’시절에도 노래를 통해 어려움을 이겨냈듯이 노래를 부르면서 선군정치를 이뤄나가자는 것이 바로 음악정치죠. 노래는 사람들을 낙관주의자로 만들기 때문에 난관과 어려움도 웃으면서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선동하죠. 이것이 다 김정일의 음악정치가 가져온 결실이라고 내 세우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음악정치를 잘하려고 인민군협주단의 합창단을 독립시켜서 국가공훈합창단으로 만들기도 했지요.

음악을 정치에 활용한다는 것이 음악정치라면 일찍이 공자가 강조한 예악과도 다르지 않을 것 같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공자는 예와 악을 동시에 실천해야한다고 했지요. 이때의 예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겸손이고 악은 즐거움과 화합을 뜻하지요. 사실 예의를 지키는 일이 부자들에게는 어렵고 음악을 즐기는 것은 가난한 사람에게는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즐거운 음악과 함께 남을 배려하는 예의를 중시하는 것이 공자 예악사상의 핵심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음악정치는 형식면에서는 공자의 예악사상과 같을 수 있겠지만 내용면에서는 전혀 다른 것 같아요. 공자의 예악은 음악으로 하나가 되고 예의로써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 기본이고 이를 통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것이 목적인데, 북한에서는 음악이 정치의 종속물로 주민의 노동력을 보다 많이 얻어내려는데 있기에 형식은 같아도 내용은 다른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한국에서는 딱히 음악정치라는 것도 없지만 노래 하나에 국민이 갈등하고 분열된다면 통치자의 정치행위도 대단히 어렵겠군요.

임채욱 선생: 문제는 모두가 <임을 위한 행진곡>에 지나친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군요.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에선 이 노래가 널리 알려진 것도 아니고 한국의 20, 30대도 의외로 이 노래를 들어보지 못했다는 비율이 37%라는데, 이 노래가 가져올 파괴력을 겁내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프랑스 국가는 혁명군이 만든 가사가 아니라 왕당파 군인이 쓴 것이지요. 가사 중에는 “더러운 피로 밭고랑을 적시겠다”라는 것도 있는데 그래도 이 가사가 혁명가로 되고 이 혁명가를 프랑스 국가로 됐다는 사실을 보면 누가 지었다는 것이 무슨 문제겠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북한처럼 하나의 가락에 천만의 가락을 맞추는 일사불란한 체제가 아니라서 한국의 통치자는 조정하고 통합하는 정치력을 발휘해야겠지요.

지난 4월 말 저희 자유아시아방송 여성시대 프로그램에 한국이 아닌 유럽이나 캐나다 미국 등 제3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이 북한의 민주화와 인권개선을 위해 국제 탈북민 연대를 결성해 활동 하고 있는데, 이 대표단으로 최근 중국과 북한 혜산 시와 경계를 이루는 국경지역인 장백현 그리고 북한의 회령과 마주한 용정시를 돌아본 탈북인 김 모 씨가 남한 드라마나 비디오를 보다 들키면 공개처형 시킨다는 이야기 함께 들어보시죠.

김: 북한의 배급 체계가 무너지다보니 장사로 살아가는 주민들의 통제는 북한당국에서도 덜 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희가 이번 국경지대 시찰에서 만난 북한 주민들은 19살과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두 명의 여성과 27살의 남성이었습니다. 여성 두 분은 질문을 계속 피했고 남성과는 간략하게 얘기를 나누었는데 이 분에 의하면 과거에 비해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노래 등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많아졌지만, 만약 그런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노래를 듣다 적발 될 때는 아직까지 계속 공개 처형 같은 형벌이 따르기 때문에 설령 보았다고 해도 서로 얘기를 나누지 않는다고 그래요. 작년에도 양강도 혜산 시에서만 디브이디, 알판 밀수 건으로 두 명을 공개 처형시켰답니다. 이런 사정을 볼 때 표면상 드러나지는 않지만 한국의 드라마나 한류가 북한 당국의 통제 속에서도 계속 보급이 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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