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첨성대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6.10.21
chumsungdae-620.jpg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들이 11일 오전 경주 첨성대에서 규모 3.3의 여진에 따른 피해 유무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경주첨성대는 2000년 경주역사지구가 지정될 때 들어갔고 개성첨성대는 2013년 개성역사지구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때 됐지요. 이 개성역사지구가 등재될 때 남쪽에서 도와 주려 했으나 프랑스의 협력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난 9월 추석을 전후해서 경상북도 경주에서 지진이 두 차례 일어났습니다. 경주는 신라 천 년의 유적과 유물이 즐비한 곳이고 그래서 석굴암과 불국사를 비롯해서 경주 역사지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 이기도 합니다. 남한 연합뉴스는 지난 9월 20일 첨성대를 오랫동안 조사한 김덕문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장의 의견을 보도했습니다. “첨성대는 하부가 상부보다 직경이 더 크고 12단까지는 내부가 흙으로 채워져 있다” 면서 “무게중심이 아래쪽에 있어서 진동이 와도 오뚝이처럼 견디는 복원력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첨성대에 대한 추가 정밀 조사를 통해 상태를 진단하고, 조사 결과를 토대로 전문가 논의, 문화재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보수를 위해 해체할지 여부를 결정 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지진의 영향을 받은 남한 경주 첨성대 소식과 아울러 북한 개성 첨성대에 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경주 첨성대가 지금까지 아주 큰 피해는 없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되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임채욱 선생: 네. 저도 같은 심정 이였습니다. 지진 후 첨성대를 조사하는 사진을 보면서 섬뜩했지요. 혹시 금이나 가지 않았나, 파괴된 부분은 없나 했지요. 첨성대는 얼마나 귀중하고 자랑스러운 문화 유산 입니까? 우리나라 많은 첨성대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 많은 첨성대라고 했는데 다른 첨성대는 어떤 것들이 있었습니까?

임채욱 선생: 평양에는 고구려 시대 첨성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흔적도 없고 개성에는 고려시대 첨성대가 있었는데 그 흔적이 기단으로 남아있지요. 서울에는 조선조 세종 때 첨성대를 세웠고 경복궁 안에 천문을 관찰하는 간의대가 있었고, 창덕궁에 관천대를 세웠지요. 임진왜란 때 훼손되고 그 유적이 계동과 창경궁에 남아 있지요. 백제에서는 첨성대에 관한 기록이나 유적이 남아 있지 않아요.

그럼 남한과 북한 지역에 남아있는 첨성대를 살펴보도록 하죠.

임채욱 선생: 네. 결국 경주첨성대와 개성첨성대를 말하겠는데, 이번에 우리를 놀라게 한 경주첨성대부터 알아보지요. 경주에 있는 신라시대 첨성대는 선덕여왕 때 쌓은 것이므로 한 1370년 된 건축물이지요. 화강석 365개로 쌓아 올렸는데 높이가 9.5m입니다. 제일 밑의 4각 기단 위에 원통형으로 27단을 올리고 27단 꼭대기에는 사각형의 우물 정자 모양으로 돌을 올렸습니다. 밑변보다 위로 올라가면서 점점 가늘어 지는 안정된 곡선 모양이어서 사람에 따라서는 콜라병을 세워 놓은 듯 하다고도 하지요. 우리 문화유산을 콜라병에 빗대면 불경하지 않을까요? 저는 첨성대의 잘룩한 곡선부분을 보면 콜라병 만든 사람이 첨성대를 보고 간 게 아닌가 생각하지요. 그건 그렇고 첨성대 몸체 중간쯤 남쪽방향으로 네모난 구멍이 있는데 사람이 드나들 만한 크기이지요. 이 구멍을 통해 위쪽으로 올라가서 해와 달을 관찰하고 별자리를 관측했다고 합니다. 경주첨성대가 자랑스럽고 귀중하다는 것은 7세기 전반에 세워져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것으로서는 세계적으로도 오래됐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개성 첨성대를 말씀해 주시죠.

개성 첨성대는 그 자취만 남아있지요. 개성 만월대에 있었는데 개성이야 본래 북한지역이라 할 수 없지만 북한 땅이 된 거지요. 만월대는 아시다시피 고려 왕궁이지요. 이애리수가 부른 노래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하는 곳이 만월대죠. 황성옛터란 말은 500년 도읍지 왕성이 황폐하게 된 것을 말하지요. 첨성대는 만월대 서쪽부분에 있었는데 고려초기 만월대를 지을 때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개성 첨성대도 화강석으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불행히도 관측기구들을 올려놓았을 것으로 추측되는 축대부분만 남아 있어요. 축대 밑은 네모졌고 축대높이는 2.8m, 한 변의 길이는 2.6m, 그리고 5개 기둥 돌을 세웠는데 4개는 네 귀에 세우고 1개는 복판에 세웠습니다. 축대 변은 동서남북 방위와 정확히 일치하는데 돌 다듬기 수법이 아주 정밀했습니다.

실제로 첨성대에서 관측한 천문기록들은 남아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신라시대에 천문박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실제 경주첨성대에서 천문기상을 관찰해서 기록한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삼국사기’같은 책을 보면 첨성대가 세워진 이후가 되는 779년 경주에서 집이 무너지고 100여명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기록은 다 첨성대 관측과 관련해서 기록을 어디엔가 남겼기 때문이지요. 한편 개성첨성대는 좋은 기록을 남겼을 것으로 추측되는 것이 고려는 건국 초부터 태복감, 태사국 같은 천문기상을 관측하는 기관을 두고 자세하게 기록한 모습이 잡히기 때문입니다. 가령 태양 흑점을 관찰한 기록이 50여건이 보이고 일식 등 특이한 천체현상을 기록한 것이 보이지요. 이로 보면 개성첨성대도 좋은 관측기능을 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됩니다. 고려시대 역사를 수록한 ‘고려사’를 보면 천문기상현상을 기록한 천문지가 있는데 이 천문지에는 고려시대에 일어난 일식이 132번이라고 돼있고 또 혜성이나 별똥별, 특별해 보이는 별자리 움직임 등 많은 천문현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량은 삼국시대 천문현상을 기록한 ‘삼국사기’ 기록 량 보다 훨씬 많습니다.

경주첨성대와 개성첨성대를 미뤄볼 때 우리나라 천문기상 관측능력은 매우 높았다고 평가할 수 있나요?

임채욱 선생: 그럼요. 우리나라는 고조선 시기에 천문기상을 관측하고 기록하는 일을 했다고 하지요. 삼국시대에는 관직을 두고 천문관측을 본격적으로 진행했고요. 서기 89년 한성백제 때, 그러니까 지금 서울지역 때 지진이 일어났다는 기록이 남은 것이라든가 서기 304년 지금 경주인 월성에 지진이 있었다는 기록들을 보면 심국시대에도 천문지식이 결코 낮은 것은 아니라고 봐야지요. 고구려는 천문도를 만들어 이용했고 평양에는 고구려 시기 첨성대가 있었는데 이 첨성대는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있었습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평양성안에 있는 못가에 첨성대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무엇보다 고구려 때의 천문기상 관측 그림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만 봐도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천문기상 관측능력이 매우 높았다고 할 수 있지요.

지금 천상열차분야지도라고 했는데 그걸 설명 좀 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이런 뜻입니다. 천상은, 천체의 현상을 말하지요. 다음 열차는 차례대로 펼쳤다는 것, 분야지도는 나눠진 구역의 그림이란 뜻이지요. 다시 말하면 하늘의 천체현상을 28개로 나눠진 구역에 따라 차례대로 그려 넣은 그림이지요. 하늘의 해와 별자리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 하늘을 28개 구역으로 나누고 이 구역 안에 해당하는 별들을 그려 넣었다는 것이지요. 이걸 천상열차분야지도라고 하는데 고구려에서 하늘의 별자리를 그린 천문도였습니다. 이 천문도에는 1467개의 별들을 하나의 원안에 282개의 별자리들로 갈라서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 천문도가 현재 전해지고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없습니다. 이 천문도를 모사한 것이 전해져서 고려를 거쳐 조선조에 전해졌습니다. 이것을 조선조 초기 돌에 새겼습니다. 이것이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이란 이름으로 귀중한 유물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 서울 중앙박물관에 있는데 국보 228호로 지정돼 있지요.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첨성대가 천문을 관측하는 곳이 아니라 제사를 지낸 곳으로 보기도 한다지요?

임채욱 선생: 네. 어떤 사람들은 첨성대를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하지요. 그러나 그런 주장은 첨성대의 과학적인 설계를 바르게 파악하지 못한 것이지요. 설령 제사를 지내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보이더라도 천문대로서 손색이 전혀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첨성대는 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지요?

임채욱 선생: 당연하지요. 경주첨성대는 2000년 경주역사지구가 지정될 때 들어갔고 개성첨성대는 2013년 개성역사지구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때 됐지요. 이 개성역사지구가 등재될 때 남쪽에서 도와 주려 했으나 프랑스의 협력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보다 앞서 2004년 고구려 고분군이 신청됐을 때는 남쪽 한국대표단이 큰 협조를 해서 성사됐다고 하는군요. 통일이 돼서 남북한이 나눠서 하던 것을 다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리고 세계에 자랑하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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