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노르웨이 캐나다에서 다시 한국

워싱턴-김수인 인턴기자 kimsu@rfa.org
2017-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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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에서 환경미화원들이 청소를 하고 있다.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에서 환경미화원들이 청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녕하세요. 탈북민들의 남한생활. 이 시간 진행에 김수인 입니다.

한국에 온 탈북민 수가 지난 9월말 기준 3만 1.093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고난의 행군 이후 많은 북한주민들이 먹고 살기 위해 두만강을 건넜다면 최근에 오는 사람들은 좀 더 나은 삶, 자식의 장래를 위해 북한을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는데요, 어떤 이유에서 한국 행을 선택하든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한국에서 맞는 명절 때면 더 간절해 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어린 딸과 북한을 나와 북한 보다는 더 좋은 삶을 기대하며 중국에서, 노르웨이에서, 또 캐나다에서 지내다 지금은 한국에서 살고 계신 모녀의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기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김: 안녕하세요. 주아 라고 합니다. 저는 2004년 10월에 한국에 왔어요. 지금은 미화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처음에 나왔을 때는 거의 일을 못했어요. 한국에 오는 동안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몸에 병이 생긴 것 같더라고요.

기자: 아무래도 한국까지 오는 기간에 많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잖아요. 그리고 또 북한에서는 크게 병이 나지 않는 이상 건강검진도 거의 안받으니까 어떤 병이 있는지 잘 모르죠.

김: 그래서 한국 와서 일을 못했는데 최근에 미화원에서 일하고 있어요.

기자: 지금 일하시는 곳이 미화원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김: 미화원은 청소하는 일인데요, 건물 청소하는 거에요. 대부분 화장실 청소를 기본으로 하는데, 고객들이 음료수 병을 깨거나 물건을 흘리면 닦고 관리하는 일이죠. 일이 육체적으로 힘들지는 않아요. 건강이 안 좋으니까 몸에 맞는 일을 찾은 거죠.

기자: 자신의 건강으로 감당할 수 있는 직업을 잡으셔서 다행이시네요. 한국에 오신 후에 외국에서도 좀 사시다 오신 걸로 알고 있어요. 외국엔 어디 다녀오셨어요?

김: 2007년에 노르웨이 가서 1년 살다 오고 이후 2012년에는 캐나다에서 2년정도 살다 왔어요.

기자: 2007년이면 한국에 오셔서 한 3년정도 지난 후인데 특별히 외국으로 이사 가셨던 이유가 있을까요?

김: 제가 몸이 안 좋다 보니 딸이 혼자 일해서 벌어서 살았었어요. 딸을 뒷받침 못해주니까 외국가면 그런 부분에 지원을 받을 수 있지 않을 가 싶어서 가게 됐었죠.

기자: 보통 한국에 사시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한국사회에 아무래도 북한사람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 들이 있잖아요 외국으로 가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러면 노르웨이에선 북한주민을 난민으로 받아주는 건가요?

김: 네, 그렇게 받아주긴 하는데 저희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어서 잘 받아주지 않았어요. 그리고 또 북한사람들이 좀 예민한 성질이 있다 보니 자기들끼리 사이가 안 좋아지고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또 노르웨이는 6개월씩 집을 주는데요, 또 이사를 가야 되고, 너무 외로워서 다시 한국 오게 됐어요.

기자: 한국에서는 임대아파트를 주면 거의 평생 살수 있잖아요, 노르웨이는 6개월 단위로 주는 군요. 그렇게 한국에 돌아오셨는데 캐나다는 왜 또 가게 되셨어요?

김: 한번 외국 나갔다 오면 한국이 좀 답답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캐나다 가게 되었었는데 거의 2년정도 살았어요. 그런데 일단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캐나다에서도 안 받아줬어요.

기자: 2004년까지 북한에서 사시 다가, 중국에서도 살고 또 노르웨이나 캐나다에서 사셨는데, 한국에서도 이제 10년정도 사셨잖아요, 어때요? 북한의 삶이랑 비교하면 한국이 어떤 점이 나을 가요?

김: 네, 북한에서 저는 굶주림도 경험했어요. 3일까지 굶어봤는데, 북한에서는 돈이 없어 장사를 못하거나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잖아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하루만 아르바이트 해도 쌀 20kg구할 수 있고 본인만 노력하면 충분히 살수 있죠.

기자: 한국에서는 먹는 거, 식량 걱정은 안하고 살죠. 북한처럼 기본적인 의식주 걱정은 없죠. 몸이 안 좋으시면 한국에서는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것도 있지 않나요?

김: 네. 예전에는 지원이 있었는데, 지금은 회사 다니고 있어서 수익이 있다 보니 그런 지원은 없어요. 그리고 또 저는 아프긴 한데 질병이 있는 게 아니라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면 원인 이 없어요. 몸이 약하니까 자주 아픈 것 같아요.

기자: 그렇군요, 중국에서 불법체류자로 또 북한에 잡혀나가지 않을까 그런 걱정 때문에 탈북민들이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더라고요, 미화원 일은 좀 육체적으로 편한 만큼 월급은 별로 높지 않은 걸로 알고 있어요.

김: 네. 그렇긴 한데 먹고는 살아요. 뭐 한국에서는 바닥 생활이긴 하지만, 북한에 비한다면 이런 생활이 꽃이다 싶어요. 북한에서는 굶기도 하고 꽃 제비 생활도 해보았거든요, 그런 생활에 비한다면 마음의 위로가 되죠.

기자: 남한에서는 능력에 따라 대우를 받으니까 좋은 직업 구하기가 쉽지가 않죠. 그럼에도 북한 생활에 비한다면 삶의 질이 완전히 다르죠. 제가 탈북민들 인터뷰하다 보면 직장생활 하면서 편견이나 오해가 좀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일하시는데 불편한 점은 없으세요?

김: 네, 저희 회사는 다 한국사람이고 제 혼자 북한 사람이에요. 저희 회사에서 최근에 인원을 좀 감축했어요. 저희는 업무가 봉사 직이다 보니 말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업무상 무전도 받아야 하는데 제 말투가 좀 싸우는 것 같고 화난 것 같다면서 저를 자르려고 했대요. 저희 상사들 말로는 저를 자르려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잘리진 않았는데 그런 경우가 있죠,

기자: 제가 봤을 때는 북한에서 사셨던 분들이 표현할 때 직설적인 면이 있잖아요. 그래서 의도치 않게 오해가 생기는 것 같은데, 그럴 땐 정말 마음이 상하겠어요. 그럴 땐 어떻게 하셨어요?

김: 네.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고 제대로 말해요. 그러면 오해는 풀리는데, 말투를 예쁘게 하라는 얘기를 많이 듣죠.

기자: 그럼 말투나 표현 방법을 좀 바꿔보려고 노력도 하세요?

김: 네, 말투 바꾸려고 노력하죠. 말을 따라 하기도 하고, 한국 사람들이랑 많이 어울리려고도 하고요.

기자: 함께 어울려 생활하면 사회도 많이 알고 좀 더 빨리 적응을 하고 그러겠죠. 엊그제가 추석이었잖아요. 저희가 명절 때면 고향생각이 더 나는데 추석은 잘 보내셨어요?

김지우: 네. 추석에 저는 일했어요. 근데 명절 때면 좀 쓸쓸해요. 잘 살던 못 살던, 좋던 나쁘던 고향이다 보니까 많이 생각나고 쓸쓸하죠.

기자: 그렇죠. 네, 추석 문화가 북한이랑 좀 다르잖아요.

김지우: 북한에서 추석에 산소에 가는 걸로 기억하는데요,

기자: 제 기억엔 음식을 만들어서 조상들 산소로 가는 거였죠.

김지우: 네, 그래서 굶고 살다가 한식, 추석이면 떡을 먹고 음식 먹을 수 있으니까 기다리고 했죠. 저는 아직 한국에서 제사 음식상을 차려보진 않았는데, 한국에선 정말 음식도 많이 하고 복잡하더라고요.

기자: 네, 추석 문화가 많이 다르죠, 제사상 차림도 그렇고.

김지우: 네. 한국은 진짜 복잡하더라고요, 저는 딸이 있는데 시집 가면 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자: 네. 말씀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인턴기자 김수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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