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빈 쌀독에서 인심이 어찌 나올까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7.10.06
hangang_bike_share_b 서울 반포한강공원 세빛섬에서 모델들이 호가든 피크닉 자전거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추석 연휴는 며칠이나 쉬셨습니까. 이번에 남쪽에서 추석은 모처럼 길게 쉬었습니다. 이런 긴 연휴를 여기선 황금연휴라고 부릅니다. 원래 추석은 3일 쉬는데, 이번엔 화수목 가운데 끼었습니다. 추석 때문에 당연히 노는 3일이 한국에선 개천절이라고 부르는 공휴일과 겹치기 때문에 국가는 6일 금요일을 3일의 대체 휴일로 지정하고 2일은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그리고 원래 토요일과 일요일은 노는 날이고, 다음주 월요일인 9일은 또 한글날이라고 부르는 국가 공휴일입니다. 그러니까 9월 30일 토요일부터 시작해서 10월 9일까지 무려 열흘이나 내처 쉬게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직업에 따라 열흘 쉬는 사람도 있고 닷새 쉬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일주일을 쉬게 됐습니다.

저는 이렇게 긴 연휴 동안 집에서 책이나 쓰려 생각하고 눌러앉았습니다. 그런데 이 좋은 가을 날씨에 집에만 박혀 있을 순 없어 하루 한강변 여의도에 자전거 타려 나갔습니다. 한강을 따라 자전거길이 정말 잘 꾸려져 있어서 달리면 기분이 정말 상쾌해집니다. 저는 한강 옆에 누워 강바람이 피부를 스쳐가는 느낌을 즐깁니다. 그렇게 누워 있다가 딱 2~3시간만 자고 깨면 일주일 피로가 다 날아가는 느낌입니다. 요즘은 한강까지 일부러 집에서 자전거를 갖고 갈 필요도 없습니다. 거기 가면 ‘따릉이’라고 불리는 공용자전거들이 여기저기 많아서 약간의 돈만 내고 빌려 타다가 반납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빌린 곳에 딱 갖다 줄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대여소가 서울에 워낙 많다보니 목적지 인근 대여소에 반납하면 됩니다. 가령 평양이라면 5.1경기장이 있는 릉라도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대동강을 따라 달려 내려오다 쑥섬에 가서 반납하면 되는 식인데, 이게 정말 편합니다.

서울 전체에 이런 공공자전거 체계가 만들어진 것은 딱 2년 전의 일인데, 지금 1만 3000대 넘게 운영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입니다. 자전거 정도는 이젠 자기 것이 없어도 서울에서 버스 한두 번 타는 정도의 돈만 내면 어디서든 빌려 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이런 이야기 들으면 아니 그거 훔쳐 가면 어떻게 하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선 훔쳐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죠. 우선 자전거 가격이 이곳 소득에 비하면 비싼 것도 아닌데, 그거 훔쳐 가봐야 돈 버는 것도 아니고 잘못 걸리면 도둑놈으로 처벌받습니다. 공공자전거는 또 도색이 눈에 딱 들어오게 돼 있기 때문에 훔쳐 가서 도색비를 새로 지출할 바에는 그냥 새 것을 사는 게 낫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신분 확인하는 절차가 잘 돼 있어 자전거 빌릴 때 신분을 확인하는데 바로 반납하지 않으면 시간당 이용요금만 늘어나니 딱 탈만큼 타고 최대한 빨리 반납할 수밖에 없죠.

제일 중요한 것은 한국은 부유한 나라이고, 시민 의식도 높아서 도둑질해 갈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이게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자전거를 앞으로 개인이 갖고 있을 필요가 없이 필요한 사람만 쓰고 반납하는 체계가 발전되면 나중엔 자동차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솔직히 여기 남쪽은 거의 모든 집에서 자가용 승용차를 갖고 있지만, 실제 그걸 몰고 다니는 시간은 합치면 일주일에 하루도 안 될 겁니다. 엿새는 주차장에 세워두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자동차를 공유하면 오늘은 내가 쓰고 반납하고 내일엔 딴 사람이 쓰면 되니까, 과거에 일곱 대의 승용차가 필요할 일을 한 대면 되죠. 그러면 교통 체증도 해소되고, 주차장 공간들도 많이 절약해 그 자리에 다른 건물 세우면 됩니다. 또 차를 사느라 목돈을 쓸 일도 없겠죠.

제가 볼 때는 머잖아 이런 시대가 올 것 같습니다. 한 10년, 많아서 20년 내로 올 것 같은데, 그때는 또 무인차가 발달해서 휴대전화로 부르면 내가 필요한 곳에 차가 딱 와서 대기하고 있다가 태우고 갈 겁니다. 그리고 날 내려준 뒤 차는 다시 필요한 사람의 호출을 받고 딴 데 가는 것이죠. 그런 날이 제가 은퇴하기 전에는 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렇게 자동차처럼 비싼 것까지 공유하려면 결국 나라가 잘 살아야 합니다.

중국은 북한에 비해 엄청 잘사는 나라지만, 여기도 아직 한국에 비해선 멀었습니다. 가령 한국은 화장실에 가면 북에서 위생지라고 하는 두루마기(두루마리) 화장지는 다 공짜로 구비돼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아직도 이게 공짜가 아닙니다. 왜냐면 화장실에 넣어두면 다 훔쳐가죠. 심지어 수도 베이징도 예외는 아닌데, 얼마 전 유명 한 공원에선 화장지 훔쳐 가지 못하게 얼굴 인식 기계까지 설치해 화제가 됐습니다.

한 사람당 70cm의 화장지만 제공되고 다시 화장지를 받기 위해서는 9분을 기다렸다 기계 앞에 서면 얼굴 인식해 주는 것이죠. 공짜로 주긴 하지만, 급하게 화장지가 필요할 때 9분이나 기다려야 하는 게 얼마나 곤욕입니까. 도둑질만 안했어도 이런 일은 없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화장지 자판기 도입 후 하루 화장지 교체량이 14개에서 4개로 줄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도 예전에 화장실에 화장지를 구비해 놓으면 도둑질해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잘 살게 되면서 화장지 정도는 뭐 도둑질해가던, 많이 쓰던 상관하지 않는 시절이 온 것이죠. 몇 푼 안 되는 화장지를 누가 훔쳐 가겠습니까.

원래 쌀독에서 인심이 난다고 하는데, 부유해야 도덕에 어긋나지 않게 살고, 남을 배려하는 문화가 생겨납니다. 북한처럼 가난한 곳에선 사람들이 악만 남아서 싸움만 잦지요. 북한이 지금 외부 세계를 향해 저리 살벌하게 노는 것도 결국 그런 영향도 크다고 봅니다. 북한이 잘 살아보십시오. 입에 담지 못할 막말로 세상을 향해 협박하는 일 따위는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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