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느새 한해가 다 갔습니다. 나이들수록 어떻게 1년이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네요. 이 방송도 올해 제가 하는 마지막 방송이네요.
여기 서울은 지금 사방이 번쩍번쩍한 게 명절 분위기입니다. 25일이 크리스마스였잖습니까. 크리스마스하면 바로 크리스마스트리가 생각나죠. 지금 서울엔 사방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서 있습니다. 작은 건 제 키만하기도 하지만, 큰 것은 높이가 몇십m나 되기도 합니다. 이런 트리들이 번쩍번쩍하는 것도 모자라서, 길에 있는 가로수에도 작은 전구 수천 개를 매달아서 번쩍번쩍 형형색색의 빛을 냅니다. 또 여기저기서 성탄절을 기념하는 즐거운 음악이 흘러나와 거리를 걸으면 비록 날씨는 춥지만, 마음은 참 즐겁고 기분도 좋습니다. 이런 거리 기분은 새해까지 이어져서 해마다 연말은 일주일 동안 명절 기분입니다.
북에선 한해를 보내는 송년회를 대체로 12월 30일과 31일 경에 하는데 서울은 한해를 보내는 송년회를 12월 초부터 시작해서 일반적으로 25일 이전에는 거의 다 끝냅니다. 직장별로 하기도 하고 친구들이 모여서 하기도 합니다. 모두 바쁘게 살다보니 연말에 가서 사람들이 모이기 쉽지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 그래서인지 12월 중순 경에는 밤에 사방에 송년회를 마치고 나온 술 한 잔 걸친 사람들이 거리에 넘쳤지만 25일부터는 이런 풍경을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송년회가 끝나면 술도 한잔 마셨겠다 하니 지하철이나 버스보다는 보통 편안한 택시를 타고 집에 가므로, 12월 20일쯤까지는 12시 넘어 택시를 잡기 힘듭니다. 그런데 요즘엔 거리에 빈 택시들이 넘치는 것을 봐선 서울의 각 직장 송년회는 거의 다 끝난 것 같네요.
송년회는 별거 없습니다. 식당에 모여서 소고기나 돼지고기 구워먹고, 술 한잔 하고, 그다음 노래방을 갑니다. 거기 가서 노래를 몇 곡 뽑고 그리고 보통 헤어집니다. 제가 한국에 오니 건배사가 참 인상이 깊었습니다. 북에서야 보통 ‘뭘뭘 위하여’ 하면서 술잔을 함께 비웠지 않습니까. 요즘엔 중국 문화가 많이 들어가서 거기도 ‘깐베이’ 하면서 마신다고들 하던데, 아무튼 건배사라는 말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여긴 유행어처럼 해마다 서로 다른 건배사들이 돌아갑니다. 말을 참 어떻게 그렇게 신통하게 지어내는지 모르겠습니다.
몇 년 전까진 ‘개나발’, ‘오징어’ 이런 건배사가 인기였습니다. 개나발은 “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라는 문장에서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말입니다. 오징어는 “오래도록 징그럽게 어울리자” 이런 의미랍니다. 술잔을 들고 한 사람이 ‘개나발’ 하고 외치면 다 같이 ‘개나발’ 하면서 함께 마시는 식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너나잘해’란 말이 인기였습니다. 너나잘해는 ‘너와 나의 잘나가는 새해를 위해’라는 뜻이랍니다.
한국 문화가 북에 많이 들어가는데, 왜 이런 건배사 문화는 빨리 안 들어가는지 잘 모르겠네요. 북에서도 얼마든지 이런 말을 많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말 잘못하면 잡혀가니까 듣기 좋은 혁명적 건배사 같은 건 만들 수 있죠. 서울에서 좀 보고 들은 경험으로 제가 직접 만들어본다면, 이를테면 ‘백두산’하고 외치고 술을 마시면 백두산이란 뜻이 “백년을 두고두고 산뜻하게 살자” 뭐 이런 뜻이 될 수도 있고, ‘속도전’ 하면 ‘속지 말고, 도둑질 당하지 않고, 전거리교화소 잡혀가지 말자’ 이런 뜻이 될 수도 있죠. ‘장마당’ 하면 ‘장사로 마지막까지 당당하게 돈 벌자’ 이런 의미를 만들 수도 있고, 아무튼 이러저런 단어를 엮어서 다양한 의미의 건배사를 만들 수 있겠죠.
남쪽 송년회에는 폭탄주가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폭탄주란 맥주에 소주나 외제 양주를 섞어 마시는 것인데, 맛이 괜찮습니다. 북에선 맥주, 소주 이렇게 다 같이 놓고 마시는 사람은 간부들이나 가능하겠죠. 폭탄주 좋아하는 대표적 북한 간부를 꼽자면 아마 장성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장성택이 2002년에 한국에 경제시찰단으로 왔을 때 발렌타인 30년산이라고 한 병에 천 딸라가 넘는 양주에 맥주를 섞어서 연거푸 폭탄주를 만들어 먹고는 “룸살롱에 가자” 이래서 놀란 적이 있습니다. 북한 사람이 폭탄주 퍼마시는 것도 놀라운데, 여자들이 야하게 입고 남자 곁에 붙어서 “오빠, 아잉 아잉”하며 애교떠는 룸살롱에 가자 하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장성택이 돌아갈 땐 남쪽 여성 빤쯔와 가슴띠가 질이 좋단 말을 들었는지 수천 개를 사 갔는데 무게만 1톤이 넘어서 비행기가 못 뜬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죠. 장성택이 그거 집에 쌓아 두진 않았겠죠. 중앙당 간부 마누라들 그 빤쯔 지금도 입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지도부는 이렇게 살면서 여러분들에게만 혁명적으로 살라 강요합니다.
2004년에 장성택이 혁명화 간 적이 있죠. 2005년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특사로 평양 가서 장 부장이 잘 있는가고 묻자 김정일이 “남쪽에 가서 폭탄주도 배우고 해서 아파서 쉬게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북한이 남쪽을 쳐들어올 수 없는 이유가 “골목마다 대포집이 있고, 간판에 부대찌개가 너무 많고, 술집에 폭탄주가 넘치고, 집집마다 핵가족이기 때문이다”라는 유머도 있습니다. 대포집은 술 마시는 식당이고, 부대찌개는 햄이랑 라면이랑 넣고 끓인 음식이고, 핵가족은 부모 모시지 않는 식구 작은 가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폭탄주는 앞서 설명했고요. 그만큼 한국엔 대포집, 부대찌개, 핵가족, 폭탄주가 너무 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남쪽의 송년회는 폭탄주와 더불어 이젠 다 끝나고, 이제부턴 며칠 동안 북에서 송년회를 할 차례네요. 올 송년회 여러분들, 아무쪼록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