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한 마음으로 그려보는 고향

얼마 전, 홍천군과 인접인 강원도 인제로 캠프를 다녀왔습니다. 서울에서 12시에 모여 4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강원도 인제군 가하리에 도착해, 다시 도보로 약 50분 동안 산을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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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하나 없는 산골에는 맑은 물 흐르는 소리와 매미 소리만이 들렸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어둡기 전에 회장님의 명령에 따라 숙영준비를 했습니다. 개개인 천막을 치게 되었는데, 군 생활 경험이 있는 저였지만 조금 어려워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는 우등불 주변에 모여 앉아 합심기도를 했습니다. 개인들이 기도 제목을 내놓으면 모든 사람이 그 소원을 들어달라고 함께 기도를 해주는 것이 합심 기도입니다.

제 기도는 간단했습니다.

도착 하자 너무 더워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뛰어들었는데 그만 발가락에 쥐가 일기 시작해서 한 시간이 지나도록 그치지 않아, 발을 좀 덜 아프게 해달라는 것과 신장 결석으로 고생을 하는 큰 딸이 건강해 지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동료들이 한 목소리로 기도를 한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정말 거짓말처럼 제 발가락의 통증이 가셨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기타의 선율에 맞추어 우리가 부르는 찬양가가 한적한 야밤에 온 산에 울려 퍼지듯 했습니다. 이렇게 노래를 따라 부르는 제 마음은 남달랐습니다.

우리가 찬양가를 부르고 있는 강원도 인제군 가하리의 맞은편 뒷산이 북한 강원도 금강군 이포리라는 곳이랍니다. 그러니까 북한에서 말하면 전연근방에 가있다는 얘깁니다. 고향을 지척에 두고 조용한 곳에서 우리가 함께 부르는 찬양이 마치 고향 땅에도 들릴 것만 같았습니다.

마침, 금강군 이포리에서 군 생활을 한 친구가 있어 그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는 서로서로 고향 얘기를 했습니다. 동료들은 저와 같이 대부분이 북쪽이 고향한 탈북자들이고, 고향땅을 지척에 두고는 저마다 고향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웬일인지 힘들었던 시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군 생활 20키로 그람이나 되는 배낭을 메고 무장 강행군을 하며 땀을 철철 흘리면서도 뒤 떨어진 병사들을 위해 정치 선동사업을 했었고,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중국을 떠나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거쳐 이곳 남한으로 오기까지 무더위 속에서 힘들어 지쳐가는 아이들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캄캄한 밤에 높은 산을 넘어야 했고 산에서 내려 갈 때에는 큰 바위 돌에 걸려 넘어지면 일어나고 또 넘어지면 일어나고 하면서 긴장한 환경 속에서 힘든 줄 모르고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의 지휘를 받으며 걷고 또 걸었습니다.

베트남에서 캄보디아로 넘어가는 길 또한 험난했습니다. 넓은 강물 위에 작고 긴 쪽배를 타야 했고 진펄에 빠져 신발이 벗어지고 맨발로 7시간을 가시밭길과 모래밭 길, 오솔길을 걷고 좁은 논두렁 위도 걸어야 했습니다.

맨발이라 발이 아파 걷지 못하겠다고, 땀범벅이 된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이 뒤에서 채찍질해야 했고, 저도 역시 힘들었지만 아이들 앞에서 힘들다는 말 한 마디, 힘들다는 표현 한번 하지 못했습니다. 이곳 남한에 와서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엄마는 여자보다 강하다'는 광고 글발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러나 계곡물에 발 한번 담그고는 발에 쥐가 나고... 이제 나이는 어쩔 수가 없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새벽 4시가 되어서야 개개인 천막 속에 들어가 몸을 뉘었습니다. 저는 3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 산책을 나갔습니다. 며칠 전에 비가 많이 내린 터이라 계곡에는 맑은 물이 철철 넘쳐흘렀고 얼음물처럼 차가운 계곡 물에 세수를 하고 머리도 감으니, 나쁜 기운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듯 정신이 확 들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간단한 유희 시간이 있었고 다시 산길을 내려와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밤, 산에서 있었던 우리들의 협심 기도. 다들 말은 안 했지만 어두운 밤에 잘 보이지도 않는 고향 땅을 바라보며 아마 같은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 가족이 있는 그 땅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한여름 밤 계곡의 물처럼 우리의 소원도 시원하게 이뤄질 날을 그려보며,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