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상견례하는 날

화창했던 지난 주말, 벌써 여름이 온 것처럼 날씨가 더웠습니다. 작은 딸의 혼사를 앞두고, 사돈을 만나는 날이라 저는 아침 일찍 서둘러 남편과 함께 평택으로 갔습니다. 몸은 이제 막 집 현관을 나섰는데, 마음은 벌써 평택으로 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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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게 되는 안사돈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마음은 푸근하고 인정 많아 보이는 사람이면 좋겠는데... 바깥사돈은 어떤 모습일까? 옛날 속담에 며느리는 시아버지 며느리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딸애를 예쁘게 봐줄 수 있는 넉넉하고 든든하고 인정이 많은 분이면 좋겠는데... 상견례를 앞두고 별의별 생각들이 머릿속을 꽉 채웠습니다.

맏딸을 시집보낼 때에는 사위가 막내이다 보니 안사돈의 나이가 저의 친정어머니와 비슷해 편안하기도 했고, 지금 생각해 보면 바깥사돈이 안 계셔 더 편안했었던 것 같습니다.

평택에 자주 가긴 했으나 전철을 타고 가는 것은 오랜만이었는데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대형 백화점도 생겼고 역 건물도 아주 크고 웅장하게 다시 지었고 역전 공원도 아주 화려하게 꾸며 놓았습니다. 평택역에는 벌써 큰딸 아이 내외가 마중을 나와 있어, 차를 타고 미리 예약해놓은 오리 식당으로 갔습니다. 이 식당은 제가 큰 사위와 자주 갔던 곳이라 식당 사장님이 여러 가지 편의를 잘 봐줍니다.

이곳 남한에서는 혼사를 앞두고 사돈끼리 처음 만나는 일을 '상견례'라고 부르는데, 주로 조용한 한식점으로 많이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격식을 차리고 딱딱한 분위기보다는 새로운 방식으로 편안하게 만나보자는 의미에서 자주 가는 식당을 찾았습니다.

사돈들을 만나기 전, 저는 남편을 뭐라 소개할까 조금 걱정을 했는데 작은 딸은 사돈들에게 아무 망설임 없이 '아버지'라고 소개해줬습니다. 순간, 가슴이 뭉클하는 느낌이 들어 딸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봤습니다. 대견해 보이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고 한편으로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상견례가 끝난 다음, 저는 맏사위가 그냥 집에 들어가 한 잔 더 하고 가라는 말에 큰딸 집으로 손녀를 안고 들어가다, 날도 좋은데 무슨 집이냐 하면서 아산만으로 달렸습니다. 바다도 구경할 겸 또 요즘 숭어회를 먹는 시기라고 해 숭어회도 먹었습니다.

금방 밀물이 나간 뒤라 무연한 갯벌을 바라보며 저는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습니다. 양쪽 사돈과 친지들이 다 함께 얼굴을 보는 이런 자리는 북쪽으로 치면 '약혼식'인데 우리 가족이 아직도 북한에 있었다면 아이들의 약혼식을 식당에서 음식을 차려 놓고 해보았을까?

북한에서는 지방마다 약혼식도 조금씩 다르지만 고향에선 신랑 측에서 부모님과 삼촌 등 아주 가까운 친척이나 형제가 신부 집으로 간단한 화장품을 비롯한 선물을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함북도 무산 쪽에서는 신랑 집에서 모든 음식을 마련해 가지고 신부네 집에 가 부엌 그릇을 빌려 쓰는 격이 된답니다.

1990년도 중반에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배급이 중단 되자 저는 우리 아이들이 시집 갈 때 해 주려고 마련해 놓았던 솜과 중국 이불을 모두 장마당에 내다 팔아 식량을 샀습니다. 지금도 부족한 것이 많은 고향의 어머니들은 아이들 장가, 시집가는 일이 혼수 때문에 한편으로 걱정이 앞설 겁니다.

큰딸 아이가 엄마를 불러 식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넓은 갯벌을 바라보면서 숭어회에 약주 한잔 하니 체했던 것이 쑥 내려가듯이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남편과 사위들이 한 마음 하나가 돼 잘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저는 넓은 갯벌을 향해 다시 한 번 소리 높이 외치고 싶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이런 행복이 너무 감사하다고 말입니다.

서운한 점은 고향에 있는 형제들과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이런 좋은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서해 앞바다에서 외친 제 목소리의 메아리가 울려 내 고향 평양에 있는 형제들이 다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계시는 부모님 그리고 아이들 아버지, 부디 우리 아이들을 굽어 보살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