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생각, 평양 생각] 설날 고향 생각

1월 26일은 음력설입니다. 이곳 남한에서는 1년 중 가장 큰 명절이 추석과 음력설, 구정이랍니다. 오늘도 서울 시민은 고향을 찾아 자동차, 기차를 타고 사랑하는 가족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향을 가는 많은 사람을 볼 때마다 탈북자들의 마음은 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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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이 돼야 저 대열에 밝은 모습으로 서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 고향 생각은 명절 때마다 저를 서글프게 하지만 사랑하는 딸과 아들, 사위, 예쁜 손녀를 생각하면 다시 웃을 수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저는 설에 무슨 음식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잠을 설쳤습니다. 재혼하고 처음 맞는 설이라 저는 친정을 찾아오는 큰딸과 사위, 손녀에게 특별한 음식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소갈비를 사다가 갈비찜을 하기로 했고 만두도 고향 식으로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고향에서도 명절마다 빠지지 않던 콩나물과 고사리나물. 그리고 이곳 남한 사람들이 설이면 먹는 떡국을 끓여보려고 떡국대도 샀습니다.

시장에서 사 온 노랗게 잘 자란 콩나물과 두부, 소고기를 꺼내 놓고는 저는 고향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쯤이면 인민반에서 집체적으로 콩나물을 길러 인민반 주민들에게 식구별로 나눠주었을 것이고 두부도 가져다가 식구별로 칼로 쪼개어 나눠 줬을 겁니다. 이곳 남한에서는 흔하디흔한 것이 콩나물이건만 이것도 부족해서 마음껏 먹어 보지 못했던 내 고향.

또 북한에서는 구경도 하기 어려운 소고기. 소갈비 찜은 고향에선 먹고 죽으려고 해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음식이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설날 떡국은 소고기로 국물을 냅니다. 저도 떡국을 끓일 때는 소고기를 조금 넣고는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돼지고기 삶은 국물에 만둣국을 끓여 밥을 말아 김치와 함께 먹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북한에서는 설 명절 하면, 돼지고깃국과 만둣국, 생편과 꼬리떡을 먹는데요, 남쪽이 재료는 고급이지만 맛은 고향 음식의 별맛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설 준비를 하는 며칠 동안 저는 자꾸자꾸 떠오르는 고향 생각에 혼자 실실 웃기도 했고 눈물도 찔끔거렸습니다. 고향 어딘가에 묻혀 계실 부모님과 동생들이 그리웠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명절 즈음이면 북쪽 고향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합니다. 아마도 철이 들어가는 우리 아이들도 마음이 착잡해지는가봅니다. 저는 처음 이곳 남한에 와서는 남북 간의 너무도 큰 현실의 차이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죽을 것처럼 힘들었던 고향에서의 살아왔던 추억을 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도 했지만, 내가 자란 고향을 잊기가 쉽던가요? 나이가 들면 더 고향이 그립기 마련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지는 명절 때라도 저는 설 명절을 은근히 기다립니다. 마치 아이들처럼 "이번 설엔 세뱃돈을 얼마나 주려나?"하고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제 손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고, 아이들은 명절 때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저에게 세뱃돈을 줬습니다. 액수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아이들이 이렇게 컸다는 것이 대견스러운 것이지요.

남쪽에 온 지 6년째. 처음에 4명이던 우리 가족이 이제 7명입니다. 첫 사위가 들어오고 손녀가 태어나더니 이제 제가 재혼을 했습니다. 둘째 딸과 막내아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이제 우리는 가족 구성원은 10명이 넘는 그야말로 대가족입니다. 달랑 이 땅에 4명이던 우리 가족이 말입니다.

북녘 하늘을 바라보면 하늘나라에 계시는 친정 부모님과 시어머님, 그리고 언니와 동생들을 그려봅니다. 우리 모두 함께 모일 수 있다면, 그때는 큰 식당을 하나 임대해도 모자를 것 같네요. 설날 같은 명절은 잔치가 따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때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해서 모두 함께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음식을 가득 차려보렵니다.

설날 아침, 우리 가족과 고향 땅, 모든 주민의 안녕을 빌며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