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면, 자원봉사자들이나 구청에서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 등 어려운 이웃을 찾아 구멍탄도 실어 주고 난방 시설도 점검을 해줍니다. 어제 텔레비전에도, 노란 띠를 어깨에 두른 자원 봉사자들과 학생들이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다니며 사랑의 구멍탄을 실어다 주는 모습을 봤습니다. 몇 십 명이 쭉 일렬로 서서 구멍탄을 몇 백 장씩을 옮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모습들을 보면 눈시울이 찡해져 옵니다. 2월16일, 4월 15일 작은 사탕 과자 봉지 하나 손에 들고 사랑의 선물을 받았다고 흘렸던 그런 눈물과는 다른 감사의 눈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터넷기사와 TV뉴스에서 북한이 올해 석탄 생산 120% 초과 완수 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북한은 해마다 방송과 텔레비전에서 식량생산도 100% 초과완수요 석탄도 120%초과 완수요, 방직 공업에서도 100% 초과 완수요 하는 선전 사업을 많이 합니다.
저도 고향에 있을 때에는 이 말들을 진실로 믿었습니다. 해마다 100% 초과 완수한다고 하는 데 왜 인민생활은 점점 열악한지, 의문을 가지기도 했었지만 모든 것이 남북이 갈라져 있는 조건에서 전쟁준비에 들어가는 것이 응당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때늦은 감은 있으나, 저는 이곳 남한에 와서야 제 의문에 해답을 찾았습니다. 해마다 탄광노동자들이 캐는 석탄은 중국 등 외국으로 수출하여 외화를 벌어들이고, 이 외화는 김정일 위원장의 개인주머니에 당 자금이요 뭐요 하면서 들어간다는 것을 말입니다. 평양시 일반 주민들은 이 추운 겨울, 석탄을 비롯한 연료를 공급해 주지 않으면 겨울을 지낼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원래 석탄 공급규정에는 한 세대에 구멍탄 70덩이로 돼 있으나 1980년 중반부터는 점점 줄어들어 1990년 초부터는 일 년 가야 김정일 생일과 김일성이 생일에만 한 세대에 30-40덩이. 그 나마도 버럭 탄으로 빚은 구멍탄을 공급해줬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파트 난방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아예 없어 졌습니다. 새로 건설된 평양 동화력 발전소는 아예 돌아가지도 못했고 평양 화력 발전소도 멎은 상태였습니다. 하여 평양시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추운 냉방에서 사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오늘은 이집에서 석탄을 잊어버렸고 내일은 저 집에서 석탄이 없어졌다는 소문이 수습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많아졌습니다. 누가 훔치고 누가 빼앗겼는지 나중에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저에게도 이런 기억이 있습니다. 제일 추운 1,2월에 아궁에 땔 것이 없어 남 다 자는 야밤에 몰래 일어나 남에 집 구멍탄을 훔친 적도 있었습니다. 너무 추워 온 식구가 한 이불 속에서 옷이란 옷은 다 껴입고 신발도 신고 장갑까지 끼었지만 손발이 시리다고 아이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었습니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 날 때마다 허리에서 우직우직 소리가 다 날 정도로 온 몸이 쑤시고 아팠고 문풍지를 해놓고도 추워 창문과 문에 담요를 치고 한해 겨울을 보냈습니다.
이곳 남한에 와서,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다들 옛날이야기 같고 전설 같은 이야기라는 말을 합니다.
지금 와 생각하면 먼 옛날의 일이었던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이곳에서도 그 추웠던 겨울을 한시도 잊은 적은 없습니다.
아침마다 따스한 물로 쌀을 씻고 설거지를 하고 매일 저녁 따스한 물로 목욕을 하면서도 항상 지난 고향에서의 그 생활을 잊은 적은 없습니다. 사실 잊을 수 없는 거지요...
아이들은 가끔 농을 합니다. 북한에서 나름대로 냉한 훈련을 잘 해 왔기 때문에 이곳 남한 사람들보다 추위를 덜 탄다고 말입니다. 서로 웃으면 얘기하지만, 그 때의 그 추운 겨울의 기억은 어떻게 생각해도,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웃으며 얘기 거리는 되지 못합니다.
아파트 창문에 서니,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바람에 날려 가는 모습이 추워 보입니다. 제가 어제 텔레비전에 본 노란 띠를 두른 자원봉사들이 내 고향에까지 한 줄로 쭉 서서 구멍탄을 날라다줬으면 하는 생각을 한번 해봤습니다. 아무쪼록 이번 겨울 무사히 보내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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