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생각 평양 생각] 봄날의 로켓 발사

2009-04-13

봄이 깊어 갑니다. 여의도에는 활짝 핀 벚꽃을 보러 서울 시민 절반은 모여든 것 같고 연일 따뜻하고 화창한 봄 날씨에 사람들 기분이 더 좋아 보입니다. 5일 날아든 북한의 로켓 발사 소식도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진 못한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조선일보 신문에 ‘북한 로켓 뒤엔 힘겨운 인민의 삶’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 옆의 사진엔 노을이 지는 저녁, 굴뚝에서 나오는 뽀얀 연기 속에서 어느 여인이 물통을 지고 터벅터벅 힘없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보는 순간 저는 마음이 너무도 아파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함께 신문에 난 사진을 들여다보던 친구도 마음이 아팠는지 한마디 거들고 나섭니다. 친구는 며칠 전 밤에 고향에 있는 동생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동생이 “지금 미사일 발사를 오늘내일 한다고 야단인데 가마솥에 넣고 끓일 아무것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우린 무얼 먹고 산단 말인가”하고 걱정을 하더랍니다.

동생은 웃으면서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바엔 실컷 먹고 죽으면 원이 없겠다”는 말도 했다는데, 이 말은 남쪽에선 우스갯소리지만, 북쪽에선 진심이 담긴 말입니다. 이렇게 먹는 데 한이 맺혀 살고 있습니다.

친구는 동생에게 한국 돈 100만 원을 보내 주었는데, 처음엔 그 100만 원이 작다고 하더니 북한 돈으로 바꾸고 나서는 250만 원이 넘는다며 이렇게 많은 돈인 줄 모르고 서운한 마음을 표현했다고 미안하다는 말도 했답니다.

저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더더욱 물을 길어서 털썩털썩 걸어가는 이름 모를 그 여인의 마음이 확 와 닿았습니다. 이 여인의 허탈한 뒷모습은 바로 지난날 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한창 고난의 행군시기 아침, 저녁 인민반의 집집마다 들어가 가마솥 뚜껑을 열어 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 보면 언제 밥을 지어 봤는지 반들반들하게 닦아 놓은 집이 있는가 하면 시래기죽을 끓여 금방 먹으려고 밥상에 빙 둘러앉아 있는 집도 있었고 끓일 것이 없어 가마솥 옆에 쭈그리고 앉아 길게 한숨만 쉬고 앉아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날마다 검열을 해서 동 사무소의 당 조직과 행정에 보고하는 제 마음도 아팠습니다. 그래도 한 달에 하루 이틀 중국에서 들여온 강냉이 가루와 껍데기도 벗기지 않은 통수수 배급을 받아도 장군님의 은덕이라고 감사하였고 정말 배고플 때는 전쟁 준비에 들어가는 돈을 인민 생활에 조금만 풀어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굶주림과 배고픔에 시달린 주민들은 노골적으로 이렇게 살 바엔 콱 전쟁이라도 났으면 죽는 사람은 죽고, 사는 사람은 살고. 이렇게 세상이 뒤집어 지면 무슨 도리가 있겠지…하는 말도 스스럼없이 내뱉었습니다.

저는 그때 정말 너무도 세상을 몰랐기에 정말 남한과 미국이 북한을 침략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는 줄로 알았습니다. 이곳에 와서야 그 진실을 알았습니다.

미국이나 이곳 남한은 결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 북조선만이 혼자 전쟁 준비를 하고 전쟁의 위협을 날조해 주민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루 세끼 굶지 않고 흰 쌀밥에 고깃국에 먹고 쓰고 입고 땔 걱정 없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하는 인민들의 소박한 소원 하나 풀어 주지 못하면서 ‘핵개발이요, 미사일 발사요’ 하면서 왜 그 많은 달러를 소비하고 있는지.

지금 이 시각도 백성은 먹고살려고, 작은 목숨 하나 유지하기 위해, 말 모르는 타향에서 갖은 수모와 멸시를 받으며 국제 고아로 국제 꽃제비로 헤매고 있는데, 몇 달을 헤아려도 다 헤아릴 수 없는 막대한 돈을 개인의 사치와 필요 없는 전쟁 준비에 마구 탕진하고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런 시끄러운 정세 속에서도 서울 여의도의 벚꽃은 활짝 피었고 날씨는 무심할 정도로 화창하지만,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는 북한 당국의 자화자찬 속에 남쪽의 탈북자들은 속이 터집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시끄럽고 위태로워도 언젠가는 남북이 함께 이 화창한 봄 날씨를 아무런 걱정 없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고향 땅에 사는 많은 사람을 위해 그날이 멀지 않았다고, 그렇게 굳게 믿어 봅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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