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저는 이제 다음 날이면 결혼을 해서 남의 집 식구가 될 딸과 함께 추억을 만들고 싶어 어딘가 놀러 가자고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두 팀으로 나눠서 차를 타고 평택과 아산 사이에 위치한 평택호 관광지를 찾았습니다.
평택호는 평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주말이면 가족들과 연인들이 함께 관광하기 좋은 곳이고, 또 어린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놀이터와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족구장과 농구를 할 수 있는 농구장도 있고, 자동차를 타고 야외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자동차 극장'도 있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평택 호에는 보트장도 있고, 예술관과 그 주변으로 각종 예술 작품과 잔디공원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좋은 경관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먹을거리를 꺼내 놓았습니다. 다른 가족들은 돼지고기 삼겹살도 구어 먹고 있는데 우리는 갑자기 나선 터라 준비한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무더운 여름 날씨였는데 호수 한가운데서 치솟는 분수와 인공폭포를 보고 있노라니 더위가 조금 가신 듯 했습니다. 저는 손녀를 안고 다른 사람들 속에 끼어 분수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조금 무서워하는 손녀를 꼭 안고 많은 어린이들과 함께 어울리다 보니 마치 제가 어린 소녀가 된 것 같았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 보트를 타고 즐거워하는 둘째 딸의 모습을 보며 힘들었던 지난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에서의 타향살이 6년이 나에게는 한없이 길었던 그 시절, 어린 딸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던가?'
함북도의 그 추운 밤, 고등학교를 채 졸업하지 못한 딸의 손목을 잡고 두만강을 건널 때 발바닥에서 피를 흘리며 더는 걷지 못하겠다고 주저앉는 딸을 때리면서 데려왔던 일이 바로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생각났습니다.
과거의 아픈 기억들은 왜 좋은 일만 있으면 생생하게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남한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우리 가족의 지난 세월은 잊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인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 이름도 모르는 남의 집에 들어가 흰 쌀밥을 보고 평양에 두고 온 동생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던 둘째 딸이 이제 어엿한 가정을 이루고 앞으로 아들, 딸 낳고 살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뿌듯합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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