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평양생각]손녀 돌잔치서 느낀 행복

작은 손녀가 세상에 태어난 뒤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겨우 한발 자국 두발 자국 걸음마를 뛰며, “엄마!”, “아빠!” 하고 어눌한 말을 하며 재롱을 부리는 손녀의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우리 세 아이를 키우던 추억이 새삼스레 떠오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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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가림을 하는 손녀를 품에 안을 때마다 저는 할머니라는 실감이 도무지 나지 않습니다. 작년 9월17일 손녀가 딸의 배속에서 울음소리를 내며 밝은 세상에 태어났을 때 저는 왠지 모를 눈물이 볼 아래로 주르륵 흘러 내렸답니다. '벌써 할머니가 되었구나! 세월 따라 늙어가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구나!' 하는 탄식의 눈물인 듯했습니다.

저녁마다 텔레비전 앞에 놓은 손녀의 사진을 보긴 하지만 항상 보고 싶어서 한 달에 두 번씩 딸집을 다녀오곤 합니다.

얼마 전에 어떤 대학생이 전철 안에서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하고 자리를 양보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둘째 딸이 "저의 어머니 아직 할머니가 아니거든요" 라고 말해 웃은 적이 있습니다. 비록 저도 웃었지만, 조금은 서운했습니다. 옛말에 '본인이 아이를 키우는 모습보다 두벌 아이가 더 이쁘다'는 말이 있는데, 저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저는 내 일생에 처음으로 맞은 손녀고, 이곳 남한에 와서 처음으로 받은 귀한 선물을 나에게 안겨준 딸이 고마워 항상 건강하고 자라라는 의미에서 태어나기 전에 벌써 '건'이라고 이름을 지워 주었고 태어난 뒤에는 한자 풀이를 잘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한자로 풀고 또 풀어서 좋다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 엄마, 아빠의 사랑과 이모, 삼촌과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고 있는 손녀가 오늘은 첫 돌이 되었습니다. 평택의 어느 한 큰 식당에서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은 손녀의 첫 생일은 정말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핑크색 한복에 모자까지 곱게 쓴 손녀를 무릎에 앉히고, 사진사가 사진을 찍는 순간, 반짝하는 파란 불빛과 함께 또 한 번 기쁨의 눈물이 저의 볼로 흘러내리면서 옛날 일이 떠올랐습니다.

손녀를 안겨준 이 딸이 태어난 29년 전 9월, 이 날이었습니다. 한 주일 동안의 진통을 앓으면서도 엄마가 된다는 기쁨으로 또 이제 금방 태어날 아기를 위해 좋은 인상과 마음가짐으로 오랜 고통을 참으며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아픔을 참아냈습니다.

손녀가 태어난 날에도 아마 그런 의미에서 눈물이 저도 모르게 나왔을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제 딸이 태어난 날자와 손녀가 태어난 날자가 그렇게도 꼭 같은지.... 한 가족에 생일이 꼭 같은 달에 세 명이 되면 만복이 내려진다고 했는데 정말 저의 가정에 만복이 깃들려나 봅니다.

북한에서 아이들을 키울 때, 아이들이 "엄마! 왜 우리는 남들처럼 첫 돌 사진이 없는가?" 할 때는 뭐라 답변을 해 주지 못했습니다. 해주고 싶어도 없어서 못해 주었고, 딸이라고 더 못해 주었던 것이 한없이 미안해서 지금 저는 손녀에게는 제일 좋은 것으로만 선물을 해줍니다.

그러다보니 한번은 둘째 딸이 이런 질투의 말을 했습니다. "내가 시집을 가서 아기를 낳으면 시연이 에게 하는 것처럼 해 줄 거예요" 라고 말입니다. 하여 우리 가족은 또 한 번의 행복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손녀 시연의 돌 사진을 찍은 다음 예약해 놓은 식당으로 옮겨 손님을 맞았습니다. 아주 큰 식당이었지만, 우리 가족과 우리 손님밖에 없었습니다. 첫 돌 상은 소박하면서도 황홀했습니다. 아기 사진을 크게 플래카드에 뽑아 벽에 걸고, 촛불과 풍선으로 온 방을 꾸몄습니다. 북한에서는 고위급 장관들만이 참석할 수 있을 만한 화려한 연회 상이었습니다.

사회자의 진행으로 돌잔치가 시작됐고, 손녀는 청진기를 손에 쥐었습니다. 돌쟁이 딸이 손에 돈과 연필을 쥐었으면 하는 엄마, 아빠의 바람을 알아챘는지 사회자가 손녀에게 한 번 더 물건을 쥐게 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손녀는 한참을 내려다보더니, 이번에도 또 청진기만 쥐고 픽 돌아앉아 주위가 큰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지 이제 겨우 1년이 된 우리 손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가 자유의 땅, 이곳 남한에서 건강하게 자라주기를 기원하며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