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동대문 시장에서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09-10-21
어느 덧 10월의 가을 날씨도 깊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꽤 쌀쌀합니다.
날씨가 바뀌면 왜 옷 걱정이 생기는지... 얼마 전에 저는 가을 옷 한 벌 구입할까 하고
친구 영숙이와 함께 동대문 시장을 다녀왔습니다.
집에서 동대문 시장까지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약 40분 걸립니다.
주말이라 낮에는 집에서 서로 각자 할 일을 하고 저녁에 갔습니다.
동대문운동장역에 도착해 보니 번쩍번쩍 화려한 네온사인과 경쾌한 음악소리,
그리고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고 우리는 덩달아 신이 났습니다.
“골라, 골라” 박수소리에 맞춰 리듬을 타는 듯한 장사꾼 아저씨의 익숙한 골라타령에
이끌려 한 무더기씩 쌓아놓은 신발이며 옷들을 골라잡을 때 마음은 어느덧
부자가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리저리 손에 잡혀진 물건 중에는 가격이 쌌지만 꽤 괜찮은 것도 많이 있었습니다.
값비싼 백화점 물건과는 비교도 안 되겠지만 우리 아줌마들에게는 동대문 쇼핑도 하나의
큰 사치였습니다. 저는 봉급도 탔고 해서 그전 같으면 밖에서 파는 옷더미 속에서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겠지만, 그 날만은 좀 더 좋은 것을 사기 위해 쇼핑몰로 영숙이를 이끌고
들어갔습니다.
정말 알록달록, 가지각색의 다양한 옷들이 많았는데 이 옷도 예쁘고, 저 옷도 예쁘고
우리 아줌마들에게는 너무도 희한 옷들도 많았습니다. 조금만 나이가 젊었어도
저런 예쁜 옷들을 한번씩 다 입어 볼 텐데.....하면서 우리는 아쉬워했습니다.
남대문 시장이나 동대문 시장에 갈 때 마다 갖는 심정이랍니다.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아래층, 위층 할 것 없이 모두 구경하며 돌아다녔습니다.
바지를 사고 나면 면티가 사고 싶고, 면티를 사면 이번엔 치마가 사고 싶고…
물건을 담은 쇼핑백을 주섬주섬 쥐면서 우리는 서로 너무 많이 산다면서 그만 사자고
충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나, 둘씩 사다 보니 이제는 지갑에 돈도 얼마 안남은
듯했습니다. 마지막으로 1층으로 내려와 아기 옷을 파는 데로 갔습니다.
쇼핑할 때마다 항상 손녀 옷은 빠지지 않습니다. 영숙이도 덩달아 ‘이 옷이 예쁘다는 둥 저 옷이 예쁘다는 둥’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 날 저는 손녀의 겨울옷을 두 벌 구입했습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발이 아파서 못 걷겠다며 돌아섰습니다.
그런데 금방 제 곁에서 수다를 떨던 영숙이가 없어졌습니다.
나는 출입구마다 헤매며 이름을 크게 부르기도 하고 손전화기로 전화도 했는데 받지도 않았습니다. 영숙이는 나보다 길눈이 어두워 한두 번 갔던 길은 찾지 못하기에
저는 더 속이 탔습니다.
아무리 찾고 찾아도 영숙이는 좀처럼 보이지가 않았고, 온몸에 기운이 다 빠진 것 같아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고 있었는데. 문뜩 생각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쇼핑몰에도 공개 방송실이 있기에 저는 방송실로 가서 안내원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방송을 하고 봤더니 아이를 잔등에 업고 찾는다는 속담 그대로
영숙이는 옆 가게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다고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뭐니 뭐니 해도 손녀의 옷을 잘 샀다는 영숙이의 말에 저는 어린 아이처럼 또 하나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지난 주말에도 둘째 딸의
해산 준비로 애기 옷과 띠와 이불을 사주었다고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북한에 있었다면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미리 준비나
할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저는 새로운 손자를 맞이하게 됩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