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생각, 평양 생각] ‘수확의 계절’ 가을에도 냉이 뜯어 연명한 기억이...

한반도는 올해 풍년입니다. 남한에서는 과일 값이 떨어질 정도로 풍년입니다. 북한도 들녘에 벼가 잘 익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풍년 소식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식량난은 여전할 것으로 관측된다는 것이 국제기구들의 조사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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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김춘애씨는 풍요의 계절 가을을 맞으면서 북한의 식량난으로 벌어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개탄합니다.

저는 얼마전에 인터넷에 올려져 있는 수많은 글 중에 이런 글을 보고 세 자식을 둔 엄마로서 남의 일 같지가 않아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났습니다.

집 없고 부모 잃은 꽃제비 아이들이 너무 배가 고파 주인 모르게 남의 집에 밥을 채 먹으러 들어갔다가 주인아저씨에게 잡혀서 방망이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약 한 첩 써보지 못하고 누구의 관심과 보호도 받아 보지 못하고 아파트 뒤 골목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도 혜산역 앞에는 음식을 채 먹다가 얻어맞아 손발이 터지고, 다리를 절뚝거리거나 외상이 심해도 치료를 받지 못해 감염된 아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달리는 군인 차에 옥수수 마대를 훔치려 매 달렸다가 떨어져 차바퀴에 치어 두 다리를 잃었다는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었습니다.

청진시 청암 구역의 수산사업소 마당에서는 경비원의 총에 맞아 쓰러지면서도 손에 꼭 쥔 옥수수를 놓지 않았다고 쓴 글을 보며 저는 쏟아져 내리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북한 현실을 너무도 잘 아는 우리 탈북자들에게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저에게도 부모의 슬하를 떠나 6년이란 길고도 긴 세월, 이와 똑같은 곡절을 겪은 자식이 있고, 이미 1990년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흔히 보아왔던 모습들이었습니다.

한창 햇곡식이 나와야 할 풍년의 가을이건만, 식량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현실과 부모님의 품속에서 보호를 받으며 자라야 할 어린 우리 북한 어린이들이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주인 모르게 밥을 훔쳐 먹거나 옥수수 한 이삭 때문에 달리는 차에 매달렸다가 두 다리를 잃어야 했고 옥수수 몇 이삭과 자기 목숨과 바꾸지 않으면 안됐을까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가을바람에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낙엽을 볼 때마다 출퇴근을 하며 길거리 주변에 누렇게 마른 풀 잎을 볼 때마다 저는 고향 주민들이 걱정이 됩니다.

새싹이 금방 돋아나는 봄과 여름에는 낯익은 들나물과 풀을 보며 저 풀은 냉이와 길장구이고, 저 풀은 능쟁이와 비듬인데 하고 스쳐 지나다녔는데 요즘은 길거리에 누렇게 말라 스러져 있는 풀을 보면 저 풀이 다 마르면 내 고향 주민들은 어떻게 사나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납니다.

1990년 중반부터 북한 주민들은 부족한 식량과 채소 대용으로 산과 들판의 풀을 많이 뜯어먹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월 단오 전에는 풀에 독이 없다고 해서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북한에서는 단오 전만이 아니라, 봄, 여름, 가을 할 것 없이 부녀자이든 노약자이든 심지어 어린 아이들까지도 야생풀 채집에 내 몰리고 있고 식량난이 덜한 곳으로 아이들을 떠나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벌써 가족의 생계를 위해 대부분의 여성들이 직장과 직업을 잃었고, 가족의 가장인 남자들도 직장을 버리고 행방을 다니고 있습니다. 10월, 지금쯤이면 농장 강냉이 밭 옆이나 길거리와 개울가에 남은 가을 냉이를 뜯느라 말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이곳 남한 사람들은 가을 냉이와 민들레 사라 귀 하면 무슨 말인지도 모를 듯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이 세상 모든 풀을 모조리 뜯어 강냉이 가루 한줌에 섞어 시퍼런 풀죽으로 연명을 해 왔습니다. 능쟁이 독으로 퉁퉁 부어 앞도 못 보는 11살 어린 아들과 집단 체조에 동원됐던 딸이 퉁퉁 부어 친구의 잔등에 업혀들어 오는 순간, 엄마의 심정은 정말 무엇이라 표현 할 수 없이 그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 했습니다.

동평양 피부성병원에서 한 여름철에 쑥을 너무 많이 먹어 퉁퉁 부었다가 내리면서 코 한쪽 절반이 문질러 없어진 모습을 보고도 누구 하나 불쌍히 여겨 동정의 말 한마디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주민들의 생활 처지가 똑같으니 누구를 동정해 주고 누구를 불쌍히 생각해 줄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북한 주민들은 고유한 우리 선조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넘쳐흐르던 인정미마저 독재자에게 깡그리 빼앗겼습니다. 장차 미래의 주인이 될 어린 꽃망울들이 작은 배를 움켜쥐고 굶어 죽고 총에 맞아 죽고 몽둥이에 맞아 죽고 있는데 북한 당국은 군대 굶주리는 것만 신경 쓰면서 중국과 외국에서 들어오는 식량을 우선 군부에 공급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전쟁 미치광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지시를 내릴 수 있단 말입니까?

북한과 비교도 안되는 풍요로움 속에서 부모들의 사랑을 받으며 티없이 자라고 있는 이곳 남한의 어린이들을 바라보면, 언제이면 내 고향 북한 어린이들도 저런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부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