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생각, 평양 생각]기계화된 남한의 가을걷이
김춘애
2008-10-27
지난 주말, 저는 서울에 왔다가 지방의 집으로 돌아가는
큰딸을 따라 나섰습니다.
혼자 아이까지 데리고 돌아가는 큰 딸애가 힘들어 보이기도 했고,
핑계 김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와 좀 더 함께 있고 싶기도 했습니다.
큰 딸 집이 평택이어서, 우리는 경기도 부천에 있는 고속 터미널에서
버스를 탔습니다.
달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한창 재롱을 부리는 손녀를
무릎 위에 앉힌 제 마음은 한없이 즐거웠습니다.
뿌듯한 기분으로 손녀를 안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한 시간 남짓
저는 문득 달리는 차창 밖을 내다봤습니다.
언뜻 언뜻 스쳐 지나가는 산들에는
빨간색 노란색 등 갖가지의 색으로 나뭇잎이 물들어 있었고
때 늦게 핀 들국화, 이름 모를 꽃들..
벌판의 누렇게 익은 벼이삭들이 넘실거렸습니다.
멀리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고기를 건져 올리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습니다.
어느새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큰 딸이 살고 있는 마을 어귀로 들어섰습니다.
딸이 살고 있는 곳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외곽이라
한창 벼 수확 하는 농민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벼 수확을 하는 논 한쪽으로
먹음직스럽게 잘 여문 김장 무와 배추도 보였고
작은 야산 밑에 있는 과수밭 나무엔
아직도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습니다.
잘 다듬어진 마을 어귀 밭에는 깨를 턴 자리도 있었고
고구마 밭도 있었는데,
역시 제일보기 좋았던 것은
벼 가을 한창인 누런 논 이었습니다.
저는 손녀를 안고 발이 닿는 대로 가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벼 가을 하고 있는 농민들 가까이로 갔습니다.
벼 가을 하는 기계를 저는 한참이나 서서 구경했습니다.
참 신기한 것이 논밭에서 작은 기계 한대가 빙글빙글 돌면서
벼는 기계 속으로 쏙쏙 들어가고 줄줄이 벼 알들이 쏟아져 마대에 담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구경을 하는 동안 내내
저는 고향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 고향 북한에도 지금 가을걷이가 한참 인데....
힘들게 벼 가을을 하는 모습이 이곳 남한의 농민들과 엇갈려 떠올랐습니다.
연약하고 어린 학생들이 낫을 들고 한 줄을 서서 서로경쟁을 하며 달려가는 모습도..
나라의 국방을 보위하고 있는 군인들이
벼 단을 하늘 높이 실은 뜨락또르를 운전하는 모습과
풍년든 벼 단을 실은 소달구지를 몰고 가는 모습도
사진의 한 장면처럼 안겨왔습니다.
앞치마를 입은 노인들과 아줌마들이
삶은 고구마와 시원한 국수를 담은 함지를 이고
벌판으로 나와 새참시간이라고 큰 소리를 치는 모습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안겨 왔습니다.
그 중에 제일 마음 아프게 사라지지 않고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평양시 강남군 어느 한 작업반에 벼 가을 한창 하고 있었습니다.
벼이삭 보다 풀이 더 많았습니다.
한창 벼 이삭을 한 오라기 두 오라기 골라가며 가을을 하는 농촌 동원 노력들의 모습을
보던 지도 농민작업반장이 성냥을 그어 불을 달았습니다.
바싹 마른 풀잎과 몇 오라기 안 되는 벼 이삭들이 삽시간에 검은 연기가 돼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또 제가 군 복무 할 때였습니다.
부대 인근농장에 벼 탈곡을 하다가
경비소대 한 군인이 탈곡기에 팔이 말려 들어가,
젊은 청춘 시절을 군에서 마치는 것만 해도 마음이 아픈 법인데,
팔 하나를 잃고 장애인이 돼 제대가 됐습니다.
지금 그 군인은 불편한 몸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아무쪼록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한창 벼 가을을 하는 장면을 함께 지켜보던 큰 딸이
나무에서 사과를 따듯이 벼이삭도 나무에서 따야하는 줄만 알았던
어린 시절 얘기를 해서 우리는 크게 웃었습니다.
큰 딸 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형제 산 구역에 농촌 동원 가서야 비로소
벼는 봄에 모내기를 하고 가을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 곳 남한에서는 농촌 동원은 없습니다.
사실, 사람이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농사를 합니다.
봄이면 밭을 갈고 기계가 모내기를 하고
벼 가을도 기계가 하고 비료도 시약도 모두 기계가 뿌린답니다.
결국, 농사는 전부 기계가 하고 있으니
도시나 시골이나 별 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도시 생활이나 시골 농민들의 생활차이가 없다는 말이랍니다.
시골에 가도 전기 가스나 온수로 방안을 덥힐 수 있고
집집마다 겨울이면 뜨거운 물이 나오고
여름이면 시원한 물이 나오며
어디가나 문화 주택과 아파트들이 줄지어 섰고
어디가나 전기 기관차와 버스들이 있고 자가용차들이 있어
살기 편하고 좋습니다.
남쪽에 와서 6 번째 맞는 가을.
오늘도 저는 벼 가을을 하는 이곳 남한의 행복한 농민들의 모습을 보며
내 고향을 그려 보았습니다.
아무쪼록 올해는 풍년이어서 고향의 농촌에도 함박웃음이 나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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