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생각, 평양 생각] 집에 걸린 내 사진

주말이라 온 가족이 함께 아침식사를 하게 됐습니다. 회사 기숙사 생활을 하는 작은 딸도 집에 왔고, 아들도 쉬는 날이라 출가한 큰 딸을 내놓고는 온 가족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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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각기 자기 맡은 일을 하다 보니 이렇게 함께 주말을 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됐습니다. 아이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니 대견하기도 하지만 , 밥상에 앉아 제가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없으니 조금 서운하기도 합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는 다 같이 집안 청소도 했습니다. 제가 청소기를 들고 일어나니, 아이들도 소매를 걷고 거들었습니다.

호기심도 많고 엉뚱한 소리도 잘하는 작은 딸은 텔레비전과 화장대에 닦다 말고, 벽에 걸린 제 결혼기념 사진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한마디 했습니다.

고향에서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걸었던 기억 때문에 처음 남쪽에 와서는 친구네 집에 걸린 큰 사진이 너무 어색했는데, 오늘 우리 집에 걸려 있는 엄마의 사진을 보니 너무 멋있다고요. 작은 딸 덕에 우리 가족은 한참을 웃었습니다.

작은 딸의 말 덕에 우리는 고향에서 초상화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저마다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큰 딸은 부지런했고 성실했습니다. 항상 제일 먼저 일어나 한창 말썽피우는 제 동생들을 깨워 벽에 걸린 초상화를 먼저 닦기도 했고 일요일이면 제일 깨끗한 걸레와 빗자루를 들고 학급에서 제일 먼저 만수대 동상으로 달려 가 학부형 총회 때 칭찬이 자자하기도 했습니다.

칭찬도 받고 비판도 듣고 하던 철이 없던 그 시절을 추억하며 웃기도 하고 쓴 비웃음도 짓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저도 지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한 주일에 한번 씩 당 생활 총화를 준비하기 위해 하얀 솜을 들고 다니며 주민 세대에 들어가 초상화를 검열했고 사소한 먼지가 발견되면 어떤 때는 조금 못 되게 굴기도 했습니다. 또 아침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을 마구 깨워서는 만수대 동상과 주변 공원으로 내몰았던 생각도 났습니다.

지금에 생각을 해보면 왜 그랬을까 후회가 되지만 그 땐, 그래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런 기억들은 제게 후회와 자책을 하게 합니다.

제가 남한에 와서 하나원에 있을 때, 국방부 간부들의 인터뷰를 하게 됐습니다. 그 때가 마침, 2004년 유니버시아드 체육 경기가 대구에서 열려서, 북한 응원단이 대구에 와 있었습니다. 하루는 비 오는 데, 응원단들이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다가 비에 젖고 있는 현수막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마침 현수막엔 김정일 위원장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악수를 하고 있는 사진이 박혀 있었고, 이걸 응원단들은 버스에서 뛰어내려 비에 적는 김정일 사진을 가슴에 품고 막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느 국방부 간부는 이런 응원단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하면서 저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면서 정신이상인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북한사회에서는 그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으며 그렇게 해야만이 살아 갈 수 있다는 대답을 해 줬습니다. 그래도 이 간부는 잘 이해가 안 간다면서 계속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하기야 국민들이 대통령도 마음대로 탄핵할 수 있고 대통령을 마음대로 욕도 할 수 있는 이곳 남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해 할 수는 일입니다. 그러나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충성만을 요구하는 북한에선 자기 부모님의 사진도 마음대로 벽에 걸 수 없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 부모 없이 삼대 외독자로 살아온 저의 아버지의 재산이라고는 달랑 19살 총각 시절 사진 한 장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어느 날 아버지의 그 사진을 벽에 걸었습니다. 어린 나이었지만 저도 벽에 걸린 아버지 사진을 보며 참 멋있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저녁에 퇴근하고 와서는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아버지는 벽에 걸어놓은 사진을 떼여 방바닥에 던지면 큰 소리로 정신없는 짓을 했다며 어머니를 크게 나무랐습니다. 제가 부모님 살아생전 겪어 본 가장 큰 부부 싸움 이였습니다. 철이 없던 그 시절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인민학교를 졸업할 즈음에서 너무도 똑똑히 알았습니다. 왜 아버지가 그렇게 무섭게 화를 낸 건지.....

한참 이런 생각을 하고 멍하게 앉아 있는 저를 아이들이 불렀습니다. 산책을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집주변에 있는 작은 야산으로 오랜 만에 산책을 나갔습니다.

운동복을 입고 저만치 앞에 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오늘따라 든든하게 느껴집니다. 아이들의 뒤를 따라가면서 집 벽에 걸린 초상화 속 제 모습만큼 환하게 웃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