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강연을 마치고 동대구역에서 KTX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던 중 열차에 있는 텔레비전에서 탈북자 박 씨가 북한으로 다시 재 입북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도 않았지만 또 믿겨지지도 않았습니다. 이상야릇한 마음으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컴퓨터를 켰습니다.
컴퓨터를 통해 뉴스를 확인해 보려는 순간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제가 제일 존경하는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언니였는데 목이 꽉 쉰 목소리였습니다. 언니는 너무 안타까워 밤새 잠을 못 잤다고 했습니다. 이해가 안 된 저는 혹 그 언니 건강에 무슨 일이 있는지 다그쳐 물었습니다.
언니의 말은 뜻밖이었습니다. 송파에서 살았고 아주 친하게 지내던 박인숙이 북한으로 재입국했고 평양 인민문화 궁전에서 기자회견을 했으며 북한 언론 매체에서는 청진에서 살던 박 씨가 6.25전쟁 때 한국으로 온 아버지를 찾아 2006년에 탈북했다가 지난달 25일 북한으로 돌아 왔다고 떠들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박 씨는 기자회견에서 중국에서 한국 국가 정보요원들에게 유인돼 남한에 가서 6년 동안 노예와 다름 없는 생활을 했고 남한 사회에는 인간의 정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고 눈썹 하나 까딱 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의 온 몸에는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한국행은 박 씨 본인 스스로 선택했었고 큰 유명한 인물도 아닌 그저 평범한 70대의 아줌마일 뿐인 그를 과연 누가 유인했다고 하는지, 아무리 북한 당국의 꾀임수에 넘어 제 몸값을 올린다고 해도 분수가 있고 또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른대로 하라고 하찮은 늙은 한 아줌마인 그를 누가,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또 한 번 아팠습니다.
사실 우리 탈북자들은 북한의 김정일과 김정은으로부터 이미 버림을 받고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지 못해 죽지 않으면 살겠지, 하는 죽을 각오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었습니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다가 북한군의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도 많고 물살 빠른 두만강 물과 압록강 강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도 있고 공개 총살당하고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 간 이들도 많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 땅에서 갖은 수모와 멸시를 받으며 산 속에 숨어 살거나 또는 인신매매꾼들과 납치꾼들에게 끌려 가 팔리기도 하고 원치 않은 가정생활도 해가며 머슴처럼 살면서 병이 나도 제대로 병원에 가 볼 수 없었고 공안에 신고가 되면 북한으로 강제 북송 되어 짐승보다도 못한 굴욕과 모욕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면서까지 우리는 보다 좋은 새 삶과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 이곳 대한민국에 왔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은 우리에게 임대 주택과 정착금을 주고 무상 치료, 무상 교육 등 많은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박 씨 역시 이곳 대한민국에 와서 북한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고 상상도 할 수 없는 대접을 받았습니다. 24시간 찬물 더운물이 콸콸 쏟아지는 좋은 온수난방 아파트에서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에도 추운 줄 모르고 지금처럼 무더운 삼복더위에도 더운 줄 모른 채 정착금도 받고 매달 생계비도 70만원씩 받으며 정말 행복한 생활을 해왔습니다.
천국 같은 이곳 대한민국에서 하루도 아니고 6년이란 긴 세월 살아 왔던 그가 과연 북한에 가서 얼마나 살 수 있을지 저는 의문이 생깁니다. 지난 날 북한에서는 계급적 성분 때문에 아마 그리 좋은 생활은 해 보지 못했을 것이 뻔합니다만 지금 당장은 북한 당국이 그를 이용하느라 평양에다가 집을 배정해 주고 아들 직업도 마련해 주었다지만 과연 그것이 얼마나 갈 수 있을지.
지금 평양시에서는 식량을 겨우 한 달에 20일 아니면 10일씩 밖에 공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박 씨의 나이도 70살인데 북한에서는 그 나이면 아무데도 쓸모 없는 몸이며 버스를 타도, 시장에 나가 앉아 있어도 늙었다고 한창 구박을 받을 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철부지 김정은의 독재하에서 2,300만 북한 주민들은 지금 울타리 없는 감옥 안에서 자유와 권리를 빼앗긴 채 개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자유와 행복한 생활을 만끽하며 살아오던 그가 과연 생지옥과 같은 북한에서 몇 날 며칠이나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되며 그만큼 속으며 살아온 그 세월이 얼마인데 그 곳으로 다시 갔다고 하니 또한 불쌍하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그는 과연 편안하게 발을 펴고 잘 수 있을지, 우리 탈북자들이 겪는 이런 가슴 아픈 비극이 다시는 이 땅에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