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공항에서 미국 워싱턴까지 걸린 시간은 14시간이나 됐습니다. 저는 2005년에도 탈북 여성들의 실상을 알리려고 워싱턴을 두 번 다녀왔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미국을 가는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고 내 인생에서 다시는 갈 기회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추억이 될 줄 알았던 워싱턴,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이렇게 다시 갈 기회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태평양을 건너 미국 워싱턴에 도착하고 나서 본 거리 모습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우연히 만난 택시 기사가 한국 사람이어서 회사까지 가는 길에 있는 건물들에 대해 하나하나 자세한 설명까지 해줬습니다. 남들은 한 번도 가 볼 수 없었던 워싱턴, 특히 내 고향 북한에서는 침략자 미제 승냥이라고 세뇌 교육을 받아왔던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세 번째 왔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호텔에 짐을 풀고 숙소 근처에 있는 회사로 갔습니다. 기자님들과 직원들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친절하게 반겨 줬고 기다렸다는 듯이 시간이 나는 대로 서로서로 맛있는 음식점과 공기 좋고 분위기 좋은 곳으로 안내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 주었습니다. 북경 오리 전문집의 오리 구이는 별미였습니다.
포토맥 강 유보도에서 피부색도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는 많은 미국 사람들 속에 끼여 넓은 강을 바라보며 시원한 강바람을 쐬는 동안 마음도 한껏 즐거웠습니다. 내가 마치 내 고향 평양의 대동강 유보도에 앉아있는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평양의 중심의 한복판에도 포토맥 강과 비슷한 대동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저는 고향에 있을 때 대동강에 자주 가곤 했습니다. 늘어진 버드나무 그늘 의자에 앉아 평온하게 사람들 구경하는 게 좋았던 같습니다.
포토맥 강가 유보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1787년에 건립했었다는 조지타운 대학이 있었는데 그곳도 잠깐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또한, 흑인들을 위한 인권 운동가이며 미국 전 대통령인 링컨 대통령 기념관과 한국 전쟁에 참가했던 참전 용사들의 희생을 기린 한국전쟁 기념관, 미 국무부와 의회도 방문했습니다. 의회에서 만난 관계자는 2005년도에 의회 청문회에 참석했던 저를 기억하고 반갑게 대해 줬습니다. 세계 최강국인 미 의회에도 나를 기억해 주는 분이 있다고 생각을 하니 그저 뿌듯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에는 워싱턴의 전철을 타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회사 근처 듀퐁 써클 역은 내 고향 평양에 있는 지하 전철역처럼 승강기를 타고 약 100미터나 땅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전철 전동차도 평양에서 다니는 전동차와 비슷한 점이 많았습니다.
북한에서 미제 승냥이라고 하는 미국의 수도에서 마음대로 자유롭게 활보한다는 것에 대해 아마 북한 사람들은 많은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본 미국 워싱턴은 아주 평화롭고 공기 좋고 살기 좋은 곳입니다.
언제면 북한 주민들도 외국은 고사하고 자기 나라 안에서라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지, 그날을 고대하면서…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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