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아리랑’ 인류무형유산 등재 권고

워싱턴-이장균 leec@rfa.org
2014.11.05
arirang_song_305 평양 기생학교 출신의 신민요 가수 왕수복이 1955년 9월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오페라극장에서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
사진-연합뉴스 제공

(음악 : 농악놀이)

- 우리민족의 흥겨운 가락 농악이 이달 24일부터 28일까지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리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될 것이 확실시 된다는 소식입니다. 이번 위원회에서는 북한 아리랑도 함께 등재 권고에 올랐습니다.

(김미경 강사 : 신기하게도 가난한 남자와 결혼하잖아요, 그러면 결핍이 자산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뛸 수 있는 힘이 생겨요.)

-북한 여성 여러분에게도 요즘은 일등 신랑감이 돈이 많은 남자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남한의 유명한 강사 김미경 씨는 오히려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야 어려움을 딛고 더 잘 되는 힘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요즘 우리 생활에 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산업, 군사 분야까지 활용할 수 있는 로보트, 로봇 연구가 활발합니다만 일본에서는 한 로보트가 일류대학 시험까지 응시해 좋은 성적을 얻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잠시 후 ‘세상에 이런 일도’ 에서 전해드립니다.

‘라디오문화마당-세상을 만나자’ 오늘 순서 시작합니다.

(Bridge Music / 세상에 이런 일도)

일본 로봇 도쿄대 응시, 합격선엔 못 미쳐도 사립대 합격 성적 받아

로봇, 로보트 연구를 활발하게 하고 있는 일본에서 인공지능로봇이 도쿄대 입학모의 시험에 응시했다는 소식입니다.

도쿄대학에 응시한 사람의 지능을 닮은 로봇, 즉 인공지능로봇의 이름은 ‘도로보쿤’인데요 성적은 도쿄대 합격선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전국 681개 사립대 가운데 80%에 해당하는 472개 대학에 합격할 수 있는 성적을 받았습니다.

2011년 개발된 인공지능로봇인 도로보쿤은 일본 국립정보학연구소가 진행한 '인공지능개발사업’ 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도로보쿤은 지난해에 이어 2년째 모의시험에 응시했는데요 지난해에 비해 조금 올랐다고 하네요. 최종목표는 도쿄대 합격이라고 합니다.

시한부 선고 받은 여성, 예고한 날짜에 죽음 선택

뇌종양으로 시한부 사람을 선고 받은 미국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존엄사를 택할 것이라는 얘기 얼마 전 전해 드렸죠? 결국 자신이 예고한 그 날짜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미국 사회가 충격과 논란에 빠졌습니다.

29살의 브리타니 메이나드는, 결혼한 지 1년 된 새신부였습니다. 지난 4월 뇌종양 말기로 6개월 이상 살기 어렵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자 존엄사를 선택했습니다.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내 의지에 따라 고통을 끝낼 시간을 정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뇌 속에 있는 암 덩어리가 제멋대로 자신의 삶을 끝내도록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며 그동안 살던 캘리포니아 주를 떠나 존엄사를 허용하는 오리건 주로 이사했습니다.

메이나드는 남편의 생일인 10월 30일을 가족과 함께 보낸 뒤 11월 1일에 스스로 삶을 마감하겠다고 예고했고 예고했던 그 날 자신의 침실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메이나드의 죽음으로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존엄사에 대한 논쟁이 미국 사회 전역에서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중국 공무원들이 도굴된 시체를 20구나 구입한 사연

중국에서 공무원들이 도굴된 시체를 20구나 사들였다가 구속됐다고 3일 영국 BBC방송이 전했는데요, 무슨 까닭인지 궁금하시죠?

사건의 발단은 지난 6월 중국 베이류의 한 주민이 조부의 묘지에서 시신이 도굴됐다고 신고해 경찰이 수사에 나서면서부터인데요 신고 접수 한 달 만에 도굴범 중씨가 검거되면서 전모가 밝혀졌습니다.

시신을 사들인 이들은 광둥성 민정부문 장례 담당 간부인 둥모씨와 허모씨로 이들은 화장 의무량 실적을 채우려고 광시장족자치구에 사는 중모 씨로부터 도굴한 시체들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함께 구속된 중씨는 경찰에서 광시자치구 베이류시 공동묘지에서 시체 20구를 도굴한 후 포장해 광둥성 관리들에게 보냈다고 진술했습니다. 둥 씨는 시체 한 구당 3000위안을, 허씨는 시체 1구당 1500위안을 지불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붙잡힌 공무원들이 화장 의무량 실적을 채우려고 이런 범죄를 저지른 이유는 중국 정부가 농토와 개발용 토지 보존을 위해 매장을 금지하고 화장을 의무화하고 있어서 각 지방 정부에 매월 화장 의무량을 배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대부분이 전통적으로 조상 숭배 사상에 따라 매장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에 당국의 매장 금지 정책에 반발하고 있다고 BBC는 전했습니다.

(Bridge Music / 라디오문화마당)

농악,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확실, 북한의 아리랑'도 등재 권고

(음악 : 농악놀이)

네, 흥겨운 꽹과리, 징, 장구, 북이 어우러져 한판 흥겹게 벌이는 농악놀이 소리를 들으면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게 되죠. 예로부터 김매기나 모심기 등의 힘든 일을 할 때 일의 능률도 올리고 피로도 덜고 나아가 협동심도 불러일으키기 위해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요즘에도 각종 명절행사나 각 지방의 문화축제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여러 가지 가무놀이 가운데 농악만이 명맥을 잇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생전에 김일성 주석은 `농악무는 민간무용의 하나로서 군중성이 있고 낙천적이며 흥미 있는 좋은 무용`이라고 평한 바 있다고 하죠.

실제로 북한은 1991년 김일성 주석 89회 생일(4.15)에 `전국 농악무 경연`을 평양에서 처음으로 개최했었죠.

농악이 이달 24일부터 28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17번째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될 것이 확실시된다고 합니다. 등재권고 판정을 받으면 이변이 없는 한 그 해 개최되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그대로 등재됩니다.

유엔의 전문기구인 유네스코는 잘 보존하지 않으면 없어질지 모르는 세계적으로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세계문화유산을 선정하고 있는데요, 세계유산, 무형유산, 기록유산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해 ‘세계유산일람표’에 등록해 보호하고 있습니다.

(음악 : 종묘제례악)

한국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은 2001년 처음 등재된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을 비롯해 판소리, 강강술래, 택견, 김장문화 등 16개가 있습니다. 이 중 매사냥은 2010년 11개국 이름으로 공동 등재됐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의 경우 한국은 석굴암과 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창덕궁, 수원 화성,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 경주역사 유적지구, 조선 왕릉 40기, 하회 • 양동마을, 남한산성 등이 있고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의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돼 있습니다. 북한은 2004년 고구려 고분군이 2013년에는 개성역사유적지구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기록유산은 세계적 가치가 있는 귀중한 기록물을 가장 적절한 기술을 통해 보존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2년마다 지정하고 있는데요, 한국은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직지심체요절.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의궤,고려대장경과 제경판, 동의보감), 일성록과 5 • 18 기록물, 난중일기와 새마을운동 기록물 이렇게 11가지 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북한 아리랑도 등재 권고 판정

(음악 : 아리랑 / 북한가수 최정자)

이번에 북한의 아리랑도 2012년 등재된 남한 아리랑과 별도로 이번에 등재권고 판정을 받았죠. 유네스코의 심사보조기구는 아리랑이 북한에서 남녀노소가 즐겨 부르는 민요로 북한의 문화적 정체성을 나타낸다고 평가했습니다.

북한 당국은 2013년 11월 조신민요 ‘아리랑’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신청을 했습니다. 등재신청서에 평양, 평안남도, 황해남도, 강원도, 함경북도, 자강도 지역의 아리랑을 포함시켰습니다.

이번에 북한의 아리랑이 등재되면 북한 지역에서 첫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이 탄생하게 되는 데요, 한국 지역의 아리랑은 이미 지난 2012년 12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북한의 민요로서의 아리랑은 경상도아리랑, 영천아리랑, 랭상모판큰애기 아리랑이 있고, 이른바 혁명가요로 불리는 아리랑은 통일경축아리랑과 강성부흥아리랑 등이 있습니다.

(음악 : 영천아리랑 / 전혜영, 이경숙)

재미있는 것은 지금 들으시는 영천아리랑의 경우 원래는 경상도 지역인 영천에서 불려지던 아리랑인데 남한에서는 잊혀지고 북한에서 지금까지 불려지게 된 이유입니다..

남한 영천아리랑이 북한에서 불려지게 된 배경

그 배경을 보면 강제강점기 시대 때 영천 사람들이 대거 북간도로 이주하면서 두만강 근처 회령에서 잠시 정착하기도 했는데요, 그곳에서 영천아리랑이 퍼져나갔고 정착지인 북한도에서도 영천아리랑이 전파됐습니다.

곡조가 경쾌해 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이 가사를 고쳐 군가로도 불렀다고 하죠. 이후에 회령과 북간도에서 불렸던 영천아리랑이 북한 전역에 전파됐다고 합니다.

영남 민요 아리랑 보존회 정은하 회장은 정작 영천아리랑의 본고장인 경상북도 영천에서는 이 아리랑이 잊혀졌다는 데 대해 안타까워하다가 지난 2009년 어린 시절 동네 어른이 부르면 원래의 영천아리랑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분을 찾아냈었습니다.

당시 이른 여덟 연세의 장두표 노인인데요 당시 정은하 회장이 자택을 찾아 들어본 영천아리랑에 대해 얘기와 장두표 노인이 부른 원조 영천아리랑 가락입니다.

장두표 노인 : 해방 되던 해 내가 열 다섯 살이었거든.. 그때 성근칠 할아버지 저쪽 우리 집 근처에 사셨는데 그 노인이 혼자 있으니 서글프거든..
(노래) 영천읍내 물레방아 물 안고 돌고~ 우리 집 저 영감 나를 안고 돈다~~ 영천읍내 물레방아는 우리 어릴 때부터 있었고 영천읍내 물레방아는 물은 안고 돌고 우리 영감은 나를 안고 돈다.. 시장에는 팔딱팔딱 사람들이 많아도 홀애비 가슴에는 기분이 없단 말이다, 홀애비 가슴에 수심 많다..
(노래) 영천읍내 시장에는 사람도 많고 우리 홀애비 가슴에 수심 많다~~ 아리 아리….
정은하 회장 : 들어보니까 이분 소리가 강원도의 자진아라리의 곡이었기 때문에 제가 아.. 이분 노래가 완벽하다 다른 아라리의 곡 같았으면 제가 안 믿었어요. 경상도 영남의 소리는 모두 다 강원도 아리랑의 영향을 받았거든요, 들소리에서 왔기 때문에.. 모를 심으면서 부르는…

영천아리랑은 일제치하에서 살기 힘겨웠던 영천 주민들이 만주 쪽으로 가면서 북한에 퍼뜨린 뒤 다시 고향으로 원래 모습과는 낯선 가사로 바뀌어 돌아 오긴 했지만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 힘든 방랑생활을 했던 이들에게 위로해 주고 만주의 독립군들의 독립군가로도 사용되면서 우리 민족의 애환과 함께 한 곡으로 지금도 힘겨운 삶을 하루하루 견뎌내야 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습니다.

(음악 : 영천아리랑 / 전혜영, 이경숙)

(Bridge Music / 용기를 주는 한마디)

반지하 11평에서 신혼 시작, 김미경의 남자 고르는 법

북한 여성분들도 요즘에는 남편감 고르는 기준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죠. 고위층 자녀나 돈이 많은 남자가 일등신랑감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남한에서 유명강사로 인기 높은 김미경 강사는 반대로 얘길 합니다. 돈 없고 가난한 남자를 남편감으로 고르라고 하는데요 그 이유를 들어봅니다.

김미경 : 여자는 어떤 남자를 골라야 될까.. 여자는 이런 남자와 결혼하십시오. 여러분 가끔 남자 만나면 왜 이 남자는 이런 옷을 입어.. 그런 남자가 있는가 하면 어떤 남자는 진짜 폼이 나.. 옆에 딱 데리고 다니면 폼나.. 그런 남자와 결혼 하려고 그러잖아요, 절대 안 된다..
그래서 어떤 남자와 결혼해야 되느냐.. 부모한테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남자? 썩 좋지 않다.. 나는 제가 굉장히 기특해요. 생각해 보세요. 스무 살에 화곡동 올라와서 자취방 코딱지만한 데서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금 마흔 아홉이에요.
지금까지 자산을 쌓아오고 열심히 공부하면서 김미경이라는 사람이 나한테는 최고 자산이 됐어요. 김미경이라는 사람이 돌아다니면 막 돈이 생겨요. 뒤에서 막 따라 오잖아요. 이게 나의 엄청난 재산이죠. 이렇게 해서 제가 하나 하나 무엇인가 나를 이루어 왔어요.
그래서 가난한 남자와 결혼하세요. 저는 아주 가난한 남자와 결혼했어요. 제 아버지가 결혼할 때 안 오시려고 그랬어요. 하도 속이 상하셔서.. 결혼할 때 우리 아빠가 저한테 물어봤어요. ‘너 죽어도 갈래 이놈이랑?’ ‘네..’ ‘너 아버지랑 연 끊어도 가냐?’ ‘미안해요..’
그리고 반지하 열한 평에서 아주 어렵게 시작했어요. 아버지가 결혼식 날 왔어요. 대충 보고 가셨어요. 그리고 나서 큰 애 낳았을 때 왔어요. 저한테 10원도 안 줬어요. 내가 결혼할 때.. 너무 미워서.. 아버지가 눈이 빨개지면서 처음으로 나한테 한 소리가 뭔지 아세요?
궁둥이를 이렇게 쓰다듬으면서 ‘좋아 이년아?’ 그리고는 봉투를 베개 속에다 끼워 넣더니 ‘네 딸 옷 사 입혀’ 그리고는 내려가시더라고..
꺼내 봤어요, 그랬더니 세상에 500만원이 들어 있는데. .세상에 결혼해서 힘들게 살아보니까 그 돈이 왜 그렇게 큰지.. 제가 만 원 한 장 쓸 때마다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썼어요. 제가 아버지한테 편지를 썼어요. ‘아빠 이런 거 뭐 하러 주고가.. 근데 잘 쓸게.. 근데 나 이거 그냥 안 받아.. 꼭 갚을게, 우리 애가 커서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내가 이거 열 배로 튀겨서 갚을게..’
여러분 열 배면 얼마에요? 내가 미쳤지 그런 짓을 왜 했을까.. 5천만원 지금도 커요.. 지금도.. 그래서 아이가 점점 클 때마다 부담이 되는 거에요. 큰일 났다, 이거 갚아야 하는데 어떡하면 좋은가..

그래서 결국 아이가 결국 고등학교 1학년이 됐어요. 결국 드려야 되잖아요. 약속을 했는데.. 그래서 제가 실험을 해봤어요. 여태까지 기억을 하시려나? 잊어버리셨더라고요. 그런데 나는 잊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결국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됐을 때 내가 모아놓은 돈 2천만원, 그리고 3천만원 대출을 얻었어요. 아버지 드리려고.. 내가 약속 한 거니까..
그래서 그 5천만원을 들고 증평을 내려가는데 세상에 서울부터 증평까지 오만리 같아요. 너무 고민이 돼서.. 요거 반만 드릴까.. 2천5백만원만.. 꺼내자, 꺼내자.. 원금 5백만원만 드려도 엄청 좋아하실 텐데..
그리고 나서 내려가서.. 세상에 아빠가 저쪽에서 돼지를 받으셨는지 여기 저기 오물 같은 걸 수건으로 툭툭 치고 나서 ‘어.. 미경이 왔냐..’ 하시는데 보는 순간 ‘아빠 내가 5천만원 기어코 갖고 왔거든..’ 그렇게 자수하고 아빠한테 5천만원을 드렸죠.
살다 보면 내 자식들 때문에 부모한테 돈 드릴 기회는 일생에 여간 해서는 힘든 거에요. 신기하게도 가난한 남자와 결혼하잖아요, 그러면 결핍이 자산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뛸 수 있는 힘이 생겨요. 마흔 아홉 살 김미경이 여기서 25년간 쉬지 않고 일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뭔지 아세요? 가난한 결혼 때문이에요.

( 음악 : 아리랑 관현악 연주 / 북한 국립관현악단)

라디오문화마당-세상을 만나자 오늘 순서 마칩니다. 제작 진행에 이장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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