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 초대석] 2008년 대북지원식량프로그램 선임자문관이었던 도로시 스텀키

워싱턴-전수일 chuns@rfa.org
201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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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WFP를 통해 북한에 지원한 식량의 포대.
사진-연합뉴스 제공
2008년 미국의 대북지원식량사업 감독관으로 북한에서 10 개월 동안 살았던 도로시 스텀키 (DOROTHY STUEHMKE)씨. 식량이 도착한 항구에서부터 굶주린 주민들에게 직접 배분되는 시골 마을의 가정과 고아원과 학교 현장을 3천여 차례 누볐던 그는 당시 미국의 대외 원조기관인 USAID 국제개발처 선임 자문으로 유엔세계식량계획 (WFP)과 미국의 비정부기구 구호단체 연합체의 식량분배 업무를 감독했습니다.올 2월과 3월 미국의 비정부기구와 유엔기관들이 북한의 식량 부족실태를 조사한 보고서를 발표한 이래 한국과 미국에서 대북 식량지원 재개에 대한 찬반 논쟁이 가열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스텀키 전 자문은 북한이 2008년 미국과 합의한 식량분배확인과 현장접근의 원칙을 따른다면 인도적인 대북식량지원은 북핵 문제와 별개로 다시 시작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은 자문직을 사임하고 평시민으로 돌아가 워싱턴에서 살고 있는 스텀키 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전수일: 북한에 식량 지원을 재개하는 문제의 핵심은 지원 식량이 전용되지 않고 필요로 하는 주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확인감시와 주민에 대한 접근일텐데요, 2008년 미국이 북한에 식량 5십만톤을 지원해주기로 했을 때 북한과 분배 확인감시에 대해 합의한 것은 전례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합의 내용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Dorothy Stuehmke: We were allowed to basically view the journey of food from its arrival at the North Korean port when it arrived by ship. We were allowed to go to the port and oversee how the food is being offloaded and stored. And then we would oversee…

식량이 도착하고부터 배급될 때까지의 전반적 과정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감시와 현장접근에 대한 합의였습니다. 그에따라 배가 도착한 항구에 가서 식량이 부두에 하역되고 창고에 저장되는 현장을 확인했고 식량이 기차 화물칸에 실려 평양 밖의 지역으로 운송되는 걸 지켜봤습니다. 지방에 나가 있는 저희 직원들은 식량이 전달되는 목적지의 현장에 가서 식량을 계수하고 창고에 저장되는 것을 확인하고 식량이 수혜 기관에 배급되는 상황을 점검합니다. 학교 고아원 병원 공공 배급소 등의 수혜 기관을 직접 방문해 식량이 사용되는 것을 확인하는 겁니다. 이 합의로 저희 지원인력들은 처음으로 식량이 항구에 도착해 목적지 지방으로 운송된 뒤 우리가 지정한 취약계층의 수혜자들에게 직접 배급되는 전 과정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그점에서 전례 없었던 합의라고 말 한 겁니다. 평양 이외의 지방과 시골에 있는 일반 인민의 가정도 방문할 수 있었고 학교를 방문해서는 우리의 지원 식량이 조리되는 과정도 보고 직접 학생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현장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평양 밖으로 식량이 분배됐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은 평양 이외의 전국적인 지역을 가리키는 겁니까?

Stuehmke: No, it wasn’t every single place. So there were specific provinces and counties which we had access to under the agreement. And Pyongyang was not part of that.

전국의 모든 지역이란 말은 아닙니다. 2008년 식량지원합의서에 명기된 도와 군으로서 지원 인력이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지역만을 뜻하는 겁니다. 하지만 지원 식량은 모두 평양 이외의 지방으로만 갔습니다. 평양에는 선택된 주민들과 엘리트 특권층만 살고 있는 곳이 아닙니까. 저희의 식량 지원은 평양 내 엘리트 층과 군부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수도 평양 밖의 외딴 지역에 살고 있는 일반 주민들, 실제 식량이 제일 필요한 계층을 대상으로 한 겁니다.

: 2008년 대북식량지원합의에 따라 열 달 이상 북한에 머물며 분배확인감시와 대민 접촉을 했다고 하셨는데 어떤 직능으로 파견되신 겁니까?

Stuehmke: I was a US government official for the US Agency for the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 and I was sent to oversee implementation of the entire program on both the U.S. NGO side and the WFP side…

미국 정부의 대외원조기관인 USAID 국제개발처 선임자문관으로 파견됐습니다. 2008년 대북 식량지원 프로그램 합의의 전반적인 이행을 감독하는 것이 제 직무였습니다. 그때 저희 국제개발처의 협력 단체로 유엔의 세계식량계획과 미국의 비정부기구 연합체가 있었는데 이 두 기관이 북한에서 식량이 도착해 분배되는 과정까지의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들의 일을 감독했습니다.

: 2009년 3월 미국이 당초 공급하려 했던 식량 50만톤 중 16만9천톤을 전달한 뒤 식량 지원은 중단됐습니다. 저희 청취자들에게는 식량 공급이 도중에 중단된 이유가 궁금할 것 같습니다.

Stuehmke: They were the ones who ended the program in March 2009. They asked us to leave the program, and to leave the country and shut the program down...

저희가 아니고 북조선측에서 식량지원프로그램을 중단시킨 겁니다. 북측은 저희에게 식량지원사업을 중단하고 북한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 왜 북측이 식량지원사업을 중단시켰을까요? 무슨 문제가 있었습니까?

Stuehmke: We can only really speculate as to why they asked us to leave…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만 추정은 해 볼 수 있습니다. 언급하신대로 당시 우리는 아직 50만톤 식량 전부를 선적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북지원사업을 계속 진행해 미국과 북한이 합의한 대로 북한 주민들에게 식량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여러가지 전략적인 문제들이 얽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북핵6자회담이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고 북한은 4월 초 미사일 발사를 준비 중에 있었습니다. 이같은 북한의 외교적 문제가 그 배경에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북한 국내적 차원에서도 권력승계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김정일은 아들에게 권력을 승계한다는 것을 공식화 하려던 과정에 있었습니다. 그런 여러가지 국내외적 현안들이 얽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북한지도부는 미국인들이 식량지원사업으로 북한 땅 안에 체류하고 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을 겁니다. 추정일 뿐입니다만, 그런 배경이 우리의 대북 식량지원을 중단시켰고 우리가 북한을 떠나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당시 언론 보도로는 북한측이 분배확인감시를 위한 한국어 구사 요원의 증원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해서 식량 지원이 중단 된 것으로 알려졌었는데요.

Stuehmke: I would find it very difficult to believe that that would be the main reason as to why they asked us to leave North Korea. One of the most important standards we have achieved under 2008-2009 agreement…

만일 북한측이 우리의 식량지원업무를 중단시키고 북한을 떠나라고 한 주된 이유가 그것이었다면 믿기 어렵습니다. 2008-2009년 대북식량지원사업에서 우리가 북한과 합의한 사항 중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 바로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요원을 북한에 상주하게 해 식량지원사업을 이행하도록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모니터링 분배확인 요원들이 평양 밖의 지방에 상주할 수 있도록 허락했고 이것은 정말 큰 성과였습니다. 실제 분배확인을 하는 과정에 북한 주민들은 호감을 갖고 저희들을 대했습니다.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저와 다른 스태프들 모두 그런 걸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어 구사 요원을 불허한다는 문제가 식량지원 중단과 우리의 북한 출국을 초래한 요인이라는 것을 믿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물론 저희들이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북한 당국자들에게는 내심 불편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왜냐면 북한은 과거에는 한국어를 구사하는 분배감시요원을 허용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당시 한국어를 구사하는 모니터링 요원들의 수는 충분했다고 보십니까?

Stuehmke: Yeh, but I think we had a good amount of speakers and if we could get even more that would be great…

제 생각에 그 숫자는 충분했습니다. 물론 더 많은 한국어 구사 요원을 확보했더라면 더욱 좋았겠죠.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는 능력있는 분들을 잘 뽑아서 북한에 투입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대외비 사항이라서 이 합의의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적어도 한국어 구사 요원들이 북한 현장에서 식량지원프로그램에 따른 이행 과정을 감독감시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는 것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왜 한국어 구사 분배확인 직원이 감독감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Stuehmke
: I think NK is one of the most isolated countries in the world. They don’t open the doors to very many foreigners at all. And so the idea of people coming in and being able to speak their language…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외국인에 대해 개방을 거의 하지 않고 있죠. 그래서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조선말로 자기 나라 주민들과 얘기를 나눈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에게는 생소한 것이죠. 하지만 저는 한국어 구사 요원이 앞으로의 모든 대북 식량지원 프로그램 이행에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긴요할 뿐만 아니라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들이 매우 중요한 소통의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오해를 불식하는데에 기여할 수 있고 식량지원프로그램사업이 효율적으로 이행되는 것을 담보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아시다시피, 많은 사항이 통역 과정에서 누락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한국어 구사 요원들이 현장에 있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특히 이들이 북한주민들과 접촉해 교감할 수 있는 것 역시 중요한 일입니다. 지원되는 식량이 북한주민들을 위해 미국이 보냈다는 사실을 알리고 주민들과 주고 받는 말을 조선어로 한다면 그들은 더욱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주민들에게 제일 먼저 묻는 질문은 식량이 어디서 왔는지 아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민들은 식량이 미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진짜 고마워했습니다. 또 식량 포대에 ‘미국의 기증’이란 말이 한국어로 적혀 있었으니 미국에서 온 것임은 그들에게 자명했을 겁니다.

: 이같은 주민들과의 교류가 북한주민들에게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Stuehmke
: Absolutely. This is the window into the outside world. They are very restricted in so many senses of the word.

물론입니다. 바깥 세상일을 모르는 주민들은 우리 외부인들이 자동차를 직접 몰고 그들에게 가서 식량을 분배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옷을 입고 있고 어떻게 말하고 하는 것을 직접 보고 듣는 것이죠. 이런 것 모두가 그들에게는 잊지못할 경험이 되는 겁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어떻게 우리가 북한 주민과 접촉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로서는 외부세계의 단편이나마 볼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된다는 점에서 이런 현장교류는 매우 효과적입니다.

: 북한 당국자들은 주민들이 외국인 분배감시자들과 조선어로 대화하는 걸 허락했습니까?

Stuehmke: Sure. They did. They were standing with us all times but we were allowed to…

물론입니다. 북한 관리들은 항시 우리 곁에 붙어 있었지만 모니터링 방문을 수천 번 할 때마다 우리가 주민들과 자유롭게 얘기하는 걸 막지 않았습니다.

: 분배확인을 통해 식량 절대량이 군부나 엘리트계층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하셨는데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Stuehmke: Well, you’re conducting hundreds and hundreds of monitoring visits every week, speaking with people, visiting in their homes, viewing school feedings of the children actually eating the food we delivered…

매주 수백차례 분배확인 모니터링 현장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을 직접 만나 보고 그들의 가정도 방문합니다. 학교에서는 우리가 준 식량으로 만든 음식을 아이들에게 배급하는 걸 확인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전달한 식량의 상당량이 외부로 전용된다는 말은 믿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저희가 지원한 식량은 군이나 당 간부 엘리트층이 선호하는 쌀이 아니었습니다. 옥수수, 밀, 그리고 옥수수와 콩의 복합곡물 등이었습니다. 군부나 지도층은 그런 곡물보다는 쌀에 눈독을 드립니다.

: 최근 유엔기구들이 북한의 식량 부족 실태를 조사하고 그 결과 보고서를 냈는데요, 6백만명의 취약계층이 식량을 필요로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 보고서가 신뢰할 만 하다고 생각하십니까?

Stuehmke: Yes. When I was there in North Korea between 2008 and 2009, everytime I visited to oversee the implementation of the food aid program, I traveled outside of Pyongyang, and my trips there would last between 2 and 3 weeks…

그렇습니다. 제가 2008년-2009년 대북식량지원사업으로 북한에 갔을 때 분배 확인을 감독하러 평양 밖의 지방 출장을 한 번 나가면 보통 2-3 주가 소요됐습니다. 현지 주민들이 실제 겪는 식량난의 정도를 알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이었습니다. 거기다 삼림은 벌채된 상황에 지난 여름에 물난리를 겪었고 겨울에는 강추위로 수확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 식량 지원을 가장 많이 해온 한국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몇년동안 대북 식량지원이 중단된 현실 등을 감안할 때 유엔보고서가 밝힌 북한의 식량 부족 실태를 믿습니다.

: 북한이 앞으로 계속해서 미사일 발사와 핵 개발계획을 추진할 경우, 그와 상관없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식량지원은 지속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미국이나 그밖의 구호단체들의 입장은 북한의 핵개발과 인도적 지원은 별개의 사안이라고 합니다만.

Stuehmke: I believe that it is a separate issue from the nuclear issue. It should be viewed that way...

그렇습니다. 인도적 식량지원과 핵 문제는 별개이고 또 그런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도적 식량지원과 관련해 국제사회는 분배확인과 현장접근의 조건은 북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모든 인도적 지원사업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북한 당국에 주지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분배확인과 현장접근은 진짜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 미국 정부는 국민을 대표하는 연방의회에 우리의 대북지원이 당초의 목적에 따라 식량을 필요로 하는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된다는 걸 보여줄 책임이 있습니다. 미국 시민들의 세금으로 이런 지원이 이뤄지는 만큼 국민은 그걸 알 권리가 있고 또 알고 싶어 합니다.

RFA 초대석, 이 시간에는 2008년 미국의 대외 원조기관인 국제개발처의 선임 자문관으로 북한에서 10 개월 동안 식량분배 확인감시업무를 감독했던 도로시 스텀키(DOROTHY STUEHMKE)씨의 얘기를 들어 봤습니다. 저는 전수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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