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남한생활 2년, 북한 여의사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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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도전하는 사람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런 용기에 찬사를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현실을 모른다. 안타깝다.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들기도 하는데요. 오늘은 남한에 간지 2년 만에 주변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해 국가고시인 의사면허증 필기시험에 합격한 탈북여성 최영숙 씨의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하늘의 명을 깨닫는다는 지천명 즉 50세를 훌쩍 넘긴 북한의 여의사가 남한으로 갔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뭔가 새로운 생활을 다시 시작하기에 좀 늦은 나이가 아닌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최영숙 씨는 남들의 말보다는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부터 찾았습니다.

최영숙: 남한에 와 보니까 북한에서 떠날 때 했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와서 보니까 남한 분들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전문성이 있는 일을 해야 안정성이 있고 정착도 잘 될 것이란 감을 잡았습니다.

기자: 금방 와서 남한에서 정착을 잘하려면 전문직 일을 해야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셨는데 북한에 있을 때 했던 남한에 대한 생각은 뭐였고 와서 보니 어떻게 틀리던가요?

최영숙: 남한 분들이 이렇게 열심히 ...남한에 오면 모든 것이 쉽게, 편안하고 모든 조건이 보장되는 별세상으로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에 만족하고 모든 뜻이 이뤄지는 사람 세상이 아닌 정말 좋은 별세상이라 생각했죠.

기자: 왜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최영숙: 왜냐하면 가끔씩 통제는 하지만 남한 드라마를 봤습니다. 보니까 참 발전했데요. 이제와 보니까 드라마는 실용성이 좀 부족하다는 것을 남한에 와서는 새롭게 느끼게 되는데 그때는 그런 것을 보면서 너무 좋고, 너무 행복하고, 저기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그런 좋은 생각만 했습니다. 구체적인 상황을 잘 모르니까요. 그래서 나도 가면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나도 가게 되면 내가 갖은 임상경험을 가지고 면허 생각은 안하고 남한에서 의사를 하라고 하면 얼마든지 멋있게 잘할 것이라고 단순하게만 생각한 겁니다.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남한으로 간 것은 아닙니다. 하고 싶은 말 자유롭게 하고 어디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고 누군가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세상을 찾아 간 것이 남한 입니다. 그런 남한을 찾아가 누군가에게 의지해 나약한 모습으로 여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최 씨의 머릿속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인의 모습을 되찾겠다는 결심을 했던 겁니다.

최영숙: 남한에 오면서 생각한 것이 북한에서 의과대학 학력도 가졌고 남한의 대학원과 같은 북한 박사원도 수료하고 학위도 받았는데 나의 전문분야가 아닌 식당일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제 모습이 아닌 겁니다. 북한에선 의사였지만 여기서는 면허를 받지 않으면 진료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면허 공부를 하자고 하니까 모두 안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선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의과대학에 갔고 그 의과대학에 간 학생 중에서도 면허 시험에 불합격돼서 재수하는 경우가 많다고 저에게 말하면서 제가 하려는 일에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기자: 주변에서는 격려해주는 말보다는 부정적인 말이 많았네요.

최영숙: 네, 하지만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못하면 정착을 못한다. 내가 단신도 아니고 가족이 다 왔는데 아들이나 친척들 앞에서 당당해지자면 면허를 따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공부를 시작했고 이미 시험에 합격한 분들을 만나 어떤 방법으로 공부를 했는가 물었고 그 다음에는 책을 샀습니다.

남한에서 의학전문서적은 거의 다가 영어 원문으로 된 외국서적입니다. 그 가격이 만만치가 않죠. 쉽게 말해 아주 비쌉니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 지하철을 타는 것도 경제적으로 부담이 됐다고 말하는 최 씨. 정부에서 주는 생활비로 지내야 한다는 것이 풍족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최영숙 씨는 자신이 경험하는 어려움들은 잠시 스쳐가는 것일 뿐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견딜 수 있었고 끊임없이 해결방법을 찾습니다.

최영숙: 아침에 5시에 일어나 밤 10시까지 그냥 공부에 집중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저는 젊을 때도 그렇게는 안했습니다. 여기 와서는 환경이 달라졌고 나이도 연령이 많은 상황에서 왔으니까 그런 방식으로 공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저는 젊은 아이들이 3번 본다면 9번을 봐야한다 그렇게 하자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한다. 공부에서 방법은 하나다 내가 나이가 많으면 그만큼 회전수를 높여야 한다. 그것을 항상 생각했습니다.

남한의 의사국가고시는 1년에 한 번 있습니다. 1월에 필기고사가 있고 그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가을에 실기고사를 보게 됩니다. 최영숙 씨는 남한입국 첫해인 지난해 시험 삼아 필기고사를 봐서 실패를 한 후 올해 두 번째 시험에선 당당히 합격 했습니다. 아직 실기 시험이 남아 있지만 북한에서의 임상경력을 놓고 볼 때 무난히 시험을 통과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와의 싸움이었다고 말하는 최영숙 씨. 의사면허 시험에 합격한 사실보다 그 힘든 과정을 이겨낸 이야기가 주변사람들을 더 놀라게 합니다.

최영숙: 제가 영어를 잘 모르니까 대학생에게 부탁을 해서 교과서를 전부 번역을 했습니다. 그 파일을 복지관으로 보냈습니다. 거기서 출력해서는 집에 가져와 제가 볼 수 있는 교과서에 그 번역한 것을 하나하나 써서 공부를 한 겁니다. 그게 한 5개월은 걸렸습니다.

기자: 그런 책은 몇 쪽짜리 책인가요?

최영숙: 책은 500페이지짜리도 있고 300페이지짜리도 있고 700페이지짜리도 있고 그런 책이 16권이었습니다.

최영숙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공이란 그저 우연히 또는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역경을 딛고 일어서 만들어 가는 것이란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됩니다.

최영숙: 노력이 정말 99%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머리가 좋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하겠다는 결심이 중요하고 부지런히 열심히 하는 노력이 성공으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비결인 것 같습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남한에 간지 2년 만에 의사시험에 합격한 탈북 여의사 최영숙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다음 시간은 최 씨가 어떻게 시험을 준비했는지 그리고 시험에 합격한 뒤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전해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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