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남한생활 2년, 북한 여의사 제2부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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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알고야 잠을 잘 수 있다. 불가능이란 없다. 단 사람들이 쉽게 포기할 뿐이다. 이것은 북한에서 의사였고 남한에서도 의사가 되기 위해 시험을 봐서 필기시험에 합격한 탈북여성 최영숙 씨의 말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남한에서 어떻게 공부를 했으며 또 올해 가을 실기시험만을 남겨둔 최 씨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전해드립니다.

올해 남한의 의사면허시험 국가고시에는 3천여명의 학생이 응시해 90% 정도가 합격을 했는데 그 명단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최영숙 씨. 아직 남한생활이 채 익숙해지기도 전에 어려운 의사면허 시험에 합격한 비결은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최영숙: 어떤 때는 밖에도 못나가고 일주일씩 공부를 하고 하는 것은 말이 쉽지 인간으로 이겨내기 힘든 것입니다. 나가고 싶다, 내가 누구를 만나고 싶다, 내가 뭘 사고 싶다. 이 모든 것을 내가 나를 이겨야 되는 거예요.

최 씨의 방에는 아직도 산처럼 쌓아놓은 의학서역 번역이 그대로입니다. 수 백 쪽이나 되는 책 16권을 전부 번역해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최영숙: 제가 영어를 잘 모르니까 대학에 다니는 분들에게 부탁을 해서 교과서를 번역 했습니다. 저희가 시험 보는 책을 복사해서 그 파일을 복지관으로 보냈습니다. 집에서는 컴퓨터도 없고 파일을 받아 출력할 수 있는 여건이 안돼서 복지관에 부탁해 출력을 해서 몇 번에 걸쳐 집에 가져와 공부를 했습니다.

기자: 번역한 것을 가지고 공부한 여사님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도와준 학생도 대단하네요.

최영숙: 그렇죠, 제가 복지관을 통해 그분을 알게 됐는데 책은 구입을 했지만 영어로 돼서 볼 수가 없다고 사정 얘기를 하고 도와달라고 하니까 돕겠다고 답변을 줬습니다. 저희반 아이들과 합심해 번역을 해줄테니 어디로 파일을 보내면 되는가 물었죠. 저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현재 컴퓨터도 없고 난 파일이 뭔지도 모른다. 복지관의 요청에 의해 학생과 인터뷰를 하는 상황인데 복지관에 얘기를 해서 복지관으로 보내면 어떻겠는가? 했더니 그게 좋겠다고 해서 복지관으로 보냈는데 출력하는데 엄청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너무 많으니까 복지관 선생님들이 이 많은 것을 어떻게 다 머리에 넣겠는가? 너무 힘들다고 놀라더라고요. 어쨌든 시작을 하고 시작이 절반이라고 되더라고요

기자: 사실 도와준다고는 말했지만 파일이 뭘 말하는지 조차 모른다는 말을 학생이 들었을 때는 참 당황스러웠겠어요?

최영숙: 그렇죠, 그래서 그 학생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니까요. 그 고마운 분들의 믿음과 도움으로 성장을 했으니까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제가 꼭 뭔가는 해야 하겠고 그래서 제가 서울대학교 박사과정 가정의학과에 지원을 했고 4월20일 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주위에서도 관심을 많이 보이고 저도 걱정이 돼서 지금은 영어 학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북한에서와 달리 남쪽에서 의사가 된다는 것. 의사란 직업. 주변에서 최영숙 씨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최영숙: 남한에서 의사 직업이 존경을 받고 고급스런 상류층에 속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겁니다.

기자: 주변 사람들이 대하는 것이 많이 틀립니까? 어디서 그런 것을 느끼십니까?

최영숙: 사람들 호상 대상을 하다보면 저를 소개하는 교수님들이 북한에서 임상경험이 30년이고 여기 와서 필기 실험에 합격해서 남한에서 내년이면 의사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하면 선생님은 일생문제가 다 풀렸네요. 대단하네요. 그런 말을 합니다. 대화를 하는 것이 달라졌습니다. 의사가 이렇게 상류층의 직업이니까 모두들 될 수 없다고 했구나. 이런 것을 느끼죠. 또 내가 실습을 하면서 수술방에 들어가고 자꾸 보고 하니까 정말 치열하게 자기를 전문의까지 끌어 올리는 과정에 피타는 노력들이 많이 숨어있더라고요. 의학의 현황에 대해 자꾸 알려오고 존경받을 만한 이유가 있구나. 이런 현실적인 느낌을 자꾸 받고 있습니다.

일단 의사면허 필기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은 가을에 실기 시험을 보게 됩니다. 실기 시험이란 환자를 진찰하고 병명에 맞게 처방을 하는 그런 임상관련입니다. 최영숙 씨는 북한에서의 경험으로 실기는 걱정이 안 되는데 북한과 다른 남한의 진료방식에는 걱정이 앞서 요즘 한창 남한 병원에서 실무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최영숙: 북한은 너무 잘 아는데 남한의 의료체계에 대해 너무 모르니까 내과, 외과, 소아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이렇게 수없이 많은 과를 통틀어 보자 그래서 제가 계획을 짰습니다. 외과를 돌때는 수술방에도 들어가고 내과를 돌때는 환자방에도 들어가고 그 과정에 세부적으로 배울 수는 없지만 남한의 진료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거죠. 그 과정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 요즘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어느 정도인가요?

최영숙: 아침 6시30분에 병원에 와서 전문의들이 하는 컨퍼런스에 참가해 환자 상황을 파악하고 전문의들을 따라다니면서 환자 차트 작성도 보고 수술방에도 따라가서 보고 저녁 4시정도 되면 쉬었다 5시부터 영어 학원에 갔다가 집에 오면 밤 10시가 됩니다.

어떤 일을 놓고 걱정만 하고 행동에 뒤따르지 않는다면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처음에는 두렵기도 하고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믿음이 안가더라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일단 자신을 믿으라고 최 씨는 말합니다.

최영숙: 저는 이번에 의사면허 시험 준비와 관련해 느낀 체험은 그 어떤 연령이나 조건에 구애받지 말고 본인이 하겠다고 결심하고 정열을 쏟아 붓는가에 따라서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고 믿고 노력하면 불가능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2의 고향 오늘은 남한에 간지 2년 만에 의사면허 필기시험에 합격한 탈북 여의사 최영숙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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