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요덕 정치범 수용소 신숙자 씨 모녀 구출운동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201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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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열린 신숙자 모녀 구출 서명 운동 포스터.
사진-방수열 목사 제공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한국 통영에 있는 한 교회 목사 부부가 주최한 북한 정치범수용소 전시회가 막 끝났습니다. 이 전시회는 그동안 서울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그곳에는 사랑이 없다'라는 주제로 열렸었는데요, 그런데 통영에서의 전시회 제목은 달랐습니다. ‘그곳에는 사랑이 없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 그런데 통영의 딸이 그곳에는 있습니다.

방 목사: 유일하게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사람이 제대로 찍힌 사진이 통영사람 신숙자 모녀 사진입니다.

통영에서는 전시회와 함께 신숙자 모녀의 생사 확인, 살아 있다면 이들을 구출해야 한다는 뜻이 모여 서명 운동을 벌였습니다. 여성시대, 이 시간에는 신숙자 모녀 그들은 누구인지, 악명 높은 요덕 정치범수용소에서 두 딸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은 어떻게 흘러나왔는지 알아봅니다.

그곳에는 사랑이 없다, 정치범 수용소 전시회는 남한의 민간단체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의 지성’이라는 뜻의 ‘세이지 코리아’와 한동대학교 북한인권학회가 지난해 10월 한동대학교에서 시작해 지난 2월에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가나아트스페이스 라는 곳에서 열렸습니다. 그런데 남해가 그림같이 펼쳐진 경상남도 통영시 경상대힉교 해양과학대학 도서관에서 열게 된 배경, 이 전시회를 주관한 통영 현대 교회의 방수열 목사의 설명입니다.

cut: 저희 교회에서 두 번째로 통영에 있는 목사님과 사모님들을 모시고 하는 성경배경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그때 사모님들과 목사님들께 성경과 함께 다른 필요한 것을 도와 드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김성옥 기자, 북한 전문가신데 그분이 특강을 했습니다.

방수열 목사는 북한관련 특강과 함께 정치범 수용소 전시회를 열어야 한다는 특별한 사명과 의미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방 목사: 정치범수용소 전시회를 하면 목사님과 사모님들이 북한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겠구나 해서 시작을 했는데 특별히 이 정치범 수용소 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찍힌 사진이 신숙자 모녀, 이분이 통영 사람이라는 것을 들었어요. 그래서 확인을 했더니 정말 통영에서 태어나고 통영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온 통영사람이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통영사람이 구출하라는 마음을 주셔서 전시회뿐만 아니라 구출운동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언론이나 북한 인권 관련 전시회 또는 정치범 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나온 요덕 정치범 수용소는 북한당국이 공개를 못 하게 하는 곳이기에 변변한 사진 한 장 없었죠.

그리고 일본의 후지 텔레비전에서 동영상으로 공개했던 요덕 수용소도 드문드문 보이는 감시초소와 그 사이로 총을 든 경비병의 모습, 혹한 속에서 작업에 동원된 정치범들, 죄수복을 입은 여성들이 분뇨를 퍼 나르는 장면 등 정말 식별이 불가능한 희미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신숙자 모녀의 사진만은 야산을 배경으로 한 두 딸과 어머니임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근접 촬영한 가족사진이었습니다.

두 딸과 함께 찍은 신숙자 씨는 지난 1993년에 출간된 <김일성 주석, 내 아내와 딸을 돌려주오.> 에 나오는 주인공 오길남 씨의 부인과 두 딸입니다. 오길남 씨는 독일 유학생으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북한 공작원들로부터 포섭당해 월북했다 부인과 자녀만 남기고 탈출한 지식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이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 이런 제목으로 바꿔 18년 만에 다시 출간되면서 오길남 박사 일가의 비극이 끝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어 방 목사는 이들의 생사를 확인하고 구출해야 한다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통영에서 이들의 구명운동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방 목사: 저희가 지금 하는 서명 운동이 신숙자 모녀 생사확인 요청 및 구출운동입니다. 통영에서 12.000여명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다음 주부터 수원 수양 관에서 정치범 수용소전시회 2차로 합니다. 수원에 이어서 전국으로 서명운동을 펼쳐갑니다.

신숙자 씨가 분명히 통영출생으로 통영에서 자란 사실은 이번 전시회 때 친구 동창생들을 통해 밝혀졌다고 방 목사는 전합니다.

방 목사: 통영에 신숙자 씨의 가족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친구들은 초등학교 동창이나 중학교 동창들은 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서명운동도 해주시고 있습니다.

방수열 목사는 이어 이번 전시회에서 신숙자 씨가 통영 출신으로 밝혀지면서 오길남 씨의 월북 포섭과정에서 연루됐던 역시 통영 출신의 유명한 작곡가 윤이상 씨에 대해 통영 시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방 목사: 일단 충격적이다 하는 분들이 많고요, 그리고 시민이 막연하게 윤이상 씨가 친북이라는 것은 알고 통영 출신으로 세계적인 유명한 작곡가다, 이 정도로만 알고 있다 이번에 이런 부분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오길남 씨는 어떻게 월북했는지 왜 부인과 두 딸만 정치범 수용소에 있는지 저희 자유 아시아 방송 초대석에서 인터뷰한 오길남 박사의 얘기 들어보죠

오 박사: 1980년대는 재외에서 민주화 운동이라고 해서 윤이상, 송두율 또 목사들 이런 사람들하고 했습니다. 그 당시 북한공작에 희생이 된 겁니다. 그리고 다리를 놓은 공작원들이 포섭하고 유인해 북으로 보낸 거죠.

독일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오길남 씨는 북한에 가면 경제학자로서의 일자리를 준다는 말에 세계경제연구소에서 국제경제학을 했기에 북한에서 많을 일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데요, 하지만 북한에 가보니 잘못된 판단임을 알게 됐다고 전합니다.

오 박사: 북한이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죠. 공작 목표에 따라서 두 딸과 집사람을 데리고 갔으니까 딸과 집 사람을 인질로 잡으면 너는 꼼짝 못하고 우리 손아귀에서 놀아날 수모 당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판단한 거죠.

오 박사는 86년도 사상교육과 김일성 역사교육 등을 받고 석 달 후에 교육받았던 미림초대소를 나와 평양으로 옮기죠. 그리고 대남방송인 구국의 소리에서 일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을 인질로 잡힌 채 지령을 받게 됩니다. 이 지령에 관한 일을 부인과 의논을 하자 신 숙자 씨는 남편에게 단호한 결단을 하게 했다며 정말 훌륭한 아내였다고 방수열 목사는 말합니다.

방수열 목사: 오길남 박사가 가족을 끌고 북한에 가서 1년 뒤 다시 독일에 돌아가서 두 독일 유학생 가족을 포섭해 오라는 지령을 받고 떠나는데 그때 신숙자 여사가 당신 여기서 나가면 도망가라! 그리고 나가서 3개월 동안 우리 구명운동하고 구명 운동하다 안 되면 우리 모녀가 교통사고로 다 죽은 것으로 알아라. 그리고 우리 대신 살아달라고 하면서 또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이런 숭고한 마음을 가지고 거기 남아 있는 거죠.

탈출에 성공한 오 박사는 독일에서 월북하게 한 배후의 인물인 작곡가 윤이상 씨에게 북한의 가족을 송환해 달라고 여러 차례에 간청했지만 윤이상 씨는 1987, 1988년 두 차례에 걸려 부인인 신숙자 씨의 편지만을 전했습니다. 그러다 1991년에 신 씨와 두 모녀의 사진과 육성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전했다는데요, 방 목사님, 이것은 어떤 의미였나요?

cut: 윤이상 씨가 오길남 씨에게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라고 신숙자 씨의 남편 오길남 씨를 회유하기 위해 내놓은 사진입니다.

그러면 이 사진이 요덕수용소에서 찍은 것이라는 것은 어떻게 확인이 되었나요?

요덕 수용소에 있던 탈북자가 자기가 있던 동안에 독일에서 이 모녀가 사진을 찍는다는 소문이 돌았데요, 그런데 자기가 한국으로 나온 다음에 이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군요. 사진 찍는다는 소문이 돌더니 맞았구나, 해서 사진을 확인하고 그 탈북자가 분명히 요덕 수용소였다고 확인해 주었죠. 또 한 가지는 이 사진을 건네준 사람이 작곡가 윤이상 씨인데 오길남 씨가 신숙자 씨의 남편 아닙니까? 그런데 오길남 씨를 회유하기 위해 이 사진을 건네준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 사진이 요덕 수용소 찍었다는 것이 더 확실한 거죠. 그리고 이 사진을 찍을 때 마땅한 옷이 없어서 독일에서 가져간 옷을 다시 입혀서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오길남 박사도 자유 아시아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내와 딸 둘이 요덕 수용소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오 박사: 거기 혁명화 구역이 있다가 더 심한 곳으로...지금이야 뭐 인간이겠어요?

오길남 씨는 독일에서 가족 송환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독일 주재 한국대사관에 자수해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방수열 목사는 오길남 씨가 통영 전시회장에 직접 방문해 증언도 했다는데요, 증언하면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하는군요.

방 목사: 오길남 박사님이 너무 많은 고통을 받으셔서 증언 하시는데도 참 힘들어 하시더라고요. 물론 자신의 아내와 두 딸이 정치범 수용소에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 눌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사람의 공격을 받은 것 같아요

방수열 목사는 오길남 박사가 북한에 남은 가족사진을 건네받은 지 20여 년이 넘어 두 딸이 30대가 되었지만, 분명히 살아 있을 것이라며 그래서 더욱 부지런히 구출운동을 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도 밝혔습니다.

방 목사: 저희가 통영에서 한 2만여 명의 사인을 받게 되면 그때부터 국제 사회에 알리는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유엔 반기문 사무총장이나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라든지 국내에서는 청와대나 통일부에 공식서한을 보내고 알리려고 합니다.

요덕 수용소에서 생사를 알 길이 없는 오길남 박사의 아내 신숙자 씨와 두 딸을 구출하기 위한 서명운동은 오늘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성시대 RFA 이원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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