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수천년 된 민족의 정의를 바꿀 수 있나?
2024.09.27
노동신문 국제면은 ‘썩고 병든 자본주의 사회’가 곧 멸망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미국의 흑인 차별 행위에 대한 기사들을 종종 소개합니다. 따라서 오늘은 북한 청취자 분들께도 비교적 친숙한 미국의 흑인 차별 문제에 대한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하나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1957년 9월 24일, 미국 남부에 위치한 알칸소라는 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9명의 흑인 고등학생들이 1천 2백 여 명의 미군 공수부대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등교했습니다. 이 사건의 발단은 그 해 9월 4일이었는데요. 엘리자베스 에크포드라는 15세 여학생을 포함한 9명의 흑인 학생들이 새 학기가 시작되어 ‘리틀록 중앙고등학교’로 등교하는데 또래 백인 학생들이 이들을 저지하며 흑인 학생들과 함께 수업 받을 수 없다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지역의 백인 주민들까지 가세해 천 여 명의 반대 인파가 몰렸고, 화난 백인 학생들에 둘러싸여 묵묵히 학교로 걸어 들어가는 에크포드의 사진은 미국 전역 언론에 퍼졌습니다.
1960년대 중반까지 미국은 흑인을 노예로 간주하던 관행에서 비롯된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는 정책을 썼는데요. 학교와 공원, 도서관, 식당, 대중교통 등 공공 장소를 유색 인종과 백인이 동시에 활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인종 분리 정책입니다. 그런데 1954년에 미국 대법원이 공립학교에서 흑인과 백인 학생을 다른 학교에서 교육하는 분리정책은 위헌이라고 판결했고, 따라서 1957년 9월 새 학기 시작과 함께 알칸소 주의 리틀록 중앙고등학교가 시범적으로 흑인 학생 9명을 받았습니다. 이에 학생들과 지역 주민들이 학교 앞에 모여 통합교육 반대 시위를 진행했던 것이지요. 당시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까지 개입해 공교육 인종통합 교육을 호소했고 그 결과로 이 흑인학생들을 등교시키기 위한 공수부대 투입 작전까지 썼던 겁니다.
에크포드와 흑인 학생들은 이후에도 백인 학생들에게 따돌림과 괴롭힘을 받았지만 잘 견뎌내고 졸업까지 한 걸로 알려집니다. 이 고등학교는 통합교육 정책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갈등 때문에 학교를 폐쇄한 적도 있었지만, 수 십 년의 노력 끝에 미국의 인종차별 정책을 몰아내는데 공을 세운 학교로 기록되었습니다. 2007년 9월 24일에는 9명 흑인 학생들의 등교 사건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도 열고, ‘리틀록의 아홉 명’이라는 박물관도 개장했답니다.
1619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흑인노예 역사는 법적으로 1865년 미국 남북전쟁이 끝난 뒤 폐지되었는데요. 수 백 년간 지속된 제도이자 관행이며, 생활이었던 흑인 차별이 법적 폐지만으로 온전히 사라지지 못한 것은 당연합니다. 따라서 에크포드의 힘겨웠던 등교 이야기처럼 흑인과 아시아인 등 유색 인종을 차별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태도, 문화는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최근까지도 일부 사람들은 유색인종에 대해 차별적 언행을 일삼기도 하지만, 전 세계는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사상과 이념적 차이 때문에 다른 사람을 차별하거나 무시하는 행위는 전근대적이며 반문명적인 나쁜 관행이라 인식하고 개선하려는 공동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역사 속의 정치인들과 의식있는 일반 시민들의 힘겨운 노력이 있었고요. 현재 미국의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흑인 여성 정치인이 등장했다는 사실이 바로, 차별에 맞서 싸운 인류의 오랜 노력의 결과로 보입니다.
1950년대 미국의 흑인 고등학생들의 등교를 둘러싼 국가적 갈등 문제가 보여주는 또 한가지의 중요한 교훈이 있는데요. 이 사례는 법과 제도는 쉽게 바꿀 수 있지만, 국가나 사회 등의 집단적인 가치나 인식의 변화 발전은 단 기간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미국의 최근 역사와 집단 인식의 변화상을 보며, 김정은 총비서가 지난 해 말부터 제기하는 한반도 통일 폐기 정책과 한국 적대시 정책을 떠올려 봅니다. 김정은 총비서와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는 정책입니다.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문명적으로 선진국인 한국과 통일한다는 것은 북한의 수령 중심 체제를 허무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김정은 총비서는 충분히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남한과 등을 지는 적대 정책으로 거리를 두고 남남으로 살자는 정책이지요.
하지만 일반 북한 주민들의 정서 속에 있는 남한의 존재와 민족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남북한 국민들이 공통적으로 알고있는 단군 신화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 치하의 시기까지, 4천 년을 넘어 굽이 흐르던 우리 민족의 역사는 이미 한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육체와 정신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 총비서의 선언으로 남북한에 사는 사람은 이제 다른 민족이라는 주장인데요.
백 여 년 묵은 흑인 및 유색인종 차별 관행은 인도적이며 진보의 방향임에도 불구하고 더디게 발전되어, 지금까지도 노동신문이 비판할 정도로 세계적인 현안 문제인데요. 수 천 년의 한 민족 정기를 끊는 문제 그리고 백 년이 다 되어가는 남북한 통일 정책의 역사를 지우는 일이 과연 하루 아침에 가능한 일인가요? 그리고 정치인 한 사람의 선언이 민족의 정의를 바꾼다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일까요 되묻게 됩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