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앤디 김 미 연방하원에 당선되다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1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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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6일 미국은 연방 하원의원 435명 전원과 상원의원 34명 그리고 주지사 36명을 선출하는 중간선거를 치렀습니다. 이들 당선자 중에 이름을 올린 한인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화제의 한국인은 뉴저지주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된 약관 36세의 앤디 김입니다. 앤디 김은 1982년 뉴저지주 남부의 말튼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 김정한(69)씨는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불우 소년으로 고아원에서 자랐지만 장애를 딛고 명문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유전공학 박사가 되었습니다. 앤디 김의 어머니 역시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나 미국에 건너온 후 뉴저지주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일구고 억척같은 정성으로 아들 앤디 김을 키워냈습니다.

이렇듯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앤디 김은 부모의 헌신적인 뒷바라지에 힘입어 엘리트 코스를 거치면서 외교·안보 전문가로 성장했습니다. 앤디 김은 명문 시카고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후 영국의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돼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 석사와 박사를 받았고, 2009년부터 미 국무부에서 근무했습니다. 2011년에는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전략참모로 일했고,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3년부터 2015년 초까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중동 담당 보좌관을 지냈으며, 이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령관의 전략참모로도 일했습니다. 중간선거 유세가 한창이던 지난 8월 오바마 전 대통령이 앤디 김의 선거 캠프를 방문하여 공식 지지를 선언할 만큼 그는 오바마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그가 출마한 선거구는 유권자 65만 명 중 백인이 85%이고 한인은 300여 명에 불과한 곳이어서 그의 승리는 더욱 돋보였습니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국인들에게 있어 연방의원이 된다는 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을 의미합니다. 그 꿈을 처음 실현한 사람은 김창준 씨였습니다. 김창준 씨는 미국에서 태어난 교포 2세도 아니고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이민간 교포 1.5세대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군대를 다녀온 후 단돈 50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접시를 닦으며 남가주대를 졸업하고 회사생활을 했던 의지의 한국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에 캘리포니아주 다이아몬드바 시에서 시의원과 시장을 했고 1992년에 캘리포니아주 제41지구에 출마하여 꿈에 그리던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1999년까지 3선을 기록했습니다. 이번 앤디 김의 당선으로 한국은 김창준 씨 이래 20년 만에 다시 한인 연방의원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김창준 의원의 성공담은 다른 많은 한국 청년들에게도 희망을 주었습니다. 오늘날 한인들은 미국사회 곳곳에 진출해 있으며, 정계 진출을 꿈꾸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금년에도 10여 명의 한인들이 연방의원에 도전했는데, 이들 중 본선까지 올라와서 당선이 유력했던 것이 앤디 김과 캘리포니아 제39선거구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의지의 한인 여성 영 김이었습니다. 영 김은 현장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우편투표에서 추월을 당해 결국 3,500표라는 아슬아슬한 차이로 하원 입성에 실패했습니다. 영 김은 1962년 인천에서 태어나 1975년 가족과 함께 괌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캘리포니아주로 이사해 남가주대를 졸업하고 1990년부터 지한파인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발을 들였으며, 2014년에는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에 당선돼 최초의 한인 여성 주의원으로 2년 간 활동했습니다. 물론, 영 김의 아메리칸 드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영 김은 낙선 후 2년 후 재도전을 강력히 시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한인들이 최강국이자 기회의 나라인 미국의 시민이 되어 연방 의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입니다. 앤디 김은 당선 직후 밝힌 소감에서 “나에게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 조국 미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고, 동시에 한국계 이민자의 아들로서 한반도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겠다고 했습니다. 비록 이번엔 낙선했지만, 영 김 후보도 남북 이산가족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진 정치인이었습니다. 영 김 후보는 캘리포니아의 주의원으로 활동하면서도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 이산가족 문제를 알리기 위해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는 등 한반도 문제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습니다. 한국 국민들은 이들의 활약을 성원하면서 이들이 자신들의 조국인 미국과 모국인 한국을 잇는 훌륭한 가교가 되어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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