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미국-탈레반 평화협의 서명

김태우- 동국대 석좌교수
2020.03.11

지난 2월 29일 또 하나의 역사적인 문서가 서명되었습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과 평화에 합의한 것입니다. 이로서 세계는 18년 4개월 동안 지속된 아프간 전쟁의 종식이라는 희망을 얻었고, 미국도 최장기를 기록한 전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과거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했을 때에 미국은 소련에 맞서 싸우던 무자헤딘이라는 무슬림 무장세력을 지원했는데, 왜 지금은 왜 역시 무슬림 무장세력인 탈레반과 싸우고 있는지를 궁금하게 생각합니다. 1979년 소련은 아프간의 친소 정권이 전통적인 무슬림들의 저항으로 고전하던 시절 이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습니다. 이때 가장 치열하게 소련군에 맞선 조직이 무자헤딘이라는 무슬림 단체였습니다. 그러자, 미국, 영국, 캐나다, 서독 등 서방국가들은 물론 사우디, 이란,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 이슬람 국가들도 무자헤딘 지원했습니다. 소련군은 큰 곤욕을 치룬 끝에 9년 간 62만 명을 투입하여 전사자 1만 5천 명에 부상자 5만 4천명이라는 막대한 피해를 기록한 채 1989년 2월에 물러나게 됩니다.

소련군 철수 후 친소 나지블라 정권은 무자헤딘의 공세에 더욱 심하게 시달리다가 1991년 소련연방이 와해되자 결국 붕괴되고 무자헤딘이 이슬람 정권을 수립합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각지에서 부상한 군벌들 간 내전이 시작되었고, 내전 중인 1994년 등장한 것이 남부 파슈툰족을 중심으로 결성된 탈레반이라는 무슬림 무장세력이었습니다. 탈레반은 내전으로 지친 국민들의 환심을 사면서 급격하게 세력을 키운 끝에 1996년 수도 카불에 입성하고 전국을 장악합니다. 이때부터 탈레반은 5년간 아프간을 통치했습니다.

미국이 탈레반과 싸우게 된 것은 알카에다라는 무슬림 무장세력이 저지른 2001년 9.11 테러 때문이었습니다. 단호한 응징을 다짐한 미국은 알카에다의 수장인 오사마 빈라덴이 탈레반의 보호아래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탈레반 정권에게 빈라덴을 인도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탈레반은 끝내 응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2001년 10월 7일 40여 서방국들의 지원 하에 ‘항구적 자유’ 작전을 개시했고, 탈레반의 극단주의에 반대했던 아프가니스탄내 북부동맹도 미국에 가세했습니다. 막강한 과학력을 앞세운 미군에 의해 탈레반 정권은 축출되었고, 2002년 카불에 친서방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탈레반은 권좌에서 축출되었지만, 전국 각지에서 아프간 정부와 국제안보지원군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고, 게릴라전, 매복, 자살 테러, 변절자 살해 등을 통한 소모전을 전개해왔습니다. 미국은 전쟁을 계속했고, 2011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과 국제안보지원군이 미군 10만 명을 포함하여 14만 명에 이르는 등 오히려 군대를 증파해야 했습니다. 이후 2014년에 NATO가 작전을 종료했고, 2014년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철군 계획을 밝혔지만 전쟁은 좀처럼 종식되지 못했고 1만 2천 명의 미군이 지금도 남아 전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탈레반과의 협상을 시작하여 2019년 9월 2일 평화합의 초안에 합의했으며, 이번 2월 29일에 최종 서명한 것입니다.

이에 세계는 이번 합의로 그토록 많은 피해를 발생시켜온 아프간 전쟁이 모두가 이기는 방향으로 종식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연인원 77만 명의 군대를 파병하고 아프간 재건비용 1,330억 달러를 포함하여 총 2조 달러를 투입했으며, 미군 2,300명을 포함하여 참전국 장병 15만 7천여 명이 전사했습니다. 아프간인들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5만 8천 명의 아프간 군인과 경찰이 사망했고 민간인 3만 8천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반군들도 4만 2천 명의 전사자를 기록했습니다. 이번 합의에서 탈레반은 극단주의 무슬림 조직이 미국을 공격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고 약속했고, 미국은 현재 1만 3천 명인 미군 및 동맹군을 135일 이내 8,600명으로 감축하고, 탈레반이 테러 방지 약속을 이행하면 14개월 내에 나머지도 전원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탈레반에 대한 미국과 유엔 안보리의 제재도 단계적으로 해제하기로 했습니다. 탈레반이 구금하고 있는 아프간인 1,000명을 넘겨 받는 대가로 탈레반 포로 5000명을 석방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습니다. 미국은 이번 합의와 무관하게 IS 즉 이슬람 국가와 알카에다에 대한 대테러 작전은 계속한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은 그동안 아프간 재건에도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350만 명의 아프간 소녀들이 학교에 입학했고 1,200마일의 고속도로가 건설되었으며, 중산층이 형성되고 언론의 자유도 상당히 확보되었습니다. 아편 재배와 유통을 소탕하는 데에도 90억 달러 이상을 썼습니다. 탈레반이 합의를 깨고 아프간 정부를 전복하고 재집권한다면 1990년대 탈레반 통치 동안 자행되었던 여성과 소수 종파에 대한 탄압, 마약 재배와 유통 등이 부활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번 합의가 모두가 승리하는 윈윈 합의가 되기 위해서는 탈레반의 합의 이행이 최대 관건인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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