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정전 70주년
2023.08.02
지난 7월 27일은 한국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7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날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남과 북의 방식은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북한은 통상 이 날을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일’ 또는 ‘전승절’로 칭하면서 축하공연을 열고 반미 사상을 고취하는 행사들을 벌이고 대규모 열병식을 개최합니다. 적화통일 야욕으로 기습 남침했다가 한국군과 유엔군에 의해 저지당하고 전쟁 전 상태로 돌아가면서 엄청난 인명피해와 국토파괴만을 남겼던 북한의 남침전쟁을 두고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지만, 어쨌든 북한은 그렇게 선전하면서 각종 행사를 통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수령님’을 추모하고 백두혈통 통치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열을 올립니다. 금년에도 북한은 전승 70주년 기념공연을 열었고 27일 심야에는 열병식을 거행했습니다. 열병식에서는 화성 17, 18형 대륙간탄도탄급 미사일들과 함께 미국의 고고도 무인 정찰기 ‘글로벌호크’를 본딴 ‘샛별4형’ 무인기, 역시 미국의 MQ-9리퍼 무인 공격기와 흡사한 ‘샛별9형’ 무인 공격기 등을 선보였는데, 북한은 그동안 개발해온 무인기 전력을 과시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특히 금년에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리홍중 중국 전인대 상무위 부위원장이 방북하여 기념공연과 열병식을 관람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쇼이구 장관과 함께 신무기 전시장을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북한은 북·중·러 북방 삼각동맹의 군사적 결속력을 과시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국방장관을 북한에 보낸 것에 대해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무기 부족, 장비 부족, 병력 부족 등으로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는 러시아가 북한의 무기제공을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분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렇지 않다면 전쟁 중인데다 바그너 그룹의 반란 시도까지 겪으면서 정치적으로 취약해진 러시아군의 수장이 평양까지 날아 왔겠는가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이란이 공공연하게 러시아에게 무인기와 무기를 제공해왔고 중국과 북한도 비공개적으로 협력한 정황들이 포착되고 있었지만, 이번 일로 북한이 탄약이나 포탄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해준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북한은 그렇게 정전기념일을 보냈습니다.
한국의 정전기념일은 많이 달랐습니다. 한국은 이 날을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로 부르면서 참전용사들을 기리고 전사자들을 추모하며 참전국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날로 삼고 있습니다. 금년에도 7월 26일 성남공항에서는 하와이에서 돌아오는 故 최임락 일병 등 7명의 6·25 참전용사들의 유해를 맞이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하와이에는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이라는 미국 국방성 산하의 연구기관이 있습니다. 미국은 정전 이후 지금까지 미군으로 추정되는 유해들을 이 기관으로 보내 유전자 감식을 통해 가족을 찾아주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 이날 돌아온 유해들은 한국군으로 판명된 분들이었습니다. 이날 유해들은 윤석열 대통령, 이종섭 국방장관, 故 최임락 일병의 친동생 부부 등의 거수경례를 받으면서 비행기에서 내려졌고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 희생당한 참전용사들에게 감사와 추모를 표했습니다. 27일에는 유엔군 전사자들이 안장되어 있는 부산의 유엔기념공원 상공에서 공군기들의 기념비행이 있었고, 저녁에는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참전국 22개국의 대표단과 유엔 참전용사 등 4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공연이 열렸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행사에 참석한 생존 유엔군 참전용사 전원에게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감사를 표했습니다. “오늘 대한민국은 유엔군의 희생과 헌신 그리고 피묻은 군복 위에 서 있다”라고 한 대통령의 연설과 93세 영국군 참전용사 콜린 새커리 씨의 ‘아리랑’ 열창은 모든 참석자와 지켜보는 국민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정전기념일을 맞는 일반 시민들의 모습도 남북 간에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상부의 명령에 따라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북한에서는 모든 행사들이 정부가 기획하는 대로 기계적으로 돌아가지만, 언론 및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다양한 찬반 의견이 허용되는 한국에서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여러 민간단체들이 다양한 활동을 벌렸습니다. 서울에서는 북한과의 조속한 평화협정을 촉구하는 단체들이 학술행사와 길거리 행사를 열었고, 핵무장 북한과의 성급한 평화협정에 반대하는 단체들의 맞불행사들도 목도되었습니다. 임진각 철책선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꽂아 둔 평화기원 리본들이 바람에 나부꼈습니다. 하나의 전쟁 그리고 하나의 정전협정을 두고 남과 북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이토록 달랐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